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1월 2002-12-30   280

선거결과 분석과 그 의미

유권자, 침몰하는 정치를 살리다


손에 땀을 쥐는 승부를 연출했던 16대 대통령선거가 끝났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한편의 정치드라마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를 만들어냈다. 이번 대통령선거의 키워드(key word)는 한마디로 ‘변화’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출현은 우리 정치의 커다란 변화를 의미함에 틀림없다. 그러나 노 후보가 당선될 수 있었던 과정을 돌아보면 단순한 정치적 변화를 넘어서 사회 전반의 변화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16대 대선이 남긴 변화의 의미를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 지역대결구도 완화 ]

정치사적으로 이번 대선의 의미는 3김정치의 마감이라 할 수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 정치를 지배해 왔던 3김은 이번 대선에서 설자리를 잃었다. 김대중 대통령이야 퇴임을 앞두고 있으니 논외로 하더라도,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는 대선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려던 시도가 무산된 채 대선 정국의 변방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각 후보들에게 3김은 더 이상 원군이 될 수 없었고, 오히려 표를 잃게 할 위험이 큰 기피 대상이 되었다. 정치환경의 변화는 더 이상 3김의 역할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선은 탈(脫) 3김의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하는 선거였다. 물론 각 후보들이 얼마나 그에 부응하는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 주었느냐는 별도로 평가할 문제이겠지만,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앞으로 탈3김의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이 등장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더욱이 정치변화를 지향하고 있는 노무현 당선자가 집권하게 됨으로써 이 같은 정치틀의 변화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의 등장은 지역정당 구도의 해체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이번 대선은 지역대결 구도가 상당히 완화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어 지역정당 구도의 해체에 대한 기대를 높여 주었다. 물론 호남지역에서의 몰표 현상에 대한 해석의 문제와 영남지역에서의 지역변수가 여전히 남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지역대결 구도가 크게 완화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충청권에서 자민련이 퇴조하며 지역감정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진 것은 지역대결 구도를 완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지역대결 구도의 완화는 그 동안의 낡은 사당적 구조를 해체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특정 지역 맹주가 정당을 사유화해 온 그간의 정당구조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집권당이 된 민주당의 경우 대권-당권 분리 원칙에 따라 대통령이 당을 사당화 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이회창 씨가 은퇴한 한나라당의 경우도 절대적인 지도력이 사라짐에 따라 사당구조의 해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전망이다. 이런 변화들은 우리 정치에 탈3김의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이 등장할 수 있는 조건이 되고 있다.

[ 선거문화의 변화와 유권자 혁명 ]

중요한 점은 이런 변화들이 유권자들의 높은 정치의식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각 정당들은 폭로비방의 네거티브 선거전을 시도했다. 그러나 정작 유권자들의 반응은 냉담했고, 승부수로 던진 대형 폭로조차도 선거전에서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나라당이 패배했던 것은 그저 “DJ만 때리면 표가 나온다”는 식의 구태의연한 네거티브 전략이 낳은 자업자득의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네거티브 전략이 사실상 무력화되면서 정당들은 포지티브한 자신들의 의제를 제시하는 쪽으로 눈을 돌려야 했다. 이런 현상은 바로 유권자들의 힘이 선거문화의 변화를 주도했음을 의미한다.

정몽준 대표의 노무현 후보 지지철회 선언이 막상 승부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것도 결국 유권자들이 그 같은 결정의 비합리성을 충분히 읽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50대 두 정치 지도자 사이의 후보단일화에 따른 시너지 효과의 의미를 정 대표 자신도 전혀 읽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고비용 선거의 퇴조 또한 주목할 만한 일이다. 미디어선거의 정착은 과거와 같은 대규모 군중동원 유세를 사라지게 만들었고, 이는 엄청난 돈을 뿌려대던 기존 선거문화의 획기적인 변화로 이어졌다. 게다가 대선유권자연대와 같은 시민운동진영의 선거자금감시활동은 고비용 선거를 극복하는데 의미 있는 역할을 하였다. 16대 대선은 이렇게 의미 있는 변화들을 낳았고, 이 같은 변화는 다름 아닌 유권자들이 주도했다.

[ 젊은 세대의 등장과 인터넷 ]

이번 대선에서는 이 같은 정치적 변화를 넘어서는 더욱 중요한 사회적 변화의 추세를 읽을 수 있었다. 선거에서 젊은 세대가 만들어낸 돌풍은 우리 사회의 여론주도층이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지난 6월 월드컵 때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며 길거리로 나섰던 젊은 세대는 얼마 전에는 소파(SOFA)개정을 요구하는 촛불시위를 만들어냈고, 이번에 다시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세 가지 사건 사이에는 일관된 정치문화적 흐름이 자리잡고 있다. 젊은 세대는 더 이상 기성세대에게 지도 받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사회에 대한 자신의 의견과 감정을 거리낌 없이 표출하는 집단으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이번 대선이 세대간 대결양상으로 진행되었던 것도 젊은 세대의 이 같은 정치문화적 변화에 크게 영향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번에 드러난 세대간 간극을 좁히는 문제도 사회적 과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같은 세대간 통합 노력도 우리 사회 여론형성 지도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다면 공허한 시도로 끝날 수 있다.

이번 대선의 주역으로 등장한 젊은 세대의 손에는 마우스가 쥐어져 있었다. 그들은 인터넷을 통해 정치적 눈을 떴고 여론을 형성했으며,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을 통합시켰다. 그토록 개별적이고 자유분방한 인터넷 공간을 통해 세력화가 이루어지는 역설이 성립하게 된 것이다. 인터넷을 무기로 통합된 젊은 세대 앞에서 고령 세대는 파편화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흔히 이번 대선을 가리켜 인터넷의 승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조중동’에 대한 인터넷의 승리라는 좁은 틀에서 이해될 문제는 아니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의사소통과 여론형성 방식의 근본적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인터넷은 앞으로 상당기간 우리 사회의 여론을 주도해나가는 공간으로 위치하게 될 것이며, 그 비중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사회적 변화 추세를 읽지 못한 채 오프라인 시대의 낡은 사고에만 매달려있던 세력들은 이번에 모두 실패를 맛보았다. 오프라인 시대의 사고와 전략을 가지고 인터넷 시대의 선거에서 이기려고 했던 한나라당이 그러했고, 오프라인 신문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인터넷을 집요하게 공격했던 특정 신문사 또한 자신의 정치적 의도를 이루지 못한 채 여론 시장에서 참담한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이번 대선의 결과는 오늘 진행 중인 변화의 의미를 읽지 못하는 집단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음을 말해 주고 있다. 스스로 변화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교훈을 말이다.

유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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