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1월 2002-12-30   560

대선유권자연대 선거자금실사의 성과와 한계

구멍가게 수준도 안되나?


21세기 첫 대통령을 탄생시킨 이번 선거는 후보자들이 선거자금 지출내역을 공개한 최초의 선거였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2002 대선유권자연대(이하 대선연대)는 회계사, 변호사, 시민운동가들로 대선자금시민모니터단(이하 모니터단)을 구성, 각 후보 진영이 제출한 선거자금 내역을 실사하고 대선 전까지 3차례에 걸쳐 그 결과를 발표했다. 대선연대는 선거를 하루 앞둔 12월 18일 최종발표를 통해 ‘한나라당 : 억지춘향식, 검증불가’ ‘민주당 : 1차 이후 노력’ ‘민주노동당 : 수입까지 공개, 투명성 확보’라는 성적을 매겼다.

한나라당 모니터단으로 활동한 윤종훈 회계사는 “대선 자금 공개가 법적인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성실하게 하는 쪽이 오히려 손해볼 수 있다는 점을 인정, 성실성을 신뢰성과 함께 중요한 평가항목으로 설정했다”며 “한나라당은 (모니터단이) 근거를 들이대야만 마지못해 일부 자료를 공개하는 등 불성실한 자세로 일관했다”고 혹평했다. 그는 공개된 자료마저 불충분한 부분이 많아 한나라당의 선거자금 내역에 대한 검증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평가했다. 신철영 대선연대 상임집행위원장도 “이번 실사를 통해 정치자금법과 선거법 등 제도적 문제점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 불완전한 검증은 면죄부만 주는 것 ]

선거자금의 투명성 확보가 부정부패 척결과 정치개혁의 핵심 사안이라고 판단한 대선연대는 결성 직후부터 선거법과 정치자금법 개정운동을 적극적으로 폈다. 한나라, 민주 양당의 정쟁에 휘말려 두 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후보들로부터 선거자금 공개 약속을 받아냄으로써 선거자금 실사의 디딤돌을 마련했다.

그러나 대선연대의 이번 선거자금 실사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법적 강제력 없이 각 당 선대위가 제출하는 회계장부와 증빙자료에만 의존해서는 실사가 깊이 없는 요식 행위로 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후보가 차명계좌나 이중장부를 사용할 경우 대선연대의 선거자금 실사가 오히려 각 당에 면죄부만 주는 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게다가 각 당이 헌법에 명시된 정당보호 조항을 들먹이며 수입내역 공개를 거부함으로써 선거자금 수입의 투명성 검증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대부분의 수입을 당비에 의존하고 있는 민주노동당만이 유일하게 수입 내역을 공개해 다른 당과 차별성을 보였을 뿐이다. 수입 내역 공개와 지방선거사무소의 회계장부 실사가 빠진 이번 선거자금 실사는 애초부터 불완전한 검증을 예고했다.

어려움은 또 있었다. 1차 실사를 마친 모니터단은 한나라, 민주 양당의 회계장부를 가리켜 “구멍가게 것만도 못하다”고 혹평했다. 두 당이 회계의 기본원칙인 발생주의(지출 요인이 발생하면 현금, 가지급, 미지급을 모두 지출로 쓰는 것)를 철저히 무시하고 현금주의(현금지출만을 기재하는 것)로 회계장부를 작성해 대선자금 실사의 취지를 무색케 한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모니터단의 이 같은 지적 탓에 민주당은 2차 실사부터는 보고 양식을 바꾸었다. 사후 정산 자료를 공개하는 성의도 보였다. 후문에 의하면, 1차 실사 후 민주당 당직자들은 노무현 후보에게 상당한 질책을 받았다고 한다. 선거자금을 철저하게 공개해 한나라당과 차별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는 것이다. 이에 2차 실사 때부터 민주당은 자원봉사 회계사와 변호사들이 직접 며칠 밤을 세워 실사를 준비했고, 당직자들은 자료 수발 정도의 역할만을 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끝까지 기존 양식을 고수하여 모니터단과 마찰을 일으켰다. 한나라당은 모니터단의 거듭된 수정 요구를 무시하면서 내내 “선관위 보고양식을 따르고 있다” “법적 의무가 아니다”라고 둘러댔다. 심지어 “당이 시민단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냐”며 불편한 심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한 시점 ]

한나라, 민주 양당이 올해 지원 받은 국고보조금 총액은 각각 530억 원과 490억 원에 이른다. 수백 억 원의 국민 혈세로 운영되고 있는 정당이 최소한 기업회계 정도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정당회계 관행을 하루 빨리 바꾸지 않고서는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실사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정당 회계장부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서는 먼저 현행 현금주의 원칙에서 사용하는 단식부기 방법을 기업회계 기준에 근거한 복식부기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출증빙에 관한 규제 강화도 필요하다. 현재는 50만 원 이하의 지출은 증빙서류 사본제출을 생략할 수 있는 등 엄격한 규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런 느슨한 관행은 모든 인건비에 대해 원천징수 영수증을 의무화하고 있는 기업 관행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회계조직과 회계전문인력의 확충도 시급하다. 수백 억 원 규모의 돈이 드나드는 정당의 회계실무 책임자가 회계의 기본도 모르는 상황은 하루빨리 개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관행 개선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치자금 투명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병행되어야 한다. 대선자금 실사가 시민단체에 의한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한 상시적 선거자금 및 정당회계 감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 대선연대는 그 중에서도 특히 수입 및 지출에 대한 투명성과 선관위의 실사권 및 벌칙규정 강화, 법정선거비용 현실화를 우선적으로 꼽고 있다.

12월 19일 마침내 선거가 끝나고, 대선연대도 흩어졌다. 역사상 처음으로 시민들에 의해 이루어진 선거자금 실사의 소중한 경험이 정치자금법과 선거법 재개정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는 좀더 두고 볼 일이다.

이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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