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1월 2002-12-30   782

‘편안하게 죽을 권리도 없나요?’

암환자에게 호스피스와 완화치료를


죽음을 눈앞에 둔 환자와 가족의 바람은 하루라도 더 사는 것만이 아니다. 진정한 소망은 환자가 하루라도 더 고통받지 않고 편안하게 삶을 마감하는 것이다.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가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이른바 완화의료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갈수록 커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해마다 5∼6만 명이 암으로 목숨을 잃는다. 말기암환자가 병원에서 사망하는 확률도 1989년 12.9%에서 2000년 35.9%로 크게 높아져 말기암환자에 대한 부적절한 관리가 심각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죽음을 앞둔 환자가 평안하게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종합적으로 돌보는 호스피스 및 완화의료를 말기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40년 전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호스피스가 도입되었으나, 여러가지 여건이 갖춰지지 않아 아직까지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 최근 호스피스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늘어나면서 제도화 필요도 부각돼 정부는 호스피스의 제도화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환자의 통증도 관리하라

“간암 말기의 환자가 혼자 집에 있다. 다른 식구들은 모두 직장에 나갔거나 학교에 가서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환자는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집에 있어도 병원에 있는 것과 똑같다고 말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 씩 의사와 간호사 혹은 자원봉사자가 방문진료를 하기 때문이다. 병원은 언제나 연락이 되고 환자의 통증에 대비할 준비가 되어 있다. 속효성 진통제만 있다면 이렇게 24시간 대비할 필요는 없다.”

지난 11월 8일 국립암센터에서 열린 심포지엄 ‘한국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화’에서 그동안 말기암 환자를 취재해온 용태영 KBS 기자가 발표한 서울 독산동 한 가정의 사례다.

‘마치 지옥 속을 헤매는 것 같다’는 환자들의 호소는 한 번이라도 암환자의 치료를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라면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호스피스와 완화의료는 현대의학으로 치료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환자들을 대상으로 ‘통증 및 증상 완화’를 주요 목적으로 하는 치료다. 따라서 호스피스·완화의료에서는 검사·치료·투약 뿐 아니라 심폐소생술 등 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의료행위는 제외된다. 미국의 경우 기대할 수 있는 생명연장의 기간이 6개월 이내인 환자에게 일반진료 대신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요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국립암센터 윤영호 과장이 최근 암환자 및 가족 687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 말기 상황에 있는 환자에게 의학적으로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심폐소생술 등을 실시하지 않는 것에 대해 환자와 가족의 70%가 찬성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경제적인 문제도 깔려 있다. 2000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말기환자의 임종 전 1년간 의료비는 평균 564만 원, 이중 58%가 임종 전 석달 동안 지출된다. 호스피스가 정착되면 이 비용이 최대 40%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환자와 가족들은 이제 생돈 쓰면서, 환자에게 고통은 고통대로 주는 의료행위가 과연 누구를 위해 필요한 것인지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호스피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40개 의료기관을 포함해 모두 64곳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호스피스는 하나의 의료체계로 제도화되지 못하고 있고 40개의 의료기관 중 호스피스 독립병동 및 독립시설을 운영하는 곳은 13개, 253병상에 불과하다. 매년 발생하는 말기암환자 5만 여 명을 포함해 호스피스·완화의료가 필요한 환자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공급량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03년 상반기 중 호스피스법을 제정해 행·재정적 지원에 나설 계획이며 호스피스에 대한 건강보험 수가체계도 마련 중이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호스피스 서비스 제공체계는 크게 의료기관과 별도의 독립 호스피스 시설로 나뉜다. 입원환자와 재가환자를 대상으로 한 호스피스 서비스 제공이 한 축, 다른 한 축은 별도의 독립 호스피스 시설이다. 보건복지부 이용홍 보건정책국장은 “호스피스도 의료행위의 하나로 환자의 상태에 대한 의학적 평가가 동반되어야 하므로 의료인 배치가 필수적”이라며 “관리 감독이 소홀할 경우 무분별한 독립 호스피스 난립으로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고 장기적으로 건강보험 재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윤리적 갈등의 문제

그러나 호스피스 서비스 확대를 위해 더 시급한 문제는 임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부교수는 “의료인이 호스피스와 같은 완화의료를 행하는데 가장 큰 장해요인은 말기암 환자에게 인공호흡기나 심폐소생술과 같은 의미 없는 치료를 중단하는 것을 ‘살인방조’나 ‘소극적 안락사’를 시도하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사회의식 및 의료법 체계”라고 지적했다. 허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법체계는 말기 암환자에서 무의미한 치료를 중단하는 과정까지도 의사가 ‘소극적 안락사’를 결정한 것으로 판단하여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는 의미 없는 치료의 중단과 안락사는 분명히 다른 것이라고 강조한다. 의미 없는 치료의 중단은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결정이며 환자 입장에서 득실을 고려해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노력을 말한다. 반면 안락사는 철회의 여지가 없으며 치료를 계속하면 환자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도 치료를 중단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함께 허 교수는 “지금처럼 환자를 위한다면서 불치병에 걸린 사실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알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환자가 자기 병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치료 방법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약성 진통제에 대한 재인식도 필요하다. 호스피스·완화치료에서 환자의 고통, 특히 암환자의 고통을 치료하기 위해 가장 쉽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약물이다. 그러나 현행법상 의료에 필요한 마약성 진통제는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분류돼 사용에 제약이 많다. 가톨릭의대 내과학 교실 홍영선 교수는 “정부가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마약중독을 경고할 때 의료용 마약은 중독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용 마약이 마약중독자의 손에 흘러 들어가 중독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걱정은 오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호스피스와 완화치료 논의의 전제조건은 치료중단의 이유가 경제적 이유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 경우 환자에게 적극적인 치료를 중단하는 것을 합법화하자는 요구로 잘못 받아들여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죽음의 운명을 알고 있는 환자의 고통을 사회 전체가 나누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할 때다.

황지희(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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