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12월 2002-12-01   1290

생존위기 몰린 정읍 농민들의 텅빈 농심

‘다 죽으란 말이여, 이 썩을 놈들아!’


싸늘한 바람이 얼굴을 후려친다. 간밤의 비로 하늘은 맑지만 기온은 뚝 떨어졌다. 수은주가 영상 1∼2도에 머무는 오전 7시, 전북 정읍으로 향하는 고속버스 안. 앞좌석의 승객이 펼쳐든 조간신문에서 ‘농민들 국회앞 쌀가마 시위’라는 제목이 눈을 파고든다. 올해도 대풍이라지만 한없이 풍요로워야 할 농심은 쌀값 폭락으로 얼어붙고 말았다.

차창 너머로 고만고만한 언덕들이 보이고 드넓은 들판이 눈부신 햇살을 온몸에 받고 펼쳐져 있다. 추수를 끝낸 벌판…. 김제, 정읍, 고부, 신태인으로 이어지는 벌판은 맨살을 드러낸 채 썰렁한 느낌마저 준다. 들판은 휑하니 비었지만 농민들의 가슴만은 그득하게 차있으면 좋으련만….

정읍시는 인구 18만 중 15만 명이 농사를 짓는 전형적인 농업지역이다. 예전엔 가을걷이를 끝낸 농민들이 이맘때면 시내로 몰려나와 여유를 즐겼다는데, 몇 년째 그런 모습은 볼 수 없단다. 한낮인데도 시내 재래시장엔 인적이 드물다.

올해 쌀농사는 풍년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쌀값은 또 폭락했다. 정부는 쌀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농협을 통해 쌀 400만 섬을 추가로 시가매입해 시가방출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농민들은 매입가격이 40kg짜리 한 가마에 5만 원 정도이니 이건 최저생산비에도 못 미친다며 반발하고 있다. 전국 곳곳의 농민들은 볏가마를 도청이나 시청, 면사무소, 민주당사, 농협 등에 쌓아놓고 농정실패를 규탄하는 농민대회를 열고 있다. 정읍도 예외가 아니다. 이미 15개 면별로 쌀값 폭락에 대한 대책위원회가 구성됐고, 7개 면에선 농민대회가 열렸다. 정읍시 전역에는 벼 2만2000여 가마가 거리에 쌓여 있다.

빚만 지게 될 귀농, 희망은 없나

“1년 내내 방구석에만 박혀 있어야 할 판이여.”

정읍농민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관영 씨(30세). 그는 고향인 이곳에서 5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 올해 풍년도 그에게는 반갑지 않다. 생산비도 건지지 못할 정도로 떨어진 쌀값 때문에 빚만 2500만 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하루 평균 12시간 이상 일했어요. 한여름엔 이른 새벽부터 자정까지 일했구요. 그렇게 일해도 1년 농사를 지으면 생산비 빼고 고작 900만 원 정도가 손에 들어와요. 한 달에 75만 원을 가지고 생활하는 겁니다. 세금 떼이고, 자동차 유지비나 전화비 등을 빼면 살림이 빠듯해요. 아마 제 또래의 도시 직장인들은 2배 이상의 봉급을 받을 거예요.”

김씨의 얼굴은 농사일의 힘겨움을 말해주듯 거뭇하게 타있었다. 볏가마 쌓기 투쟁을 하느라 지난 주에 겨우 추수를 마친 그의 청바지는 아직도 흙투성이였다. 그런 터에 한때 열풍이 불었던 귀농이란 그에겐 비현실적인 탁상공론일 뿐이다.

“살길이 막막한 도시 노동자들이 귀농의 꿈을 갖고 시골로 와요. 그렇지만 곧 한계에 부딪쳐요. 농사를 시작할 돈조차 없어요. 1필지(1200평) 땅값만 3500만 원이고 신형트랙터 한 대가 3500만 원이에요. 1필지론 농사를 지을 수도 없어요. 나도 돈이 없어 트랙터와 콤바인은 남의 것을 빌려 써요. 농사는 어찌 어찌 짓는다 해도 가을 추수 때까진 생활비가 안 나와요. 쌀값을 제대로 받는다면 빚에 허덕이진 않겠죠.”

얼굴 가득 근심이 묻어 있는 김씨는 일하러 가야 한다며 운동화 끈을 졸라매고 서둘러 자리를 떳다.

이곳엔 아직 추수도 못 끝낸 논이 있다. 고부면에 사는 윤택근 씨(37세)의 800평 논. 서늘한 늦가을 바람을 맞으며 허수아비들이 벼를 지키고 있다. 바람에 넘어진 허수아비들을 다시 세우러 가는 그의 등은 삶의 무거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금 심정으론, 눈과 귀를 다 막아버리고 싶을 정도여. 쌓아놓은 쌀 축내며 살고픈 기분이여. 불도 못 때고 두꺼운 솜이불 하나 펴놓고 자야지 어쩌겄어.”

거두어들이지 못한 벼는 동물들의 겨울 양식이라며 방금 전까지도 짐짓 너스레를 떨던 그의 표정이 어느 새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마을에서 젊은 사람이라곤 윤씨와 또 다른 40대 한 명이 전부다. 이들을 빼곤 전부 60대 이상의 노인들뿐. 농기계가 아니면 농사도 못 짓는 마당에 기계 다룰 줄 아는 윤씨 덕에 마을 사람들은 무난히 추수를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쌀값 폭락 때문에 답답한 심정으로 볏가마 쌓기 투쟁을 하다보니 아직까지 추수를 마치지 못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젠 정부와는 이야기허고 싶지도 않당게. 김대중 대통령은 농민들이나 서민들 편이라고 해싸지만, 그것이 아녀. 이 정부 논리로 말하면 실질소득, 수익사업이 안 되는 건 과감히 잘라야 하는 거 아녀? 우리 농업 이대로 되먼 자동차 만드는 것에 비해 채산성 안 맞제. 그러니 그냥 집에 콕 박혀 있으라는 얘기쟎여. 지금 정부 좋다는 사람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당게. 오히려 집회에 나가 힘이라도 한번 써봤으먼 좋겠다 헐 정도로 반정부 분위기가 대단혀.”

이미 정읍시내 이장들이 모여 현 정부 화형식을 했을 정도로 민심은 흉흉하다. 그는 30대 후반이지만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농사짓고 있는데 누가 나하고 선 보려고 하겄어. 만나주지도 않여. 농민도 ‘내 딸만은 농가로 시집 안 보낸다’고 그래. 요즘엔 농촌에서 여성들이 예전만큼 고생하지도 않어요. 하지만 희망이 있시야지. 지금 세상은 자본주의라서 돈 아니면 안 돼야. 농사도 안 되고, 희망이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누가 오겄어. 잘 생겼든 못 생겼든 희망이 있어야제. 누가 농사짓겠다고 허면 ‘무식한 놈 또 나왔구나’ 그려. 엊그제 집회 때 누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 구더기도 썩을 것이 있으니까 생기제, 말라비틀어지먼 구더기도 없당게.”

땅을 팔고 농촌을 떠나고 싶어도 살 사람이 없어

고부면사무소 앞에는 볏가마 1000여 개가 쌓여 있었다. 팔 수도 없고 이렇게 해서라도 쌀값을 받으려는 농민들의 애타는 마음과 분노가 고스란히 담긴 볏가마…. 자식 같은 쌀을 시위용품으로 내놓을 수밖에 없는 농민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오히려 흉년이라도 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을 사람들의 하소연이 가슴 한 구석을 파고든다.

김호기 고부면장은 “우리도 갑갑하다”며 볏가마를 치우지도, 거둬들이지도 못하는 심정을 말했다. 그는 “중앙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 우리는 어쩔 도리가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김 면장은 “그래도 한방벼 등 농약 안 쓰고 만든 좋은 쌀은 다 팔린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윤택근 씨는 고급미 운운하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정부가 그런 말을 흘려. 2004년에 쌀 시장 전면개방되면 살 길은 고급미를 육성하는 거라고. 그렇지만 지금도 우리 쌀은 질로 말하면 일본 쌀과 함께 세계에서 1, 2위를 다퉈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쌀 만들고 있는데 여기서 더 어떻게 좋은 쌀을 만들어?

그리고 바이오쌀이네, 한방쌀이네 하는 것은 보통 쌀값의 두 배야. 그런데 400만 농민이 모두 그 쌀을 생산하면 어떻게 되겄어? 생산비 더 들어가고 쌀값은 또 떨어진당께. 농민만 더 죽는 거제. 지금은 그런 고급미가 소량이니까 제 값 이상을 받지만 그때가 되면 그 값을 주겄어?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농민들 현혹이나 하고.. 에이, 썩을 놈들.”

그에게 ‘쌀 한 포 더 사주기’ 운동은 우는 사람 한 대 더 치는 꼴이다.

“쌀 소비량이 줄어든 건 사실일 거예요. 분명 1인당 소비량은 줄었어. 그렇지만 인구는 늘고 있어요. 그리고 30∼40대의 쌀 소비량은 늘고 있어. 따라서 소비량이 일시에 줄어든 건 절대 문제가 되질 않아. 정부의 농업정책이 문제지. 올해 대풍이라고 하는데, 올해만 그런가? 98년부터 계속 풍년이었어. 그땐 왜 남을 거라고 얘기도 안 했대? 결국 정부가 WTO 협상을 위해 미리 쌀값을 낮춘 것뿐이야.”

추수를 마쳤어도 돈 한 푼 만져보지 못한 서남석 씨(50세)는 쌀값 소식이라도 알아보러 고부면 농민회를 찾았다.

“답답해. 농협에서 자체적으로 수매한다고 해서 약정 수매 분량을 줬어. 그런데 농협은 쌀을 가져가고도 10원 한푼 아직까지 안 준당께. 정부는 대안이 없고 쌀 시장은 무너졌어. 정부에서 소득보장을 하지도 않고, 우리로선 최소한 2등 가격인 40㎏ 한 가마 당 5만7760원에라도 사달라고 농협에 요구해도 안 들어줘. 요즘 2등가 쌀이 어디 있어? 대부분 1등가(6만1000원) 쌀이제.”

농협이 수매한다던 400만 섬도 농민들로선 언 발에 오줌누기일 뿐이다. 수매가로 사면 몰라도 시중가격으로 농협이 산다면 아무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농민들 죽으란 얘기여. 농자금을 무이자로 해주던가. 이젠 땅을 팔고 농촌을 떠나고 싶어도 못 떠나. 누가 땅을 사려고 하겄어?”

더 이상 풍년가는 울려 퍼지지 않는다

정읍농민회 최종호 간사는 정부의 농업정책이 농촌 현장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나 일본은 논농업 직불제나 환경보조금 등을 통해 농민들의 소득을 보장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도 WTO나 미국과의 협상에서 끌려다니지만 말고 농가 소득보장과 식량안보 차원에서 농업정책을 근본적으로 다시 짜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농촌에서 더 이상 풍년가는 울려 퍼지지 않는다. 풍년을 감사하는 마을잔치 대신 울분과 절망에 가득 찬 농민들이 쓴 소줏잔을 기울이며 삶의 고통을 토로하고 있었다.

최경석(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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