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1월 2002-12-30   431

긴급좌담-‘국민은 완벽한 판갈이를 원한다’

사회 : 장윤선(참여사회 편집장)

참석 : 왼쪽부터 김상희(여성민우회 공동대표)

         이재영(민주노동당 정책국장)

         문성근(개혁국민정당 실행위원장)

장윤선 : 이번 대선은 막판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요동쳤다. 그만큼 이번 선거에 대해 할 얘기들이 많을 것 같다. 이번 대선이 흑색선전이나 상호비방, 돈선거로 얼룩지지 않고, 그나마 미디어를 통한 정책선거를 펼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는데, 한복판에서 이번 선거를 치른 여러분들은 어떻게 평가하는지 듣고 싶다.

문성근 : 6월항쟁을 이끌었던 세대가 주축인 노사모는 무기력해진 일상 속에서 노무현으로부터 희망을 발견하고 모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이론가들이 참여하면서 단순히 지역통합뿐만 아니라 폭넓은 우리사회 개혁과제들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이번에 정말 열심히 활동했다. 네티즌 또한 선전했다. 인터넷은 우리의 유목민적인 성향에 적합한 공간인 것 같다. 또한 논리적 허점이 많은 흑색선전이 예전엔 받아들여졌는데 지금의 네티즌은 이를 반박하고 조롱할 수 있었다.

장 : 선거 막판에 정몽준 씨의 노무현 지지철회로 이번 선거의 최대 피해자는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되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나돌았다. 민주노동당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이재영 : 패배나 승리를 단정하기에는 아직 어려운 것 같다. 하루 직전에 빠져나간 표가 있지만 전체적인 선거국면에서는 덕을 많이 봤다. 당내에서도 이미 합의한대로 이번 선거는 디딤돌이고, 2004년에 승부를 걸기로 했다. 무엇보다 TV토론을 거치면서 국민들이나 당원들의 기대심리를 높일 수 있었다. 민중당 시절부터 네 번째 선거캠프에 참여하고 있는 입장에서 볼 때 이번 대선은 첫째, 이슈가 실종된 선거였다고 본다. 87년부터 97년까지는 국민들이 세부적인 정책은 모르더라도 군부독재 퇴진이라는 민주주의에 운명을 걸었다.

북풍과 행정수도 이전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르긴 했으나 실제 표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국민들을 흥분시킬만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민주노동당이 제기한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 대단히 사회주의적인 정책들이 실천적 지수가 아니라 인구에 회자되는 정도에 그쳐 아쉽다. 둘째, 장년층이 주도하는 선거는 아니었다. 언론이 말하는 대로 청년층의 자발성과 인터넷에 따른 세대교체가 큰 변화로 나타났다. 또한 올해만큼 역동적이었던 경우도 없었던 것 같다.

[ 대선연대, 정책선거 주도 ]

장 : 2000년 총선연대에 비교하면 올해 시민운동은 도대체 뭘 했느냐는 비난이 터져나올 정도다. 그만큼 활동이 미약했다. 시민운동 내부에도 혹독한 비판이 있을 텐데, 대선유권자연대는 이번 활동에 대해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는가.

 
  김상희(여성민우회 공동대표)
   

김상희 : 대선유권자연대는 총선연대에 대한 국민들의 호응과 기대가 있다는 부담을 안고 시작했다. 하지만 현행 선거법에 얽매여 당선운동 같은 것은 할 수 없었다. 다만, 낡은정치 청산, 정책선거, 선거참여 등 세 가지 기치로 들고 출발했다. 전반적으로 시민단체가 이끌어내고자 했던 이 세 가지 방향은 대체로 성공했다고 본다. 하지만 유권자연대나 시민단체의 힘이 아니라 다른 힘에 의해서 성취됐다고 본다. 이 점에 대해 시민운동은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이번 선거가 쟁점 없는 불분명한 선거였다고 하지만 막판에는 분명했다고 본다. 노무현 측의 ‘낡은정치 청산’ 구호가 나중에는 먹힌 것이다. 구태 정치를 반복하는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의 모습이 사실상 국민들의 정치개혁 열망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 하나는 이번 선거기간 동안 여중생압사사건에 따른 우리 국가의 자주성, 주체성에 대한 억압된 욕구들이 표출되었다는 점이다. 이 또한 시민단체가 주도했다기보다 네티즌의 자발적 힘에 의해 폭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평가할 때 시민운동은 이번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 : 노무현 역시 낡은 정치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아닌가? 개중에는 ‘노무현은 민주당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여전히 민주당 소속이다. 기성 정치권에서 노 당선자가 지녔던 다른 색깔을 유지하려면 기존의 제왕적 대통령상이나 보수세력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이다. 또 김상희 대표가 선거 막판에 정책차별화가 이뤄졌다고 평가했으나, 따지고 보면, 선거 초반에는 민주당, 한나라당, 민노당이 약간씩 달랐다. 그러나 막판에는 ‘정책수렴화’ 현상이 나타나 후보간 편차가 없었다. 결국 정책경쟁이 이뤄진 게 아니라 대규모 이슈가 없는 상태에서 자잘한 이슈를 가지고 서로 거짓말해도 부담이 없고 티도 안 났던 것이다.

문 : ‘노무현은 민주당이 아니다’라는 말은 국민경선 초반 노무현조차 분명히 인식하지 못했던 국민들의 변화와 개혁의 욕구가 마그마처럼 끓기 시작하면서 나온 것이라고 본다. 옆에서 지켜본 바에 따르면, 국민경선 후 불어닥친 국민들의 변화와 개혁의 욕구에 대해 민주당 사람들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민주당에는 그런 분위기를 감지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노무현 씨가 어떤 의지를 가지고 돌파해나갈지 지켜봐야겠지만 앞으로 정당구조는 민노당이나 개혁국민정당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회비 내는 ‘진성 당원’이 없는 정당은 진정한 정당이 아니다. 이번 선거에서 요동 친 국민들은 완벽한 판갈이를 요구하고 있다. 이 점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민주당이 여기서 멈춘다면 비전은 없다. 분명 정대철 씨와 한화갑 씨가 당권경쟁 할 것이고, 그럼 과거 정치 판으로 회귀하는 거다. 이건 희망이 없다. 반드시 정계개편이 이뤄져야 한다. 지금의 대의원, 당원구조로는 전혀 안 되고, 민주당 스스로의 환골탈태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나는 선거가 끝났기 때문에 노무현 당선자를 만날 일도 없지만, 이 지면을 통해 노무현 당선자에게 꼭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이대로 가면 망하고, 서둘러 개혁당 형식의 집권당을 만들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그래야 지금 국민의 뜻이 반영될 수 있다. 동시에 언론환경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족벌언론을 그냥 둔 채 개혁을 완성할 수 없다. 언제든지 그들의 덫에 말려들 수 있다. 그런 상황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지금의 변화들이 우연적 상황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 족벌언론 두고 개혁 못한다 ]

장 : 그동안 시민단체는 준정당적 기능을 수행해왔다. 하지만 이번 선거를 통해 볼 때, 앞으로 민주노동당이나 개혁국민정당 등이 그 역할을 본격화 할 것으로 보인다. 매우 반가운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시민운동은 정체성의 혼란이 올 수 있다.

김 : 시민운동진영엔 ‘정치적 중립’이라는 중요한 화두가 있다. 그동안 국민들은 시민운동에게 ‘제발 너희들은 그 더러운 정치권에 가지말고 중립을 지키며 한국사회의 개혁을 위해 일하라’는 요구가 은연중에 깔려 있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겪으면서 이 지점에 대해 시민운동은 본격적인 논의를 펼쳐야 하는 게 아니냐는 고민이 들었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 국민들은 정치권에서 떨어져 감시하고 뭘 제안하는 차원이 아니라 직접 참여해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이건 새로운 정당정치의 출발을 알리는 좋은 신호다. 실제로 개혁국민정당 자체가 표방하고 있는 게 정당운동 아닌가. 정치에 참여해서 돈을 내고 후보 만들고 정권을 잡는 과정에 실제로 시민들이 참여해 성공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는 더러운 게 아니라 매우 역동적이고 감격스러운 것이라는 걸 보여줬다. 밑으로부터의 혁명적 변화를 체험한 것이라고 본다. 이제는 정당운동이라는 새로운 영역이 정치기반의 변화를 일으킬 것 같다. 바람직한 정계개편을 위해 국민들이 정당운동에 참여하는 방식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현행 선거법에 묶여 최소한의 것만 했다. 새로운 운동에 도전하지 못했다. 국민들은 요동치고 있는데 시민단체는 ‘정치적 중립’에 발이 묶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대선이 끝났으니 시민운동은 진지한 성찰을 해야한다. 앞으로 시민운동의 ‘정치적 중립화’ 문제는 뜨겁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문성근

(개혁국민정당 실행위원장)

 
   

문 : 나도 시민단체의 정치적 중립은 대단히 불만스러웠다. 하지만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개별적으로 민주노동당이든, 노사모든 들어가 개미당원으로 활동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실제 같이 활동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다.

이 : 시민단체의 정치적 중립은 사실 좀 문제다. 중립적인 척하지 말고 속 시원히 얘기해야 한다. 민노당의 입장에서 볼 때, 언론개혁도 좀 다르게 보인다. 조중동만 문제라고 말하지만, 실은 『한겨레』와 『오마이뉴스』도 문제다. 노무현 당선자에게 유리한 보도를 한 것 아닌가. 방식이 세련되지 못하고 더 노골적이라는 게 조중동과의 차이라면 차이다. 『한겨레』든 『조선일보』든 자기들이 중립적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독자들도 알아야 한다.

김 : 외국은 제도정치권 내에서 국민적 요구를 소화한다. 시민단체들은 제도권에서 못하는 대안적 욕구를 수렴하는 신사회운동을 80년대에 주도했다. 우리는 정당정치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민주화 세력들이 보수정당에 투항했고, 결국 개혁에 실패하고 말았다. 지금 현실에서 시민단체들은 서구의 신사회운동처럼 제도권이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대안운동도 해야하고 준정당 역할도 해야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분화될 필요가 있다.

장 : 노사모, 대선연대, 민노당 모두 한국사회의 개혁과 진보의 입장에서 볼 때 운동성을 가진 조직이라고 본다. 각자 펼친 이번 활동의 성과와 한계를 지적한다면 무엇인가.

이 : 노사모 회원들이 민노당 당원들보다 자발성과 적극성에서 훨씬 앞선다. 민노당의 경우 정치와 이념을 가지고 있는데 노사모는 여기에 감성까지 있다. 민노당은 당론의 완결성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우리 당이 아직 원심력이 아닌 구심력으로서의 자기중심은 노사모보다 약하다는 점이 나타났고 이런 점을 강화하는 것이 과제다.

문 : 노사모의 해체와 존속 여부에 대해 논의가 이루어질 것이다. 실제로 이번 선거기간 동안 많은 활동을 했다. 경기 북부 연천의 경우 공식선거기간이 시작되자마자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15%였는데 이걸 46%로 끌어올렸다. 이를 통해 회원들이 얻은 건 자신감이다. 뛰는 만큼 변할 수 있다는 것. 그건 철저히 개미들에 의해 가능한 일이었다. 개인적으론 이제 권력화 문제가 걱정이다.

그래서 취임하기 전에 해체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개혁정당과 조아세(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시민모임)는 지역별 NGO로 흩어지면서 집권 후에는 더 이상 노사모라는 이름은 쓰지 말아야 될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회원을 받지 않고 있다. 노사모 구성원들의 진정성과 관계없이 이것이 세력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이상한 기대를 걸고 몰려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 점이 우려된다. 경선 끝나자마자 나한테까지도 공천을 달라고 한 사람이 있었다. (모두 웃음)

[ 노정권, 사회복지와 분배에 관심 쏟아야 ]

장 : 민노당은 지금까지 시민단체들과 활발하게 정책연대를 해왔다. 노사모나 개혁당 역시 한국사회의 개혁과 진보라는 큰 틀에서 연대를 제안할 가능성이 높은데,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으리라 보는가.

 
  이재영(민주노동당 정책국장)
   

이 : 시민단체와의 정책협의와 연대는 이제껏 해온 것처럼 계속될 것이다. 대선연대가 제시한 100대 정책과제 중 겹치는 부분은 함께 할 것이다.

김 : 정치관계입법 개정은 정당개혁을 위해 중요한 것이다. 이런 부분은 충분히 정책연대가 가능하지 않겠는가.

문 : 정당개혁운동은 시민사회단체든, 노사모든, 민노당이든 같이 가야할 길이다. 시민단체가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한다고 천명해도 최소한 활동가를 비롯한 임원들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옳다고 본다. 이뿐 아니라 사업별 연대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중선거구제를 위한 선거법개정 운동의 경우 개혁당과 민노당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언론개혁에 시민단체와 모든 정파가 달려들어야 한다고 본다. 이걸 정상으로 바꾸어놓지 않는 한 살얼음판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장 : 오늘 좌담은 승리적 관점에서 매우 흥미진진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보수세력인 한나라당이 여전히 국회 과반수 이상의 의석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상태에서 과연 노무현 당선자가 자신의 색깔을 유지하며 국민의 뜻을 반영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떻게 내다보고 있는가.

김 : 노무현을 중심으로 한 개혁정당이 새로운 형태로 새로운 정당문화를 만들어가면 구태한 정당은 살아날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 시민참여에 의한 개혁정당운동이 어떻게 펼쳐지느냐에 따라 한나라당이 떠밀려 변화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문 : 정당개혁의 성패에 달렸다고 본다. 이에 앞서 언론개혁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비판할 것과 환골탈태할 대상을 구분하자. 시민단체들은 권력을 감시해야겠지만 권력이 제대로 서 있지 못한데 감시해봤자 그건 족벌신문들이 주장하는 논리와 진배없다.

이 : 제6공화국 4기 정권에 비유할만한 노무현 정권은 87년 6월항쟁 이후 민주화 이행기의 후기정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만큼 경제·사회적인 민주주의까지 나가야하는데 실제로 노무현 역시 자본을 강조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민노당과 갈라지는 것이다. 17일 밤 블루버그통신에서는 이회창을 친재벌, 노무현을 재벌개혁 성향으로 보면서 조흥은행 매각은 노무현만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선소감에서 그는 강성노조로 인한 노동유연성의 문제를 제기했다. 노 정권은 집권세력으로서 사회복지와 분배에 더 신경을 써야할 것이다.

문 : 이번 단일화를 준플레이 오프라고 생각했다. 노무현 씨가 단독으로 집권할 수 없을 만큼 분열의 후유증이 깊었다고 이해해야 한다. 정몽준 씨가 스스로 떨어져나가 집권을 이룬 게 다행이랄 수 있다. 지역대결구도를 완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노무현은 디제이보다 더 허약하다. 파워 베이스도 없고 제왕적 총재의 능력도 없다. 30년 동안 후퇴하고 왜곡되어온 정치구조를 일거에 바꾸어야하는 부담을 가지고 출발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당개혁와 언론개혁을 이룬다면 그 다음에는 정몽준과 같은 인물과 준플레이 오프 없이도 집권이 가능할 것이다. 그때는 민노당이 원하는 정책대결 구도도 만들어질 것이다. 노 정권을 과도기 정권으로 봐야한다. 어떻게 성공시킬 것인지가 과제다.

김 : 시민단체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논란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변화된 국면에서 시민단체들이 스스로에게 어떤 역할을 부여할 것인가에 대해 논쟁이 시작될 것이다. 중립성을 계속 견지한다면 지금과 마찬가지로 제안, 견제, 감시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중립성이 완화될 경우 더블 멤버십을 이룰 가능성이 많다. 그럴 경우 상당 부분 역동적인 연대가 이루어질 것이다.

김선중(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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