월간참여사회 2001년 12월 2002-12-01   947

민간보험 도입하려는 복지부의 조폭적 행태

‘아프다고? 그걸 왜 정부가 책임져?’


40대 직장인인 김지섭 씨는 디스크 환자다. 담당 의사는 김씨에게 MRI 검사를 권한다. 김씨는 당장이라도 검사를 받고 싶지만 병원에서는 앞으로 한 달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예약된 환자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민간의료보험(이하 민간보험)에 가입한 다른 환자는 민간보험 환자와 별도로 계약된 병원에서 즉시 MRI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정부가 본격적으로 민간보험을 도입한 이후 다양한 보험상품들이 생겼지만 넉넉하지 못한 김씨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예전에는 공공보험 적용이 되던 부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 한숨만 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김지섭 씨는 가상인물이다. 하지만 민간보험이 본격 도입된다면 누구나 ‘제2의 김지섭’이 될 수 있다.

공공보험은 국민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운영하는 보험이다. 우리나라 국민이 모두 가입하고 있는 건강보험이 바로 공공보험이다. 반면 민간보험은 개인의 필요에 따라 민간보험회사와 계약을 맺는 보험이다. 예를 들면 삼성생명이나 SK생명 등에서 판매하는 암보험이나 마이닥터보험 같은 것이다. 이 두 보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보험료를 정하는 방식이다. 공공보험료는 가입자의 경제적 상황에 따라 정해진다. 하지만 민간보험료는 개인의 건강상태나 과거 병력 또는 생활습관 같은 개인적인 위험상황을 고려해서 결정된다.

정부와 시민사회단체 간에 논란이 되는 민간보험의 유형은 두 가지이다. 첫째, 보충적 민간보험이다. 현재의 공공보험을 그대로 유지하고 비급여 부분, 즉 건강보험 대상이 아닌 부분과 개인이 부담하는 부분에 대해 민간보험회사가 상품(암보험, 상해보험 등)을 판매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둘째, 경쟁적 민간보험이다. 공공보험에 모두 가입한 상태에서 특정한 보장을 해주는 민간보험상품에 가입한 사람은 해당상품이 보장하는 특별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 이때 특별한 의료서비스는 공공보험 대상인 급여부분과 대상이 아닌 비급여부분에 상관없이 제공될 수 있다. 말하자면 공공보험과 민간보험이 경쟁하는 체계다.

보충적 민간보험이냐 공공보험의 축소냐

현재 복건복지부는 민간보험을 확대도입하기로 결정하고 TF(task force)팀을 꾸린 상태다. 복지부는 올해 안으로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민간보험제도를 마련할 방침이다. 이미 7조 원 이상으로 성장한 민간보험시장을 이대로 놔두면 부작용만 더 커지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규제의 틀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건강보험의 급여와 비급여의 영역을 조정한 다음 도저히 급여로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은 민간보험에 맡길 계획이라고 전했다.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민간보험의 형태가 바로 ‘보충적 민간보험’의 확대도입이다. 하지만 건강연대측은 이같은 정부의 방침에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일단 민간보험이 확대도입되면 공공보험의 개인부담을 보상하는 보충적 형태가 지속되기는 힘들 겁니다. 왜냐하면 보충적 민간보험만으로는 기업이 이익을 제대로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업은 정부로부터 개인적 병상자료를 넘겨받아 다양하게 상품을 개발해서 민간보험시장을 넓혀 나갈 겁니다. 가입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민간보험을 통해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했는데 공공보험 확충을 위해 추가부담을 지려고 하겠습니까? 공공보험 영역은 당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건강연대 조경애 사무국장의 말이다.

올해 5월 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안정종합대책’을 발표하고 건강보험 재정안정을 위해 민간보험 도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건강보험의 재정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보험료를 인상하거나 국고지원액을 늘리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끊임없이 보험료 인상과 국고지원 증액을 둘러싼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두 가지는 현실적으로 정부가 피하고 싶은 방법이다.

반면 건강연대는 민간보험 확대도입이 건강보험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맞서고 있다. “앞으로 의료기술이 고급화되고 의료서비스에 대한 국민들의 욕구가 다양해졌을 때 국민의료비가 늘어날 것입니다. 정부는 미래의 정부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지금 민간보험을 확대도입하려는 것입니다.

민간보험 확대도입으로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보건복지부의 주장은 앞으로 공공보험의 급여부분을 축소시키겠다는 발상에서 비롯된 거죠. 지금이야말로 복지부는 건강보험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할 때입니다.”

민간보험 확대도입이 과연 국민건강을 지키는 청사진인가? 건강연대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계한다.

민간보험 확대도입이 왜 문제인가

첫째, 공공보험에 비해 민간보험은 비용을 부담한 만큼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민간보험에는 엄청난 계약비용과 행정비용이 필요하다. 민간보험 자체가 이윤을 남기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규제가 거의 없는 필리핀의 경우 민간보험시장에서 보험료 수입의 약 45%가 보험회사의 이윤으로 돌아간다. 반면 공적으로 운영되는 의료보험에서 계약비용은 총수입의 10%도 안 된다.

둘째, 민간보험은 건강상 위험이 적은 고객 즉 건강한 사람과 지불능력이 충분한 사람에게 적합한 상품을 주로 판매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이가 없는 노인은 일반적으로 건강상태가 더 나쁘다. 그렇기 때문에 민간보험회사에서는 이 사람들의 가입을 막기 위해 틀니에 대한 서비스를 제외시키는 민간보험상품을 개발,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민간보험회사들이 장애인의 보험가입을 거부해 문제가 된 적도 있다.

셋째, 민간보험은 이중적 의료체계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 민간보험이 확대되면 민간보험 수입이 많아져 급여를 확대할 수 있고 서비스 질도 높일 수 있다. 반면 재정이 열악한 공공보험은 급여를 축소하고 저소득층,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른다. 쉽게 말하자면 민간보험 확대도입은 가진 자의 건강만 지키는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아파도 호소할 곳이 없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안으로 한국 실정에 맞는 민간보험제도를 결정하겠다고 공언했다. 민간보험을 확대도입하기에 앞서 국민건강을 지키는 일이 공적 영역인지, 아니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영역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또한 건강보험의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재정을 통해 의료보험재정을 지원하는 방안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고소득자의 보험 부담을 높이고 저소득자의 부담률을 낮추는 방법을 통해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는 것도 건강연대가 권하는 한 가지 방안이다.

박정선영(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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