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4월 2003-03-25   504

‘재벌 불법행위 수사하면 경제 망한다?’

수사 감독기관 직무유기는 시장 불신만 키워


재계 3위의 그룹 총수가 배임죄로 구속되었다. 사법당국이 드디어 기업지배구조 문제의 핵심에 접근한 것이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파장은 오히려 부메랑이 되었다. 한국경제가 위기라는 명목으로 검찰과 정부당국이 사실상 재벌 수사확대를 포기한 것이다. 이번에도 재벌개혁은 좌초될 것인가.

SK그룹에 대한 전격적인 검찰수사, 최태원 그룹 총수 구속, SK글로벌의 1조5000억 원 규모의 분식회계 발표….

여기까지만 해도 강도 높은 재벌개혁이 시작되는 듯 했다. 그러나 곧이어 총리를 비롯한 경제부처의‘수사속도 조절’발언과 한국 경제의 위기상황을 전하는 정보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채권환매 요청 쇄도, 국가 신용도 추락, 금융시장 안정대책 발표 그리고 검찰의 재벌수사 중단의지 표명.

상황은 복잡하고 빠르게 전개되었으나 결말은 분명해 보인다. 재벌의 불법행위를 수사하면 나라경제가 위태로우니 수사를 중단한다는 것.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대외적으로 국가신용도를 추락시킬 것이란 지적이 일고 있다.

“해외에서는 SK그룹만이 아니라 한국경제 전반의 투명성이 아직 부족하다고 본다. 수사를 확대해 회계의 투명성이라도 확보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고 넘어가야지 6개월 후, 1년 후에 이같은 문제가 되풀이된다면 그야말로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정부가 기업투명성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빨리 해결하는 것이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것이다. 신뢰회복이 중요한 문제다.” 지난해 월가가 선정한 최고 이코노미스트로 뽑힌 바 있는 손성원 국제금융 전문가(미국 웰스파고은행 수석부행장)는 3월 14일 모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매를 맞으려면 한번에 맞아라”는 충고를 했다.

DJ 개혁실패 과정을 취임 1달만에 되풀이

북핵과 이라크 전쟁 등 외부적 요인으로 한국경제가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할 것임은 이미 예견되었다. 그러나 이번 SK수사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위기를 맞아 구조개혁을 후퇴시킨 김대중 정부의 경제개혁 실패를 되풀이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김대중 정부에서 있었던 8번의 경기부양책이 결국 주택가격 폭등과 카드대란으로 나타나는 것이 그 실례다.

김상조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위기관리와 구조개혁이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이라는 근시안적 이분법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 김대중 정부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출발점”이라고 지적하고 “노무현 정부는 과거 정권들이 왜 개혁에 실패했는지 다시 한 번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또 “위기관리를 명분으로 수사를 중단시켰지만 결과적으로 이것마저 실패했다”면서 “위기의 원인을 제거하지 않고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을 통해 관리하겠다는 발상은 더 심각한 휴유증을 양산해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가 된 SK글로벌의 부채 규모는 8조6000억 원 가량이다. 외환위기 당시 대우그룹의 분식회계 규모는 40조 원. 일단 규모 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이로 인한 제2의 IMF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시장 상황도 다를 뿐 아니라, 투신사들이 가지고 있는 SK글로벌 채권은 2조 원 정도로 우리나라 전체 채권 규모(180조 원)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러한 구체적 사실이 알려지지 않아 비상식적인 위기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다.

여기에 정부와 언론의 책임이 크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경제위기론에 불안을 느낀 투자자들은 SK글로벌 채권이 단 한 장도 들어가 있지 않았던 펀드에 대해서도 거세게 환매요청을 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나중에서야 김진표 부총리와 조윤제 청와대 경제보좌관 등이 나서서 “외환보유고가 세계 4위로 단기자금이 일시에 빠져나가도 반이상 남을 정도이고, 환율도 시장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여 제2의 외환위기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위기‘설’이 ‘실체적 위기’로

그러나 한 번 시작된 경제위기론은 국민을 불안케 했고 “IMF가 다시 올 것을 각오하면서까지 재벌개혁을 원하지는 않는다”는 여론을 형성했다. 초보적인 경제원리지만 심리적 불안감이 전반적인 소비와 투자의 위축으로 나타나는 것은 불문가지. 결국 정확한 정보와 근거가 부족해 촉발된 경제 위기설이 실물 경제의 위기로 발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실 이번 SK수사가 경제에 미칠 진짜 부정적인 영향은 기업과 국민들의 ‘개혁 공포증’일지도 모른다.

노무현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집단소송제, 공정거래법 개정, 계열분리청구제 등 개혁입법 의지를 밝혀왔다. 그러나 여소야대 국회와 재계의 반발, 북핵문제와 이라크전 등 국내외 상황을 고려하면 개혁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또한 경제 비전문가로서 대통령은 재경부 관료가 장악한 경제부처의 주장에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다.

경제개혁의 방법론이 새삼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박근용 팀장은 “현 시점에서 수사, 감독기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사건은 재벌과 금융개혁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보여주었다. 이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그 힘으로 입법을 비롯한 실질적 개혁을 이뤄가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개혁이 홍보와 선언으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감독기관의 실제적 권한 행사를 통해서 국민들 사이에 철저한 재벌개혁과 경제제도 보완의 필요성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의미다.

북핵과 이라크 전쟁을 비롯해 한국 경제가 처한 어려움은 이미 예견된 것으로, 불법행위까지 덮고 가야 할만큼 한국경제가 최악의 상태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임시방편의 위기 모면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경제당국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인터뷰 |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노무현은 개혁 추동할 ‘경제대통령’ 세워라”

검찰이 SK그룹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파장이 상당하다. 수사결과를 어떻게 보는가.

“고발했던 우리도 놀랐다. 분식회계 규모가 그 정도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수사결과는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우선 분식회계 수법이 너무나 초보적이다. 1조5천억 원 중 1조2천억 원 정도가 은행명의의 부채잔액증명서를 위조하는 방법을 썼는데, 한마디로 말하자면 은행들이 수천억의 돈을 빌려주고는 해당 기업의 재무재표에 ‘0’으로 기록된 것도 못 봤다는 것이다. 결코 몰라서라고 생각할 수가 없다. 회계법인도 마찬가지다. 알고도 덮어둔 것이다. 검찰수사 의도를 두고 말이 많지만, 결과적으로 불법행위에 철퇴를 가한 것 아닌가. 오히려 그동안 수사를 안 했던 것이 문제였다.”

규모가 크다 보니 경제적 파장도 크다. 그로 인해 수사중단 요구가 거세다. 이미 검찰이 다른 재벌로 수사확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수사 중단한다고 위기가 없어지나? 오히려 의혹을 국가적으로 공인해 주는 격이다. 국가신용도는 경제에 문제가 있고 없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다. 신뢰를 스스로 추락시키는 조치다. 결국은 한국경제의 불안정성을 장기화시킨다.”

수사를 다른 재벌로 확대해야 하는가.

“당연하다. 시장의 불신과 불안정성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위기는 정부정책으로 극복을 시도해야지, ‘감독기관의 수사중단’으로 관리될 수 없다. 삼성, 한화, LG, 두산 등 이미 참여연대가 고발한 건만 해도 상당하다. 이미 드러난 불법행위라도 수사해야 한다.”

불과 1달만에 개혁이 좌초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노무현 대통령이 경제 비전문가인 것은 사실이다. 개혁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개혁철학을 실현할 수 있는 분신과도 같은 ‘경제대통령’을 세워야 한다. 지금의 경제관료들로는 결코 개혁에 성공할 수 없다.’

다시 SK사건으로 돌아가, 검찰이 처음으로 배임죄를 적용한 것에 대한 평가는?

“그것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다. 그룹의 최고 경영자로서 임무를 방기했다는 책임을 물었던 것이다. 의사결정 당시, 입수가능한 모든 정보를 활용해 정확히 판단했느냐(선관주의), 본인을 포함한 개인이 아니라 기업을 위한 결정을 했는가(충실주의)가 배임을 판단하는 근거다. 최 회장은 두 가지 모두 어겼다. 이번 사건이 재벌의 관행적 불법행위에 대해 경종을 울릴 계기가 되길 바란다.”

기업사이에서 참여연대에 걸리면 남아나지 않는다는 말이 돈다고 한다.

“상근간사 2명에 파트타임 자원활동 전문가 10여 명, 이것이 ‘권력’이라는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의 실상이다. 이 허술한 조직에 의해 한국을 대표한다는 재벌들의 불법행위가 드러나는 것은 그만큼 한국기업의 지배구조가 문제있다는 반증이다. 우리가 특별한 능력을 가져서가 아니다. 무엇보다 먼저 재벌들이 스스로 개혁해 나가길 기대한다.”

최현주(참여사회 기자)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