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1월 2002-12-30   828

이슈추적-인권단체와 인권위원회의 연대 가능한가

꼬인 실타래를 풀어라!


지난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일을 맞아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한 ‘국가인권위원회에 바란다’토론회에서 김창국 국가인권위원장은 참석자들에게 인사말만 하고 바로 토론장에서 퇴장했다. 이에 대해 한상희 건국대학교 교수는 “열린 마음과 겸손한 자세로 토론회 내용을 가장 귀기울여 들어야 할 위원장이 자리를 지키지 않고 바로 퇴장하다니, 인귄위의 오만한 태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며 일침을 놓았다.

싸움의 시작인가, 끝인가

이날 토론회에서 가장 주목을 끌었던 발표자는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이다. 그는 ‘중요한 것은 인권단체와의 협력이 아니다-국가인권위, 쇄신의 노력으로 거듭나야’라는 발제를 통해 그동안 제기됐던 인권위의 문제점을 하나 하나 지적했다. 오 국장은 인권위가 △빠른 속도로 관료화되었다 △예산낭비가 심하다 △위원들과 사무처의 갈등이 심각하다 △인권위 내부에 전문인력이 부족하다 △제대로 처리되는 사건이 없다 △진정이 별로 들어오지 않는다 △인권위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자유’가 없다 등의 비판을 받아왔다고 지적했다. 이 가운데 인권위 홈페이지는 실명제에서 다시 이름을 밝히지 않고도 글을 올릴 수 있도록 개편해 문제가 해결된 상태다. 오 국장은 조용환 변호사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기관지에 쓴 「국가인권위원회와 나-인권실천시민연대와 인권하루소식의 문제제기에 대하여」와 인권위법 통과 1년을 맞아 인권단체 토론회에서 발표된 자료를 중심으로 다시금 문제점을 지적했다.

<쟁점1> 인권위는 귀를 닫았다

오 국장이 인권위에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는 인권위가 인권단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인권위는 줄곧 인권단체와의 갈등설에 대해 가타부타 언급조차 하지 않거나, 상당히 활발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사실을 왜곡하기까지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그동안 테러방지법, 도로교통법 시행령 개정안 등에 대해 해당 부처에 권고하는 과정에서 인권단체의 의견을 묻는 일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 아쉬움을 표했다.

<쟁점2> 장애인이동권연대의 청사 점거농성에 대한 태도

2002년 가을 장애인이동권연대의 인권위 청사 농성을 다루는 인권위의 태도를 문제삼았다. 특히 농성을 철수했던 장애인들이 다시 청사를 찾아오자 경찰병력으로 휠체어를 통제한 사건으로 조성된 장애인들의 인권위에 대한 분노를 전했다.

<쟁점3> 예산지원은 아무 곳에나 하나

오 국장은 인권위가 지금까지 두 번 실시한 인권실태조사 용역 공모에 ‘교도소인권모임’과 같은 이름 없는 단체가 선정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최근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인권영화제작 과정에서 공모를 거치지 않은 채 인권위가 일방적으로 감독을 정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쟁점4> 공정하지 못한 직원 선발 과정

인권위의 직원 선발과정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은 인권단체들이 여러 차례 지적해온 사안이다. 오 국장은 “인권위 간부들이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인권위에 들어올 것을 권하고, 미리 합격자를 내정한 뒤 형식적으로 채용공고를 내는 일도 있었고, 아예 채용공고조차 내지 않고, 조용히 일을 처리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주장했다.

<쟁점5> 상임위원들의 자질 부족

상임위원들이 인권위에 비서를 달라고 요구했다는 주장 등 위원들의 자질도 문제삼았다. 오 국장에 따르면 “행정자치부에서도 직제령에 비서직으로 명시하여 뽑을 수 있는 것은 기관장의 비서 1명뿐이라고 분명히 밝혔으나 인권위는 최근 상임위원들의 비서 3명을 공개적으로 뽑고 있고, 위원장에게도 비서실장을 비롯해 4명의 비서가 배치되어 있다”며 이에 대한 인권위의 답변을 요구했다. 오 국장은 또 현재 대통령 인권대사를 겸하고 있는 박경서 상임위원에 대해 “대통령의 인권 치적을 홍보하는 사람이 인권위의 상임위원을 맡은 것은 인권위법의 겸직규정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쟁점6> 인권위는 폐쇄적이다

오 국장은 서울 종로경찰서 출입 기자들의 말을 인용해 인권위의 폐쇄성을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기자들은 인권위에 관련된 기사는 오로지 보도자료나 인권위에 진정한 사람들이 기자회견을 자청할 때만 쓸 수 있으며, 공보담당관이 있지만 너무 높은 사람이어서 얼굴조차 볼 수 없다는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오 국장은 인권위의 회의를 모두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도 매우 오만한 태도라고 말했다.

<쟁점7> 1년 동안 실적이 없다?

오 국장은 “인권위의 설립 이후 인권분야의 진전은 인권단체와 인권피해자들을 통해서만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례로 울산구치소 구승우 씨 사망사건을 들었다. 특히 유현상 상임위원이 구승우 씨 사건에서 기록원본을 외부에 유출시킨 것은 형사적 책임을 물어야 할 범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자질이 부족한 인권위 직원들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면서 앞으로 인권위에 대한 시민들의 감시와 비판이 매서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인권위의 문제에 대한 답은 인권위 구성원들이 이미 갖고 있다”며 토론회를 계기로 지금까지 제기된 문제들에 인권위가 성실하게 해명할 것을 요구했다.

인권위는 입을 열 것인가

이에 대해 유시춘 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이 답변에 나섰다. 그의 답변은 쌓여온 의문을 풀어주는 것들도 있었지만 참석자들을 실망스럽게 하는 동문서답도 있었다. 유 위원은 “오 국장의 주장에는 사실 확인이 안 된 부분이 많고 이로 인해 더 많은 오해를 낳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박경서 상임위원이 겸하고 있는 인권대사는 명예직으로 국가로부터 돈을 받지 않는다”며 “따라서 박경서 위원의 겸임은 위법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구승우 씨 사건 기록원본의 외부유출 문제는 유시춘 위원과 장본인인 유현상 상임위원이 직접 나서서 설명했다.

이들은 “부검 소견서에 전문용어가 많았기 때문에 서울의대 법의학 전문가에게 자문을 얻는 과정에서 실수로 진정서가 첨부된 것은, 부주의한 행동이라고 비판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형사 처벌을 운운한 것은 심하다”고 말했다.

또 유시춘 위원은 “오창익 국장이 교도소인권모임에 대해 이름부터 도무지 말이 안 되고 활동 실적도 없는 단체라고 폄훼한 것은 인권단체 간의 서열을 조장하는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러한 발상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사전에 내정된 사람들이 직원으로 채용됐다는 비판에 대해 “직원 선발은 상임위원들의 공정한 심사에 의해 이뤄지며 인맥에 의해 선발되기 힘들다”며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인권위에 있는 NGO출신 직원들에게 모욕”이라고 일축했다.

가뜩이나 일손이 부족한 마당에 비서까지 여럿 둔다는 지적에 대해 유 위원은 “인권위가 선발한 비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차를 준비한다거나 하는 비서가 아니라 정책비서를 말한다”고 해명했다.

장애인이동권연대 문제에 대해 유시춘 위원은 한 농성참가자가 ‘점거 농성에 인권위가 협조한 것에 대해 감사한다’는 주제로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읽어주며 “인권위에 감사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주장했다.

이날 인권위는 사전에 해명자료를 준비한 것처럼 보였으나 관련 서류나 참가자들을 납득시킬 만한 충분한 증거를 내놓지 못해 아쉬움을 주었다. 발제자인 오창익 국장도 토론 분위기가 고조됨에 따라 다소 감정적인 대응을 한다는 인상을 남겼다.

새사회연대 인권위 감시활동 본격화

인권위에 대한 문제의식은 오창익 국장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출범 1년이 지나며 인권단체들의 인권위에 대한 비판 수위는 날로 높아가고 있다. 인권위는 이미 불거져 나온 문제들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서 계속 논란거리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인권위 토론회가 열린 다음날에는 세계인권선언기념식장에서 방영된 비디오(인권부제 – 2002인권현안)로 또 한차례 소란이 일었다. 비디오를 제작한 연출자 최하동하 씨가 인권위 게시판에 ‘윗분’들에 의해 해설이 대폭 수정되고 오태양 씨의 병역거부 문제를 방영하지 못하게 한 것에 항의하는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이에 인권운동사랑방은 『인권하루소식』 12월 12일치 기사를 통해 “국가폭력의 책임을 교묘히 비켜가고, 국가가 보장해야 할 기본권을 개인들이 사랑을 베풀면 되는 문제인 양 본질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인권위는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새 인권위원 선정 문제도 파문을 일으킬 전망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사임한 이진강 인권위원의 후임으로 류국현 변호사를 임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인권운동사랑방은 “1기 인권위원의 인선과정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국민의 알 권리는 철저히 무시됐으며, 청와대의 밀실인선을 거쳐 인권위원의 자리가 채워졌다”고 비판했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인사청문회를 비롯한 검증절차가 제도적으로 마련되어야 하며, 인권위원에 대한 사후 감시와 견제가 가능해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인권위의 문제가 속속 드러나자 본격적인 감시활동에 들어간 인권단체도 있다. 새사회연대(http://www.newsolidarity.org)는 11월 30일부터 격주간으로 국가인권위원회 모니터 뉴스레터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제1호에는 국가인권위의 2003년 예산 분석, 인권위의 주요 결정문에 대한 비평 등이 실려 있다. 새사회연대는 “국가인권위원회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민간 인권운동의 입장을 갖고 국가인권위원회의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10개월에 걸친 모니터링 경험을 바탕으로 소식지를 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새사회연대는 국제인권기준과 흐름에 비추어 국가인권위원회의 운영과 활동을 비평하고, 공개적이고 민주적인 국가인권위원회로 바로 세우기 위해 지속적인 감시활동을 펴나갈 계획이다.

인권위의 한계

지난 1년의 활동을 돌이켜 볼 때 ‘정부도, 민간기구도 아닌 인권문제를 다루는 준정부적·법적 기구’의 위치는 말처럼 쉽지 않았다. 인권위는 인권단체와 정부, 양쪽에서 화살을 맞고 있다. 인권위와 인권단체들의 갈등은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된 것들이었다.

또 최근 김창국 위원장이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국제인권기구회의 참석할 때 사전 허락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청와대가 위원장을 비롯한 인권위 직원들에게 경고조치를 취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인권위는 기구의 독립성을 주장하며 반발했으나 청와대는 인권위가 정부에 소속된 조직임을 분명히 했다. 이처럼 인권위의 정체성이 명확하게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활동 자체가 한계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가 토론회에서 지적한대로 인권위는 강제장치의 결여, 조사권한의 축소, 서면에 의한 조사활동 등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인권단체간에도 인권위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지난 11월 30일 충남 조치원청소년수련원에선 2002 전국인권활동가 대회가 열려 인권운동사랑방, 엠네스티 한국지부 등 전국 40여 개 인권단체에서 150명의 활동가들이 참가했다.

여기에서도 인권단체의 인권위 대응문제는 어김없이 대두되어 소주제로 채택됐다. 대회에 참석했던 한 활동가는 “인권단체가 모두 함께 인권위원회에 대한 공동대응안을 마련하려 했으나 실패했다”고 전했다. 지속적 대응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인권단체들의 시각에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인권위를 이제 포기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입장부터 비판과 공조를 함께 해야 하다는 입장까지 다양한 의견이 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방 단체들에게는 인권위의 재정립이 시급한 대응을 요구하는 현안이 아니고, 이 문제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정보도 부족하다는 현실이 가로막고 있다.

대화는 지속돼야 한다

인권위를 만들기 위해 인권단체들이 그동안 기울여왔던 노력과 고통의 시간들을 생각하면 이와 같은 논쟁들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러나 이런 논쟁이 공개적으로 이뤄지고 지금이라도 엉킨 실타래를 한 가닥씩 풀어가려고 하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오창익 사무국장도 “공개토론회를 통해 인권위가 인권단체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토론회 이후 개별적으로도 많은 대화를 했고 인권단체가 제기했던 문제들에 대해 내부적으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앞으로 인권위의 활동을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곧 2003년도 특별기획사업을 선정할 예정이다. 논의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워킹그룹(Working Group) 운영’이다. 인권위가 주요 인권 현안에 대해 연구용역을 주어왔던 방식에서 벗어나 인권위원과 사무처 국·과장, 외부전문가 2∼5명으로 구성되는 워킹그룹을 만들어 업무를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오 국장은 “워킹그룹 운영논의는 그간의 폐쇄성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의 하나”라고 평가했다. 워킹그룹방식의 사업계획은 외부전문가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인권위와 인권단체 간에 조화와 협력을 증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등을 돌리게 만들 수도 있어 어느 때보다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황지희(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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