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1월 2002-12-30   1979

풀뿌리시민운동을찾아1-독립문 평화의 집 박문수 신부

작은 참여로 만드는 “안전한”공동체


간간이 겨울비가 흩뿌려지는 무척이나 흐린 날씨였다. 디귿자형 가옥구조에 마당과 툇마루가 있는 서울 종로구 행촌동의 한옥집 문간방에서 푸른 눈동자의 신부님이 빙긋이 웃으며 나왔다. 카톨릭 서울교구 예수회 소속 박문수 신부(62세)님이 있는 독립문공동체가 거기 있었다. 박 신부님은 찬비 맞고 들어선 기자를 훈훈한 온돌방으로 안내하며 김이 훅훅 나는 뜨거운 커피를 내밀었다.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온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는 1969년 한국에 와서 사제서품을 받고 귀화한 뒤 성 Buchmeier의 발음에 따라 한국이름 박문수(朴文守)를 얻었다. 하와이대학에서 인구사회학을 전공한 박 신부님은 서강대에서 사회학 교수로 재직하다 일찍 한국 민주화운동에 눈 뜬 정일우 신부님, 고 제정구 의원과 함께 빈민운동에 뛰어들었다.

1990년 독립문에 둥지를 틀고 한국의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살겠다고 마음먹은 박 신부님은 1999년 교수직도 내던졌다. 1986년부터 모든 잡다한 일들을 포기한 채 빈민운동과 가르치는 일에 매달려온 박 신부님은 독립문 가난한 이웃들에게 세입자의 권리를 알려주는 것부터 시작했다. 1994년 8월, 철거당할 위기에 처한 주민들과 세입자대책위원회를 꾸렸고, 200세대에 달하는 세입자들은 가이주 단지를 얻어 생활하다 임대아파트에 입주하는 데 성공했다.

“말도 말아요. 그때는 조직깡패도 있고 분위기가 험악했어요. 주민들이 공포를 느낄 정도였으니까요. 싸우면서 얻은 성과로 세입자들이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서울대교구 빈민 사목위원회에서는 오래 전부터 세입자들에 대한 강제철거에 반대해 주거권을 요구했지요. 독립문은 다른 시민단체나 종교단체가 없었기 때문에 천주교가 주거연합과 함께 나선 거예요.”

지속가능한 인간개발

박 신부님은 독립문에 살면서 길고도 험난한 재개발투쟁을 겪었다. 재개발투쟁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입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신부님의 바람은 복음의 가치로 정의와 평화가 흐르는 지역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눈에 띄는 종교 차원을 떠나 깊고 참된 인간가치로 이뤄지는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독립문본당과 공동체가 지역사회 개발에 기여하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UN이 정한 ‘지속가능한 인간개발’은 정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인간다운 생활을 하면서 지역사회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영역입니다.”

박 신부님은 참여연대나 경실련처럼 큰 시민단체는 재벌개혁이나 정치감시 및 참여 등에 관심을 쏟고 활동하지만, 지역운동은 서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면서 그들이 관심을 갖고 직접 활동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운동에 반드시 ‘인간개발’이 결합돼야 국가경제중심개발로 지역사회가 파괴되는 경향을 막을 수 있고, 이를 위해서는 지역사회에 다양한 공동체들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천주교가 운영하고 있는 ‘평화의 집’은 독립문을 비롯해 수도권에 7곳이 있다. 그중 우면산 밑에 위치한 서초지구, 강남의 구룡마을, 송파의 개미마을과 화훼마을 등은 비닐하우스촌에 있다.

독립문 평화의 집(사무국장 동경희)은 청소년 여가문화의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해 한누리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으며, 무지개스카우트를 조직해 60명의 대원들이 활동 중이다.

또한, IMF 위기 이후 수입과 고용이 매우 불안정해진 대다수 도시빈민들의 실업난을 타개하기 위한 대책마련을 고심했다.

“남자 실업자들을 위한 일거리를 찾기는 너무 어려웠어요. 3D업종은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그건 대부분 이주노동자들이 하는 일이에요. 좋은 직업을 알선할 수 없지요.”

그래서 독립문 평화의 집에서는 여성 중심으로 파출부 알선프로그램인 ‘가사관리인’ 모집 및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미 구청등에서 벌이고 있는 프로그램을 굳이 독립문 평화의 집에서도 고집하는 그 목적은 공동체에 있다.

재개발투쟁으로 따낸 공공임대주택 주민들의 자치조직 건설도 노력 중이다. 박 신부님은 자치회가 독립문 평화의 집에서 벌이는 가장 큰 규모의 프로젝트라고 한다.

현존하는 노인회, 부녀회 등의 소규모 공동체를 비롯해 앞으로는 1200∼1500세대에 달하는 공공임대아파트 주민들의 자치회를 만들어 환경문제, 청소문제, 어린이 놀이터의 안전문제, 일하는 사람들의 공동체 등을 차곡차곡 추진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작은 출발로 한발 한발 조금씩 앞서고 있는 모양새이지만, 더불어 함께 안전하고 평화로운 삶터를 만드는 이 작업은 훗날 장대한 거목이 될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정부가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 사회적 약자층을 보호해도 그 안전망에서 떨려 나온 소수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방식으로 함께 합니다.”

주민과 만나는 법

박 신부님은 지역단체 운동가로서 주민들과 만나는 것을 절대로 게을리 하지 않는다. 가사관리인, 청소년과 부모로 구성된 무지개스카우트 단원들, 일반 주민 면담, 상담프로그램 등을 통해 주민들의 고민과 아픔을 함께 한다.

자활프로그램의 일환인 ‘한솥밥공동체’(운영위원장 신동우)도 주민들의 자발적 조직으로 만들어졌다. 천주교회 본당, 단체, 결혼식, 장지 등의 도시락만들기, 출장뷔페 등 제법 일이 많은 편이다.

박 신부님은 이신행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표현한 것처럼 일본의 ‘마을만들기’와 다른 차원에서 한국적 상황에 맞는 ‘사회만들기’ 운동은 아직 멀다고 점쳤다.

“우리 지역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주 소수예요. 다들 관심 없지요. 바쁘니까. 그저 외국신부님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이 정도로 이해하고 있어요. 저는 ‘사회복음’을 위해 일합니다. 생존권, 주거권, 고용, 안전한 생활과 안전한 지역에 살 권리를 위해 운동하고 있습니다. 인권, 자유권, 사회권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평범한 누구나 지역에서 참여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필요해요. 지나친 이념중심은 오히려 사람을 소외당하게 합니다. 농촌의 마을 만들기와 다른 개념으로 ‘사회 만들기’가 필요해요. 같이 합시다!”

장윤선(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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