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1월 2002-12-30   567

‘난동부리는 미군 없으니 조용하고 좋네!’

홍대앞 클럽가 촛불시위 이후 미군출입 줄어


여중생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 주최로 10만 범국민대회가 서울 광화문에서 열리던 지난 12월 14일. 서대문과 종로에서 모여든 인파는 광화문 사거리를 가득 메웠다.

87년 6월항쟁 이후 15년만에 우리 국민들은 광화문을 ‘미국반대의 성지’로 만들었다. 작은 양초 하나로 여중생압사사건을 추모하며 부시 사과와 불평등한 한미SOFA협정을 개정하라는 목소리는 반도의 지축을 흔들었다.

집회 참가자들의 양상도 과거와 많은 차별성이 느껴졌다. 학생운동 혹은 사회단체 중심의 성토대회가 아니라 연인, 청소년, 가족 단위의 집회 참가자들이 많아 ‘월드컵 응원전’의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다.

특히 386세대로 보이는 젊은 부부는 아이를 업고 걸리며 촛불시위에 동참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한 시민은 “지나가다 우연히 촛불시위를 목격하게 됐고, 취지에 공감해 이 자리에 서 있다”며 “어린 아이의 부모로서 미군 측의 무례한 태도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인다”고 말했다.

연일 계속 되는 촛불집회는 비폭력·평화·인권 등 세계시민으로서의 면모를 갖춰 가는 우리 국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발견하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집회장에서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총성과 함께 꺼져 가는 어린 생명에 대한 걱정도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를 염원하는 시민의 물결은 지난 봄 월드컵 때 붉은 악마의 응원열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하다. 축제 분위기에서 ‘FUCKING USA’와 ‘윤도현밴드의 아리랑’을 부르며 여중생 압사사건을 추모하는 시민들은 참혹하고 참담한 심경을 노래로 승화하며 불평등한 SOFA를 개정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미군 출입을 금지합니다!

같은 날 밤 9시. 기자는 시청 앞과 광화문에서의 열기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홍대 앞 클럽가로 옮겼다. 이곳은 평소 주한미군들이 이태원을 벗어나 맥주를 즐기며 한국 여대생들을 희롱한 바 있어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른 적이 있다.

광화문 일대나 지하철 안에서는 종이컵과 양초를 든 시민들을 쉽게 볼 수 있었지만 홍대 앞은 평소의 풍경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시청앞 촛불시위를 아는지 모르는지 화려한 옷차림의 젊은이들이 여럿이 짝을 지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외국인들도 제법 눈에 띈다. 송년회 등 약속이 많은 세밑인데다 쌀쌀하던 날씨가 오랜만에 풀려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삼삼오오 몰려다니고 있었다.

때로 술 취한 사람들끼리 시비가 붙어 소란이 일기도 했다. 한국인들이다. 한쪽에선 미군범죄를 응징하는 움직임이 전 국민적으로 일고 있는데 홍대 앞은 다른 세상이라도 되는 듯 평화롭게 보이기까지 했다.

“금요일이나 토요일에는 여기가 한국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해요. 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들 중 절반은 외국인이죠. 미국인, 그 중에서도 미국 군인이 제일 많고, 일본에서 온 관광객들도 쉽게 볼 수 있어요.” 이 지역 주민의 말이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가 요즘 많이 바뀌었다고 한 클럽 직원은 귀띔한다.

“미군 문제로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기 시작한 이후 미군들이 많이 줄었어요. 미군들이 클럽에서 소란을 피우거나 싸움을 벌이는 일이 잦아 클럽들이 미군을 매우 싫어해요. 여중생사건 때문만은 아니죠. 지난 가을부터는 미군 출입을 금지하는 클럽까지 생겼을 정도니까요.”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는 한 미국인은 “오늘처럼 홍대 주변에 미군들이 없는 걸 처음 본다”며 “조용해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태원에서는 미군들이 싸움을 하면 단속을 하는 미군이 따로 있지만 홍대 주변은 그런 염려가 없기 때문에 미군들이 더 몰린다”며 “같은 미국인이지만 우리도 미군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미군범죄 막을 대책 세워야

이에 대해 미군 배속 한국군(KATUSA)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는 김 아무개 씨(22세)는 “이태원이나 홍대 앞에서 미군들이 사고를 많이 쳐 주민들의 항의가 많이 들어온 모양인지 얼마 전에는 주말에 이태원과 홍대 앞에 가지 말라는 명령이 떨어지기도 했다”고 일러줬다.

평소 홍대 주변을 자주 찾는 김형미 씨(26세)는 미군들 얘기에 눈살부터 찌푸린다.

“미군들은 여럿이 몰려다니고, 반드시 여성을 동반해요. 노출이 심한 옷차림의 여성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을 보면 불쾌한 기분이 드는 게 사실이에요. 미군이 지나가는 여성들을 붙들거나 거리에서 술병을 깨며 난동을 부리는 장면도 많이 봤어요.”

이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결 같이 “미군이 싫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에게 미군범죄는 여중생사건처럼 멀리 있는 사건이 아니다. 크고 작은 사건들과 오만 방자한 행동들에 이미 질릴 대로 질려 있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주둔한다는 미군. 그러나 그들에게는 한국인을 보호하고 미국의 이미지를 이 땅에 좋게 심어야 한다는 최소한의 사명감도, 자존심도 없다는 것이 이들을 가까이에서 보아온 사람들의 증언이다. 지금 홍대 앞의 평화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촛불시위가 끝나고 미군범죄를 근절할 어떤 대책도 마련되지 않은 채 흐지부지 넘어간다면, 악순환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황지희(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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