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1월 2002-12-30   911

고 신효순 심미선 양 부모님의 심경토로

‘최소한 과실치사는 인정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지난 6월 신록이 우겨졌던 들녘엔 어느덧 황혼이 내려앉았다. 가을걷이 끝낸 논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낯선 얼굴을 응시할 뿐 반가워하는 기색이 없다. 효순과 미선이 살던 경기도 양주군 효촌2리는 고즈넉했다. 젖소들은 여물통에 고개를 박고 있고, 하늘을 휘휘 돌던 산까치는 가지 많은 나무에 살포시 앉았다.

효순이네 집은 여느 농가의 겨울풍경처럼 군불을 지피며 메주콩을 삶고 있었다. 마른 나뭇가지 타는 향에 섞인 구수한 콩내음. 훈훈한 시골인심이 코끝에 머물렀다.

마당에서 일하던 효순의 부모님은 기자가 들어서자 “남들은 다 끝낸 일을 우리는 이제야 하고 있다”며 “예년에는 네 가마씩 메주를 띄웠는데 올해는 두 가마도 어려울 것 같다”고 씁쓸해 한다. 지난 6월 효순이를 떠나보내고 일손을 놓은 터였다.

고향마저 떠나고 싶다

효순이네 집은 겉으로 보기에 지난 6월 사고 당시 기자가 찾아갔을 때와 달리 효순의 흔적이 많이 사라져 있었다. 효순이가 쓰던 책상은 막내 남동생에게 물려져 있었고, 효순의 교복도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 다만 마루에 효순이가 그린 풍경화가 한점 걸려 있을 뿐이었다.

“자꾸 생각나니까…. 남은 자식들 생각도 해야지요. 막내가 자꾸 지 작은누나를 찾아서 더 그래요. 생전 태극기 한장 그리지 않던 아이가 성조기를 그리며 누나를 죽인 나라라고 욕해요. 아침에 눈뜨면 꿈에 누나를 봤다고 그러고.”

효순이 어머니는 저녁 무렵이 되면 어김없이 마을 어귀 비닐하우스 근처에서 ‘엄마!’라고 소리치며 효순이가 곧 집으로 들어올 것 같다며 한숨을 쉰다. 아버지 신현수 씨도 억울하게 딸을 잃은 심정을 분노로 드러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다니요. 그럼 애들이 잘못해서 죽었단 말입니까? 추모비 만들고 사과까지 해놓고 법적으로는 무죄라니요. 장난합니까? 이건 한국사람을 너무 우습게 알고 내린 판결이에요. 상식적으로 앞뒤가 안 맞는 행동이잖아요. 초동수사는 물론 이번 재판에도 한국측 증인은 단 한 명도 세우지 않았어요. 우리한테 말도 안 해주고 지들끼리 현장검증하고. 재연할 때도 지들 멋대로 하고. 불평등한 SOFA가 개정되지 않는 한 이런 문제는 되풀이될 거예요.”

이번 사건 이후 경기도 예산으로 효촌2리에서 효촌초등학교까지 3km 거리에 인도를 설치하겠다고 했으나 학부모들은 불안하다. 지금도 그 길로 ‘고사리 손’들이 등하교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군 때문에 가끔 농작물 피해를 입긴 했어도 반미감정이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양심 있는 국가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타국의 주권을 이리도 무시할 줄은 몰랐어요. 최소한 과실치사는 인정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사건이 한미간 동등한 입장에서 조사만 제대로 이뤄졌어도 이렇게 분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범죄를 저지른 미군에 대해 우리 사법부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습니까. 그저 범인을 인계하는 것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이 협정이 도대체 말이 되는 겁니까. 이건 반드시 바꿔야 합니다.”

신현수 씨는 격노했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주한미군에 대해서도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고 있지만, 무능하기 짝이 없는 한국 정부와 정치인에 대해서는 차라리 냉소가 터져 나왔다.

“정치가 왜 있습니까. 우리는 왜 신성한 한 표로 그들에게 우리를 대신해 일해달라고 부탁합니까. 전 이해되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유력한 후보들이 미국과 SOFA 개정에 대해 왜 소극적인지, 도대체 누구 눈치를 보며 한국에서 정치를 하는 것인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누구를 위해 정치인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치논리만 있고 그 안에 국민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우리 국민을 제대로 보호해줄 수 있는 겁니까.”

효순의 아버지는 담배 한 모금을 길게 빨고는, ‘후∼’하고 긴 한숨을 뱉었다. 신현수 씨는 효순이가 그렇게 황망하게 떠난 지 6개월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사망신고를 하지 못했다.

“갔다가 도로 오고, 갔다가 도로 오고 그랬어요. 주민등록에서마저 지워버리면 진짜 간 걸로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래요.”

그는 아직 가슴에서 딸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삭발하는 여대생들을 보며

한 동네 사는 미선이네도 침울하기는 마찬가지다. 미선이 아버지 심수보 씨는 사건 이후 보수적으로 행동했던 자신에 대해 자책하고 있었다.

“저는 그동안 미군이 우리의 우방이라고 생각했어요. 전방 지역에 살다보니 미군에게 도움 받는 것도 많았고 동맹국가라고 생각했지요. 구호품 받아먹던 생각도 나고. 저는 제 딸을 그렇게 허망하게 잃고서도 선뜻 집회 등에 나서지 못했어요. 다른 자식들이 하나는 고3이고, 다른 하나는 고2여서 행여나 이 일로 방황하게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지요. 그런 제가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어느 부모가 자식이 데모한다면 좋아하겠습니까.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나 지금 저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삭발하는 대학생들 보면서 너무나 가슴이 아팠고요. 저 아랫녘 지방에서까지 올라와서 촛불시위에 동참하는 국민들을 보면서 너무나 감사하고, 그 분들이 진정한 애국자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무죄판결에 대해서도 심수보 씨는 “형평성에 어긋난 판결”이라고 잘라 말했다.

“힘의 논리로 재단한 판결이지요, 뭐. 한국 사람은 무시해도 그만이라는 생각 아니겠어요? 그게 괘씸하지요. 저는 리노 병장도 문제지만 실제 그 작전을 지휘한 지휘관이 더 문제라고 생각해요. 좁은 도로 여건을 알면서도 궤도차량이 교행하도록 지시한 그 사람이 진짜 책임지고 형벌을 받아야지요. 그런데도 그 놈의 SOFA 때문에 한국 검찰이 출국정지 명령을 내렸어도 가버리면 그만이라면서요? 한국정부도 웃겨요. 힘없는 농민이 그랬어봐. 당장 가둘텐데. 정부에서 너무 안일하게 대처하는 것도 분해요. 국민들은 나서서 항의하고 있는데 정치권과 정부는 뒷짐지는 식 아니에요?”

해질녘 미선이 부모님은 추모비 앞에 섰다. 어머니는 휴지로 추모비를 닦으며 “길거리라 그런지 여기는 먼지도 많다”며 눈물을 떨구었다. 물끄러미 추모비에 새긴 글을 읽으며 어머니의 눈가에선 연신 길고 굵은 눈물 방울이 떨어졌다. 아버지는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대신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지금은 겨울이라 좀 썰렁하지만 봄이 되면 나무도 심고 꽃도 심을 거예요. 사철나무도 좀 심어야지. 지금은 여기가 땅도 질고 그래서 뭘 할 수 없지만, 좀 지나면 해야지요. 내 손으로 우리 딸 추모비를 도안할 줄 알았겠어요?”

아버지는 묵묵히 추모비 곁에 서 있었다. 추모비 앞에 선 아버지는 분루를 삼키며 가슴속으로 미선이를 목놓아 부르고 있다.

장윤선(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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