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1월 2002-12-30   787

당신, 무슨재미로 회사다녀?

스물일곱, 그렇게 이르다 할 수 없는 나이에 나는 취직했다. 벌써 칠 년 전의 일이다. 아득히 오래 전의 사건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엊그제 일 같기도 하다.

취직을 목전에 둔 어느 날이었다. 한 모임에서 두 선배가 격론을 벌였다.

한 선배가 소주 한잔을 들이키며 말했다. 봉급쟁이는 월급 받은 만큼만 일해야 한다. 나는 회사에 있는 그 시간만큼만 회사에 속하고 나머지 시간은 내 자신에게 준다. 월급 받는 회사원에게 미래는 없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축하다가는 있는 오늘마저 황폐해진다.

다른 선배가 그 선배의 빈 잔에 술을 따라주며 반박했다. 회사의 비전은 나의 비전이며, 회사의 성공은 나의 성공을 의미한다. 나는 아침 7시부터 새벽 1시까지 일한다. 나의 삶은 충만하며, 나는 그렇게 일하고 있다는 것으로 충분히 행복하다.

나는 당시 무엇이 옳은지 판단할 수 없었다. 내 머리는 처음 선배에 동의했고, 내 가슴은 다음 선배의 삶을 꿈꿨다. 하지만 어느 경우라도 두려웠다. 내 삶은 이제 내 통제권을 벗어날 것이다. 내가 나가야 하는 이른바 ‘사회’라는 것은 그런 곳이었다.

다행히 첫 직장은 따뜻했다. 사람들은 좋았고 일은 재미있었다. 늘 새로운 프로젝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흥분된 심정으로 그 도전에 기꺼이 응했다. 회사의 미래가 나의 미래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회사에서 날밤을 지새우며 오늘을 즐기고 있었다. 어쩌다 가끔 취한 기운으로 맞이하는 새벽에 낯선 땅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일 때를 제외하고는 잘 견디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추웠다.

한 후배가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었다. “내가 3년 뒤에 내 바로 뒷자리 대리가 되고, 5년 뒤에 그 뒷자리 과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도저히 희망이 없어 보였어요.” 후배는 사법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배부른 소리말고 그냥 열심히 살아!

서른이 되던 날, 나는 울었다. 세월은 발 밑에 쌓여 나를 키우지 못하고, 어깨에 쌓여 내 무릎을 노리고 있었다. 나는 나의 이십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거기에 지치지 않고 답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서른의 나는 어떻게 살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시달리며 근근히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이십대에서 성취했던 아름다운 꿈들이 어떤 형태로든 서른 너머의 세월에 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어 암담했다.

나는 혼란스러웠지만 생존해야 했다. 도대체 내 삶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나는 꿋꿋이 살아남아야 했다.

내 삶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다시 마주하는 이 질문은 새삼스러웠고, 그래서 만만하지 않았다.

나는 내 안에 갇히길 원하지 않았다. 내가 보내야 하는 시간과 그 시간 동안 내가 쏟아 붓는 노동이 온전히 내 육체의 평안함을 위해서만 소비되는 것은 부당했다. 스무 살의 날들에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서른의 세월에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 생각이었다.

서른을 잘 지내면 단란한 가정을 꾸리게 될 것이고, 마흔을 넘기면 집 한 채를 가지게 될 것이었다. 쉰이 되면 스포츠센터 회원권 정도가 있을지도 모르고, 예순이 되면 여유 있는 은퇴자가 되어야 했다. 물론 이것들은 아주 운이 좋은 경우에 주어지는 선물들이다. 이 선물을 위해 내 삶의 모든 것을 바치려면 거기에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나는 여전히 믿고 있었다.

배부른 소리야. 그냥 열심히 살아. 누구나 그렇게 사는 거야.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알고나 있는 거니? 나의 조언자들의 충고는 언제나 귀담아 들을만했다.

줄서기, 은밀한 뒷거래의 유혹

회사는 한마디로 단정할 수 없는 공간이다.

회사에는 치열한 경쟁이 있지만 끈끈한 동료애도 있다. 고뇌하는 CEO는 시장과 맞서고, 격무를 운명으로 아는 사원들은 쏟아지는 일과 맞선다. 경영진의 탐욕은 사원을 옥죄지만, 성공에 대한 야망은 모든 회사원의 공범의식을 형성한다.

회사는 나에게 윤리적 선택을 요구한다. 신임 이사로부터 줄서기를 강요받은 적도 있고, 은밀한 뒷거래의 유혹에 시달리기도 했다. 공은 자신의 것으로 하고 과는 다른 이의 탓으로 돌리는 동료에게 실망하기도 했고, 그 동료의 처지에 내가 놓이게 되었을 때 비참하기도 했다.

회사의 동료는 대리나 부장 같은 직함을 가진 직무 관계이기도 하지만, 한 순배 술잔이 도는 저녁 자리에서 ‘부장님’은 생생한 삶의 선배이자 스승이다. 인생이 일로만 채워지는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일에서 인생의 깊이를 발견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회사는 내 삶에 포섭되는 어떤 의미에서든 하나의 소중한 공간이다.

나는 내가 나를 키울 수 있도록 자신을 살피고 돌볼 수 있기를 바란다. 나를 살피는 힘, 나는 이것에 기대어 세상의 파도를 헤쳐 나갈 수 있겠다고 기대한다. 다른 이들이 자신 안에 풍성하게 가꾸어놓은 그 빛나는 우주와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서 내 안에 갇히지 않고 나의 경계가 더 넓어지는 기쁨을 누렸으면 하는 욕심이 있다.

그 욕심이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면 나는 아직 순진한 것인가?

이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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