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6월 2003-06-01   1034

사스가 몰고온 중국사회의 달라진 풍속도 : 길거리 키스가 사라졌다

중국은 지금 사스로 홍역을 앓고 있다. 21세기 최첨단시대에 왠 중세적 질병? 그렇지만 이는 문명화 도시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외면하기 어렵다. 여하튼 사스 때문에 중국사회가 변하고 있다.베이징 현지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한 달라진 중국사회를 전해 듣는다. 편집자주

필자는 목하 사스가 창궐한다는 베이징에 있다. 언론인 해외연수로 작년 8월부터 베이징에 체류하고 있는데, 사스 때문에 지금은 사실상 주거제한 상태다. 21세기의 강국으로 떠오르는 중국을 배우겠다는 각오로 왔건만 시쳇말로 썰렁하다. 사스가 횡행하는 중국의 현장에서 중국인들이 이 미증유의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를 함께 견디면서 관찰하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사스에 대처하는 중국 지도자나 언론, 일반 국민들의 양상을 보면 중국의 과거와 현재가 그대로 드러나는 가운데 그들의 총체적인 위기관리 능력을 살필 수 있다. 지금 중국은 장차 인류 문명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지도 모르는 역사의 현장이다. 위기는 곧 기회인 것이다.

최첨단 시대의 중세적 질병

주지하다시피 사스는 지난해 11월 중국 남부의 광동성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이 홍콩으로 건너가 폭발적인 전염사태를 빚으면서 세계적인 문제로 비화했다. 처음에는 괴질로 불리던, ‘보이지 않는 적’ 사스는 초기 중국 당국의 은폐기도 탓인지 중국인들의 대량 이동이 많은 춘절 연휴와 국가적 행사인 전인대(전국인민대표자대회)를 거치면서 중국 전역으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5월 15일 현재 중국의 사스 사망자는 270명을 넘었고 감염자 수는 5000여 명에 달한다. 홍콩과 대만을 합하면 사망자 수의 90%가 중화권이다.

중국이 사스를 공식 인정한 것은 지난 4월 초. 그리고 후진타오가 사스의 발표에 은폐가 없도록 하라고 ‘지시’한 것은 지난 4월 16일 전후다. 한 자리수이던 사망자수가 성큼 두 자리로 넘어가면서 분위기는 표변했다. 마스크 한 외국인들을 우습게 보던 중국인들이 일제히 마스크로 중무장을 하면서 분위기는 두드러지게 경색됐다. 한때 베이징 봉쇄설이 돌면서 슈퍼마켓에는 사재기 행렬이 엄청났다. 그리고 학교들이 휴교에 들어가자 한국학생을 필두로 한 외국 유학생들의 귀국 러시가 줄을 이었다. 다중들이 모이는 문화, 오락 장소가 폐쇄되고 식당들도 영업을 중지했다. 인파로 넘치던 거리는 한산해지고 사람들은 집안에서 숨죽이며 나날이 올라가는 사스 환자 수 발표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4월 중순이래 지난 한 달간의 베이징 생활은 참으로 처연하기 그지없다.

작금의 사스를 중세의 페스트나 20세기 초의 스페인 독감 혹은 20세기 후반에 나타나 지금도 진행중인 에이즈 등에 비교하는 이도 있지만 아직 병의 정확한 실체는 규명되지 않았다. 동물에 나타나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종이 병원체라는 정도가 현재까지 알려진 정도다. 하필 중국이 이 병의 원산지가 된 것은 딱한 노릇이다. 중국사회의 위생 수준, 생활습관 등이 사스를 만연하게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이라고 해서 사스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어차피 현대는 도시화, 문명화의 시대다. 주거지역의 과밀화, 물류의 대량 이동 등으로 어디서 전염병이 발생하면 감염경로의 규명이나 방역체계의 대처가 이루어지기 전에 신속히 다른 지역으로 전파된다. 최첨단 시대에 중세적인 질병이라는 아이러니는 그래서 나오는 것 같다.

사스 덕에 중국인이 깨끗해졌다

여하간 사스 덕분에 중국은 엄청난 변화를 맞고 있다. 중국의 한 인터넷 사이트는 익살스럽게 ‘사스로 인한 중국사회의 변화 10가지’를 올려 인기를 끌었다. 이에 따르면 먼저 “중국인이 깨끗해졌다.”사스 예방 대책은 무엇보다 개인위생. 잘 안 씻기로 유명한(?) 중국인들이 사스 이후 엄청나게 씻는다는 것. 거리도 깨끗해졌다. 침 뱉는 것을 단속하기 때문이다. 베이징에서는 침을 뱉다가 적발되면 청소를 시킨다고 하고 광동성에서는 침을 뱉으면 50위안(한국돈 7500원 상당)의 벌금을 물리기로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다음으로는 “길거리 연인의 애무가 사라졌다.”환자의 비말(飛沫)이 전염의 원인이 된다는 말이 나온 후 길거리에서 키스를 하거나 포옹하는 연인들을 찾아볼 수 없다. 셋째로 “버스에서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다.” 버스나 지하철에 앉을 자리가 없을 때 기침만 하면 자리를 피해 준다는 우스개다. 이런 식으로 해서 “베이징의 교통체증이 사라졌다”, “남자들의 요리 실력이 늘었다”, “범죄가 줄었다”, “가정이 가족을 위한 공간이 됐다”등 사람들이 외출을 않고 집에 있기만 해서 비롯된 여러 현상들이 회자된다.

또 “장기 유급 휴가의 꿈이 실현됐다”는 것이 있다. 중국인들은 장기휴가를 얻기가 어려웠고 맞벌이 부부가 서로 시기를 맞추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사스로 인해 대부분의 직장이 휴무에 들어가면서 공동 장기휴가가 이루어진 셈이라나. 다음으로 “한약재가 품절되었다.” 사스 예방약에 한약재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열 번째는 다소 엽기적(?)이다. 즉 “야생동물의 생존권이 보장된다.” 야생동물을 통해 사스가 감염된다는 설이 있자 야생동물로 요리하는 음식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특히 갖가지 동물을 음식 재료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광동식 요리는 기피대상이 되고 이 통에 야생동물들이 한숨을 돌렸다는 풍자다. 이 시리즈는 이제는 중국인들이 사스 국면에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차후 중국사회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그들이 알고 있음도 시사해준다.

다행히 지난 5월 11일을 고비로 중국의 새로운 사스 환자수는 주춤하고 있다. 지금 나오는 중국의 공식 발표에 의하면 농촌지역으로의 전파가 현재로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고 베이징을 비롯한 대도시 지역은 일단 고삐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 당국은 사스의 5월 내 퇴치를 다짐하고 있지만 WHO는 상당히 유보적이다. 이번 사태로 중국의 대외적인 이미지는 크게 실추됐다. 선진화되지 않은 시스템, 통제위주의 사회주의 선전 언론 등은 사스 이후에 중국이 극복해야 할 숙제다. 그런 점에서 사스를 중국에게 주어진 성장통으로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 향후 중국이 환골탈태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문제는 사스로 인한 피해가 중국만의 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국제화 시대에 어느 한 곳의 국지적인 일도 세계문제로 비화할 수 있음을 사스는 극명히 보여준다. 아무리 사스가 심각하다고 해도 한반도를 대륙에서 떼어내 어디 다른 곳으로 보낼 수는 없다. 작금 한국 사회에 중국 혐오, 중국 기피의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이는 이성적이지 못하다. 황사가 그러하듯 사스 역시 우리가 동북아에서 함께 극복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다. 미운 것은 사스 바이러스지 어찌 중국과 중국인일 수 있겠는가. 나아가 사스를 피해 귀국하는 한국 유학생들을 사갈시(蛇蝎視)하고 배타하는 것은 더욱 부적절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철저한 방역과 집단 왕따는 엄연히 다르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필자 또한 그것이 적잖이 신경쓰여 ‘연수중단 일시귀국’을 하지 않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중국 내 거류하는 외국인 중에서는 5월 중순 현재 7명이 발병하고 1명이 사망하였다. 재중 한국인은 아직 감염자가 없는 것으로 당국은 확인하고 있으며 조선족 중에서도 사스 환자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코리안은 사스에 강하다’는 속설이 지금까지는 통하고 있다. 한국산 김치도 인기가 좋다. 한국은 중국에 인접해 있으면서도 사스 피해가 거의 없다. 인종적으로 강해서든 우리 사회의 문명수준이 높아서든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바라기로는 한국이 계속하여 사스 무풍지대가 되기를 소망한다.

정길화 문화방송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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