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1월 2002-12-30   6625

‘니들이 장애여성의 섹스를 알아?’

박주희와 강경미가 만나 이창동을 말하다


세상 참 좁다. 전혀 안면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두 사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요.” 서로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기억해 내고야 말았다. 장애여성인 박주희 씨(37세)는 2001년 서울시 장애청소년연극축제에 출연했고, 강경미 씨(26세)는 그 축제를 기획했다. 이창동 감독, 정확하게는 영화 <오아시스>에 대해 할 말이 많다는 두 사람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에 몰두하더니 “그냥 일어서기 아쉽다”며 함께 저녁식사까지 푸짐하게 했다.

박주희(이하 박) : 요즘 제 관심은 악녀예요. 제주도에서 열린 장애여성캠프의 주제가 ‘억압된 천사에서 자유로운 마녀로!’였어요. 장애여성의 천사적이고 순종적인 이미지를 벗어나자는 거죠. 점점 악녀가 되어 가는 저를 보면 기뻐요.

강경미(이하 강) : 순진무구?(웃음) 저는 몸으로 표현하는 걸 좋아해요. 몇 년 째 사회극에 출연도 하고 연출도 맡고 있죠. 여대생의 성에 관한 사회극도 올렸답니다.

박 : 저는 얼마 전에 사회극에서 느끼한 남자 자원봉사자 연기를 했어요. 사람들은 흔히 자원봉사 하는 남자들은 다 착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거 절대 아니에요. 이동하는 거 도와주면서 성추행 하는 남자도 많아요. 그래서 제가 “오… 주희… 오랜만이야… 잘… 있었어… 언제… 봐도… 예뻐” 이런 역할을 연기했죠. 난리가 났었어요. 재미있고 속 시원했다고.

‘공주’의 순결을 강요하지 말라

강 : 저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오아시스>에서 옷걸이에 걸려 있는 흰색 원피스가 싫었어요. 순결의 의미 아니에요? 혼자 거울로 장난을 치고 있는 순진한 모습을 그린 것도 짜증이 났어요. 백옥같이 착하고 순수한 이미지라.

박 : 맞아요. 사람들은 장애여성에 대한 환상이 있어요. 장애여성은 아무 것도 모르고 순진할 것이다. 그건 장애여성이 첫 생리를 할 때 주위의 반응만 봐도 알아요. 몸도 성치 못한 것이 이런 것까지 해서 어떡하냐고 말하지요. 너는 죽을 때까지 깨끗하게 살라는 게 기껏 하는 당부들이에요. 아니, 어떤 여자가 그렇게 살고 싶겠어요? 장애남성에게는 그런 이미지 안 쓰죠. 장애남성이 등장하는 영화는 <나의 왼발>처럼 장애를 극복하고 어쩌고 하는 인간 승리지 순수는 아니에요.

강 : 남성의 성에 관해 더 관대하듯 장애여성도 그런 이중적인 잣대로 보는 것 같아요. 장애남성의 성에 대한 욕구는 그대로 다루잖아요.

박 : <오아시스>의 공주는 이용당할 뿐이죠. 공주의 이름으로 아파트를 빌릴 때 말고는 어떤 뒷바라지도 하지 않아요. 제 주변에도 그런 경우가 있는데, 딸만 7명 낳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낳은 애가 딸인데 장애가 있다, 그러면 인생 끝이에요. 그런데 그 막내에게 장애가 있지만 아들이라고 해봐요. 딸들이 걔 뒷바라지 평생 해야 될 거예요. 이창동 감독이, 공주가 남자였다면 그렇게 집이나 지키게 했을까요?

강 : 종두가 공주를 강간하려는 장면에 대해서는 말이 많았죠. 저도 보고 정말 화가 났어요. 일반 관객들이 그 영화를 보고 공주가 너무나 외로워서 그랬을 거라고 합리화시키게 만들어요. 안쓰럽게 여기죠. 그런데 웃기는 것은 강간하려 했던 남자가 공주와의 관계가 발전하게되자 그 뒤로는 공주의 몸에 손도 대지 않는 거죠. 그 날 집에 가지 말라고 한 것도 공주잖아요. 그럼 그건 교도소에서 오랫동안 섹스를 못해서 충동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다, 종두는 원래 착한 놈이다, 그래서 공주는 받아들여야 한다. 뭐 이렇게 이해해야 하나요?

박 : 마치 종두가 “그래, 네가 원하니까 섹스 해줄게” 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여요. 종두는 볼 것 하나도 없는 놈인데, 마치 공주를 지극히 사랑하는 대단한 사람으로 미화시키죠. 신분상승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여자가 장애인이면 어떤 남자든 다 받아들일 것이라고 감독은 착각하고 있어요. 남자는 성에 충동적이라는 우스운 고정관념도 들어있죠.

강 : 이창동 감독의 가까운 사람 중에도 장애인이 있어, 여성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있을 법한 사람이 만든 영화라 더 실망이었죠. 이게 이창동 감독과 이 시대 남성의 한계라고 봐요.

박 : 여자도 섹스에 대한 욕구는 못 참는데.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상대가 원하지 않는다면 참는 건데. 면죄부를 주죠. 남자에게는.

강 : 경찰이 ‘너 변태냐’고 말할 때 흥분했겠네요? 취조하는 장면에서 “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디?” 하고 물을 때. (웃음)

박 : 열 받았죠. 장애여성은 무성(無性)적인 존재로 여기는 거죠. 그러면서도 쉽게 성폭행 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고.

강 : 그러게 말이에요. 일반 사람들이 섹스를 할 때 반드시 상대가 예쁘고 잘 생겨야 하나요? 그냥 사랑하니까 하는 거지. 몸이 다르게 생긴 게 무슨 상관이에요.

종두에 대한 환상은 왜 없나

박 : 결혼과 연애에 대한 환상을 이야기 해 보죠. 이창동 감독은 공주가 종두와 연애할 때 휠체어에서 일어서는 상상을 그렸는데 실제로는 그런 생각 안 해요. 내가 장애인이라서 싫으면 관두라는 거죠. 실제 연애에서는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마치 공주가 자신이 장애인이란 사실을 종두에게 미안해하는 것처럼, 또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만나주는 종두를 고마워하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고마워서 만나는 게 아니라 사랑해서 만나요.

강 : 저는 공주에게 종두에 대한 환상이 전혀 없는 게 아쉬웠어요. 연애를 하면 자신이 남자에게 어떤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상상도 하지만, 그 남자에 대한 상상도 하지 않아요? 종두도 다리 좀 고만 떨고 깔끔하고 멋진 남자로 나오는 상상을 공주가 하지 않았을까요? 나는 일하는 사람이 좋다는 말도 하는 여자가.

박 : <오아시스>를 보면서 주말연속극 <엄마야 누나야>가 생각났어요. 거기서도 가진 것 하나 없는 건달(안재욱 분)과 청각장애인 여성(황수정 분)의 사랑을 미화해요. 청각장애를 받아들여주는 건달이 알고 보면 착한 놈이라는 얘기죠.

강 : 종두가 자신을 성폭행 한 게 아니라는 것을 공주가 밝히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똑똑한 여자가. 그것이 성에 관련된 얘기라서 입밖에 내지 못한 것일까요? 만약 종두에게 맞았다고 오해를 받았다면 공주가 그처럼 설명을 하지 못했을까요?

박 : 뇌성마비인은 흥분하면 말을 제대로 못한다고 공주 올케가 굉장히 오버를 하던데,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흥분해도 의사 표현은 어떤 방식으로든 하죠.

강 : 저는 인터넷에 채팅방을 만들었어요. <오아시스>에 대해 말해보자는. 채팅방에 들어오는 남자들에게 질문을 던졌어요. 정말 예쁜 여성장애인이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빠질 수 있냐고. 공주를 예쁘게 등장시켰다면 이 영화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박 : 당연히 <엄마야 누나야>의 영화판이 되는 거죠. 영상 예쁘게, 그리고 좋은 음악 까는. 그건 실제상황이에요. 여성 장애인의 외모에 따라 자원봉사 하는 남자들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도 있어요. 우습게도. 후훗.

남자들의 의식 세계가 궁금하다

박 : 공주의 상대를 종두로 설정한 감독의 의식 세계가 궁금해요. 남성장애인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상대 여자들은 미모를 갖추고 있어요. 결국 종두라도 감지덕지하라는 말인가?

강 : 섹스 하는 장면을 들켰을 때 그 올케의 말 기억해요? 이제 우리 아가씨 어떡해!라는.

박 : 반대로 남성 장애인이었다면 ‘너도 남자라고 성욕이 있구나, 남자 구실 할 수 있어 다행이다’가 일반적인 남자들의 반응이죠.

강 : 갇혀 지내는 공주에 대해 관객들은 의문을 품지 않았을까요?

박 : 혹시 감독의 의식 속에 장애여성인 공주는 집안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깔려 있는 건 아닐까요? 요즘엔 전동휠체어가 있어서 밖에 다닐 수 있는데 말이에요.

강 : 밥상도 남이 차려줘야 될 정도의 공주가 지나치게 깔끔한 방에서 지내는 것도 의아했어요. 공주에 대해 감독이 요구하는 이미지는 그처럼 깨끗하고 순수하고, 남들은 부족하다고 말하는 남자를 사랑하는 착한 여자예요.

박 : 마지막으로 칭찬도 좀 합시다. 이런 소재를 과감하게 써서 논쟁의 대상으로 만든 것 자체는 극찬 받을 만 하죠. 다만 남자가 다가오길 바라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었으면 좋겠고 공주가 자신의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였으면 좋겠어요. 먼저 전화 한 거? 그것과는 다르죠.

강 : 왜 영화 제목은 오아시스일까요? 공주에게 있어 종두가 오아시스? 서로에게 오아시스와 같은 기쁨과 희망을 주는 존재란 말인가요? 삶에 대한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상징일까요? 생각해 볼 게 많은 것 같아요.

박 : 이런 영화 만든 게 파격적이지만 바라건대 이창동 감독은 의식을 좀 바꿨으면 좋겠어요. 이창동 감독이 장애여성과 연애를 해본 뒤 영화를 만들던가. 아니면, 내게 오라고 해요. 내가 장애여성에 대해 한 수 가르쳐 줄게요. 하하.

강 : 영화 자체가 12가지 색깔 밖에 없는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는 기분이었어요.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많은 데 색이 모자라 끝까지 그리지 못한 느낌.

<오아시스>가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여성단체나 장애인단체에서 만든 계몽영화가 아니라고 하면 할 말은 없어진다. 이창동 감독을 비판하러 만났다가 이 영화가 결국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의식수준을 보여 주는 것일 뿐이라는 결론 앞에 씁쓸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 여자는 왜곡되게 표현되는 장애여성, 사회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약자에 대한 감독의 인식수준에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이 영화에 많은 평론가들이 찬사를 보냈고 국내외에서 많은 상을 받고 있는 마당에 이들의 수다가 공허한 뒷북처럼 들릴 지 모른다. 그렇지만 장애여성과 비장애여성의 솔직한 대화가 <오아시스>와 이창동 감독을 돌이켜 보게 만들었다.

황지희(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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