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1월 2002-12-30   1021

송두율 교수 카메라에 담은 영화감독 홍형숙

‘분단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다큐멘터리 영화 <경계도시>는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의 귀국좌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홍형숙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한반도의 분단과 통일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관객들에게 말을 건다. 세계 마지막 분단국가 남과 북. 감독은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을 명확히 보라고 길을 알려준다. (편집자 주)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누군가에 대해 말하는 일상적인 행위조차 ‘결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지난 11월 열린 제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다큐멘터리 영화 <경계도시(The Border City)>의 처음과 끝에 나오는 경구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국정원에 의해 ‘친북인사’로 분류돼 35년째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있는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뮌스터대 교수다. 영화는 송 교수가 2000년 ‘늦봄통일상’ 수상자로 선정돼 귀국을 시도하나 또다시 좌절을 겪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제작진은 이 영화를 내놓기 위해 ‘결단’이 필요했다. 국정원이 제작 중단 또는 이적성 배제를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경계도시>는 지난 12월 여성영화인모임이 주최한 올해의 여성영화인상(다큐멘터리 부문)을 받았고, 같은 달 서울독립영화제 본선에 올랐다.

<경계도시>를 제작한 홍형숙 감독(39세)은 1987년부터 다큐멘터리 제작에 뛰어들어 <두밀리, 새로운 학교가 열린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본명선언> 등의 작품을 내놓았다.

 
▲ 홍형숙 감독
 

송두율 교수의 귀국불가 문제를 영화화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95년 재독 음악가 윤이상 선생이 돌아가셨을 당시 한국에는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하나도 없었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자괴감이 깊이 들었다. 98년 나는 ‘분단’에 관한 연작을 기획했고, 그 가운데 송두율 교수가 후보 군에 올라 있었다.”

이 영화를 제작하면서 직접적으로 겪은 송두율 교수는 어떤 인물로 보이는가.

“간접자료로 알게 되는 사실과 당사자를 만나 알게 된 것과의 차이를 좁혀가는 게 쉽지 않았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상상력으로 판단할 때, 송 교수는 굉장히 날카로운 사람일 것 같았다. 그러나 실제로 푸근하고 부드러웠다. 사실과 상상의 차이를 기대 이상으로 잘 풀어갈 수 있었다. 작품의 주제나 상황은 비극적이지만 사람들과의 작업은 그렇지 않았다.”

이번에 제작한 영화 <경계도시>가 송두율이라는 한 인물에 집중해 찍은 영화라는 점을 놓고 판단할 때, 영화제목은 오히려 <경계인>이 더 어울리는 것 아닌가.

 
 
▲ 송두율 교수

“휴먼다큐멘터리에 국한한다면 ‘경계인’이 적절하다고 생각했지만 애초부터 피해가기로 했다. 베를린이라는 낯선 곳에 살고 있는 송두율이라는 인물을 다루면서 우리가 과연 ‘분단’이라는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운가를 관객들에게 묻고 싶었다. 우리는 지금 분단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살고 있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분단국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하고 싶었다. ‘경계도시’란 더 이상 동서독 분단시대 베를린의 별칭이 아니라, 오히려 대한민국 서울에 어울리는 별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이 영화 중에 “(베를린 장벽 지대의) 가시적 경계가 보이지 않는 경계를 만들어놓았다”는 나레이션이 나온다. 그 의미는 무엇인가.

“독일 통일 10주년 축제 때 여론조사가 벌어졌다. 조사결과 ‘현재 내가 통일된 나라에 살고 있는 것 같지 않다’는 응답이 50%를 넘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경계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동독인들은 2등 국민, 구서독인들은 자기들만 아는 자본주의자라는 표현이 생겨나는 상황을 독일 언론은 심각한 문제로 지적했다. 그걸 영화에서 보여준 것은 이런 상황이 물론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작품 속에서 홍 감독의 심정적 공감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것은 어떤 의도인가.

“이전 작품들은 남들도 다 아는 어렵지 않은 내용이었기 때문에 굳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관찰하는 방법을 택했다. 반면 <경계도시>는 내가 잘 모르는 얘기이기도 하고, 이국 땅에서 느끼는 감정이나 문제의식들을 잘 이해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체험자나 여행자의 입장에서 얘기하면 나와 비슷한 처지의 관객들이 받아들이기 수월할 것 같았다.”

 
▲ 홍형숙 감독
 

김지하 선생이 영상편지를 통해 송 교수에게 ‘타협’을 권유했다.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나.

“영화에서 인터뷰를 통해 밝혔듯이 송 선생님은 자신을 아끼는 지인들의 심정을 잘 알고 계셨다. 하지만 남과 북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법을 받아들인다면, 종이 한 장의 서약이지만 결국 자신의 전 인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씀하셨다. 김지하 선생의 발언에 386세대들이 특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김지하라는 인물을 가려놓고 본다면, 그런 견해는 누구든지 가질 법하다는 생각이 들어 영화에 집어넣었다.”

지난해 10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학술회의 때 송 교수가 또다시 귀국을 시도했으나 좌절되었다. 이후 송 교수님의 심정을 들을 기회가 있었나.

“도저히 연락을 할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말로 위로를 할 수 있었겠나. 더구나 믿어왔던 동료나 후배들에게 배신을 당한 것과 마찬가지였는데. 초청 취소는 말이 되지 않았다. 35년 간 자신을 절제하는 데 철저하게 훈련된 그 분이 이례적으로 성명을 발표하고 기자간담회까지 한 것을 보면…, 얼마나 분노하고 상처를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제작 전에 국정원의 개입을 예상했을 텐데 작업기간 중에 부담되지 않았나(실제 영화상에는 프로듀서가 국정원 관계자를 만나는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예민한 주제라 국정원이 당연히 개입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약간의 긴장감은 있었지만 베를린에 있는 동안에는 오히려 평화로웠다. 긴장감이 무뎌져서 돌아왔지만 다시 이 땅에 오니까 ‘경계도시’에 살고 있다는 우리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국정원 관계자들을 만나고 나서 그 자체가 실감나는 다큐멘터리 내용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 송두율 교수내외

영화 <경계도시>를 마친 홍 감독은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할 지 정하지 않았다. 다만,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서 ‘통일’을 주제로 한 영화 만들기에는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귀국하게 되면 나는 대한민국 땅을 밟게 될 것입니다. 나는 그 땅에 입을 맞추고 말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충성심은 변함이 없습니다.”

고 윤이상 선생이 고국에서 열린 기념음악제에 참석하려다 거부당하자 고국이 가장 가까이 보인다며 일본으로 건너가 남긴 말을 전하며 홍 감독은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이방인들의 조국애야말로 놀랄 만한 것이라고 말했다. 홍 감독은 이번 영화를 제작할 때 독일에 파견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을 비롯 그동안 이억만리 타국에서 신념을 지키며 살아온 이름 없는 영웅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영화의 탄생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중(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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