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1월 2002-12-30   2032

빛을뿌리는사람-학대받는 아동 치료하는 성형외과 의사 백무현

‘상처가 아물면 아픈 기억도 사라지겠죠’


“어디에 데었니?”

“라면국물….”

그를 찾아오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피부가 부어오르고 진물이 나고 쭈글쭈글해진 진짜 이유를 알고 있지만 아이들은 거짓말로 둘러댔다. 아파도 소리를 지르지 못해 눈물만 흘렸다.

일곱 살인 유진(가명)이는 대한성형외과개원의협의회 백무현 박사(47세)로부터 두피수술을 받았다. 엄마 아빠가 각각 집을 나가버리자 유진이를 떠맡은 할머니는 손녀의 머리에 펄펄 끓는 물이 든 솥을 올려놓았다. 백 박사가 시설 보호를 받게 된 유진이를 처음 봤을 때 정수리 부분의 머리카락은 모두 빠진 상태로 진물만 흐르고 있었다. 던져지고, 맞고, 화상을 입은 아이들 중에는 유진이와 달리 부모와 살던 아이들도 있었다. 철사에 손목이 묶인 상태에서 발버둥을 친 탓에 깊은 상처가 남은 아이가 있는가 하면 불에 달군 드라이버로 찔린 아이도 있었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아이들은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세운 중앙아동학대예방센터 관할 시설에서 보호를 받게 되었고, 이런 아이들은 치료를 받기 위해 백 박사를 찾아온다.

몸에 남는 흉터보다 마음의 상처 더 깊을 것

그는 2002년 9월부터 학대받은 아이들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있다. 2002년 11월 병원을 열기 전까지 그는 한 의과대학의 교수로 동료 교수, 간호사들과 함께 캄보디아 등지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활발하게 펼쳐왔다. 그곳에서 언청이 아이들을 수술해주기도 했다. 또 성형외과개원의협의회 소속 의사들과 노인성 질환을 앓거나 눈이 처지고 짓물러 고생하는 무의탁 노인들을 치료해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들의 실태조사를 하다가 우연히 학대받는 아이들의 얘기를 듣고 마음이 끌렸다. 어린이 보호시설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오면 자기 병원에서 무료로 치료를 해주거나 입원이 필요한 경우 자신이 일했던 대학병원으로 보낸다. 대학병원의 진료비는 개원의협의회 기금에서 대준다. 다리에 화상을 입은 네 살배기 진우(가명)도 백 박사와 개원의협의회의 도움으로 얼마 전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일에 더 많은 성형외과 개원의들을 참여시켜 더 많은 아이들의 상처를 지워주고 싶은 것이 그의 욕심이다. 특히 지방에서 치료받으러 오는 아이들이 많아 지방의 동료 의사들과 연계를 서두르고 있다.

“몸에 남은 상처만큼이나 아이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는 클 겁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좌절하고 남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살아갈 가능성이 많습니다. 아이들은 자기 몸에 남은 흉터를 보면서 옛 기억을 떠올릴 수 밖에 없을 거예요. 상처를 아물게 해주고 흉터가 덜 남게 해서 아픈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기쁘면 나도 행복해요”

백 박사를 처음 만나러 오는 아이들은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달리 무표정하다. 질문을 해도 좀체 입을 열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부모는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엄마 아빠의 품이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게 마련이죠. 그런 부모가 이 아이들에게는 가해자가 된 것입니다. 이런 아이들이 누구를 신뢰할 수 있겠어요?”

진료카드에 적힌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사연을 꼼꼼히 기억하고 있는 그는 아이들이 치료를 받고 돌아가는 곳이 집이 아니라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가정이 없는 이 아이들은 보통의 시설보호 아동들과 또 다릅니다. 그리워하는 대상이 없는 거죠. 정서가 삭막해질 수밖에 없어요. 환경 자체가 바뀌어야 아이들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는 보호자가 아닌 가해자가 되어버린 부모들의 경우 대개 아이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보는 잘못된 태도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이들 역시 독립된 인격체인데도 내 것이니까 내 마음대로 때려도 된다는 생각이 부모들에게 있는 것 같아요.”

일찍부터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온 그가 학대받는 아이들을 돌보게 된 일은 그리 새삼스런 일로 보이지 않는다. 그를 인술의 길로 이끄는 힘은 무엇일까?

“제가 무슨 특별한 사명감을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고요.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그것만으로도 저 역시 행복하니까요.”

백 박사는 이 일을 혼자만 하는 게 아니라고 몇 차례 강조했다. 뜻을 함께 하는 많은 동료 의사들이 한결 같은 마음으로 하고 있을 뿐이라며 제발 무슨 특별한 사람인 양 취급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나눔의 철학을 갖고 있다. 남보다 많이 배우고 가졌다면 그것을 남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걸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다. 학대받는 아이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도 이런 맥락과 닿아 있다. 지금까지 그가 보살핀 아동은 많지 않다. 그래서일까. 그는 지금까지 해온 일보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더 많다며 맑게 웃었다.

김선중(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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