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6월 2003-06-01   676

‘새 부대엔 새 술을 담아라’

신당 단지에 구시대적 기득권 담기면 “정치개혁酒” 순도 떨어져


지난 5월 16일 있었던 민주당 신당추진모임워크숍에 참석한 의원과 위임장을 보낸 의원의 합계가 민주당 전체 의석의 65%를 넘었다. 일단 세몰이에 성공한 신당 창당 일정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러나 헌정 이후 무수한 신단의 명멸을 지켜본 우리 국민은 신당의 덩치보다 거기에 담길 내용을 주시하고 있다. 신당 단지엔 정치개혁이라는 새 술이 담길 것인가. 편집자 주

지난 5월 16일 민주당 신당추진모임 워크숍에는 참석자 54명, 위임 13명을 합쳐 합계 67명의 현역의원이 참석했다. 이날 모임의 참석 규모가 신당의 추진력을 가름할 것으로 전망된 만큼, 민주당 전체 의석의 70%에 가까운 참석률은 일단 신당추진 주도세력에게 힘을 실어줄 전망이다.

그러나 지역주의 극복과 함께 정치개혁을 명분으로 신당을 추진해온 신주류 강경파 입장에서는 ‘기대 이상의’ 참석률이 오히려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이날 참석자 명단을 살펴보면 신주류가 내심 신당의 배제세력으로 설정했던 인사들이 상당수 눈에 띈다.

세몰이와 개혁명분 사이의 딜레마

내내 논란이 됐던 인적청산 문제와 관련 민주당 신주류로 분류되는 한 당직자는 “신당에 참여할 인사와 배제될 인사의 기준은 애매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내부에서 20명 정도를 제외하고 같이 가자는 얘기도 들린다”고 밝혔다.

그러나 워크숍에서는 인위적인 인적청산 대신 당원과 국민에 의한 자연스런 교체 원칙이 확인됨으로써 신당은 ‘통합신당’의 모양새를 취했다.

애초 개혁신당이냐 통합신당이냐 하는 논란에서 알 수 있듯이 신당에 기존 민주당 인사들의 참석 규모는 개혁의 순도와 일정한 반비례 관계일 수밖에 없다. 일단 외부에 비치는 신당의 참신도를 떨어뜨릴뿐더러, 신주류, 중도파, 후단협, 친 이인제계, 구주류 등 다양한 세력의 참여가 필연적으로 구체적인 정치개혁안에 대한 합의를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민주당 내부에서의 신당 세몰이가 함축하는 딜레마는 일차적으로 신당창당을 주도해온 신주류에게 상당한 책임이 있다. 구체적인 정치개혁 청사진에 대한 합의를 중심으로 신당을 추진하기보다 수도권 호남유권자의 표심, 호남지역 민심의 향방, 영남지역의 여론 등 내년 총선에 영향을 미칠 정치공학적 변수를 중심에 놓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민영 참여연대 시민감시국장은 “신당이 고정 호남표+α의 발상이라면 개혁의 실질적인 역할을 하기 어렵다. 지금까지는 정치개혁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실 애초부터 신당 주도세력이 설정한 인적인 배제와 참여와 기준이 인물 위주로 이뤄지는 것은 설득력이 약했다. 구주류 핵심인사들 역시 대외적으로 전국정당화와 정치개혁을 위한 정책을 반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신주류 주도의 신당창당을 인적청산을 위한 음모로 규정하며 이번 워크숍에 불참한 민주당 박상천 최고위원은 최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의 당헌은 상향식 공천을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지구당위원장이 임명한) 대의원에 의한 허울좋은 상향식 공천”이라며 “이런 것을 바꾸는 것이 중요한 개혁인데, 신당은 구체적으로 뭘 개혁한다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물론 민주당 구주류의 행태는 겉으로 내세우는 주장과 달리 이들이 구시대적 기득권에 집착하고, 시대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민주당 정치개혁특위가 내놓은 지구당폐지를 비롯한 핵심적인 당개혁안에 대한 거부, 고영구 국정원장 지명자의 인사 청문회에서 한나라당과 다를 바 없는 색깔 공세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결국 신당의 세를 불리기 위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추상적인 차원의 정치개혁 표방에 머문 결과가 ‘세몰이-정치개혁의 딜레마’를 낳았고, 이 같은 상황은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김근태 의원은 신당 참여의 인적인 기준으로 “정치개혁, 국민통합, 한반도 평화를 위해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함께 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을 제시했다. 문제는 김 의원이 말하는 기득권 포기 의지를 실험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신주류 내부도 주요 정치개혁안 합의 안돼”

이번 워크숍의 성과를 그나마 한 가지 든다면 국민참여 원칙의 확인이다. 천정배 의원은 “신당이 각 정치세력간 지분싸움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으려면 창당부터 국민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면서 국민참여신당을 표방했고, 이를 구체화해 신당 추진 10만 국민발기인, 당 의장 선출 30만, 시도지부 중앙위원 선출 60만, 국회의원 후보 상향식 선출 100만 등 국민참여 방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정대화 교수는 “신당이 역사적 의미를 부여받으려면 그동안 폐쇄적이고 비민주적이었던 정당의 운영방식을 국민참여가 보장된 개방형 정당으로 바꿔야 하며, 지난 10여 년간 계속 제기돼온 정치개혁 의제를 ‘논란없이’ 실행할 수 있는 정당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향후 진행과정을 지켜볼 일이지만 신당추진세력 사이에 국민참여라는 중요한 원칙이 제시된 것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정 교수가 신당 평가의 또 하나의 기준으로 제시한 ‘정치개혁 의제를 논란없이 실행할 수 있는 정당’의 전망은 어둡다. 지난 2월부터 정치개혁추진범국민협의회에 실무를 맡아온 김민영 국장은 “이번 신당추진을 주도해온 신주류 내부에도 시민단체가 제기한 정치개혁안에 대한 이견이 존재한다”고 꼬집었다. 범국민협의회가 제기하는 정치개혁안은 진보적 개혁이라기보다는 의회민주주의의 가장 초보적인 제도라는 점에서 이같은 신주류 내부 인사들의 기득권에 대한 미련은 스스로 명분을 갉아먹는 일이다.

이 정치개혁연대와 공동으로 실시한 ‘정치개혁을 위한 16대 국회의원 의견조사’는 정치개혁이라는 추상적인 명분에는 동의하면서 막상 기득권 포기를 전제로 하는 구체적인 개혁안은 거부하는 전형적인 정치인의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다.

5월 16일 민주당 워크숍에 참석한 의원들 중 이번 설문조사에 응한 22명(김원웅 개혁당 대표 포함)의 답변을 집계한 결과, 상당수 의원들이 그동안 시민사회에서 정치개혁 의제로 삼은 주요 개혁안에 반대하거나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심지어 신당 추진 강경파로 분류되는 인사들 중에서도 정치자금 공개 같은 중요한 개혁안에 대한 반대가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여성의 정치진출 확대를 위해 당직과 지역구 30% 여성할당, 지역구 당내 경선시 유효득표 20% 가산점 부여에 대해 22명의 의원 중 32%가 반대하거나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후원금, 당비 등의 수입에 대해 후원자의 성명, 주소 등 구체적인 수입내역을 신고 의무화하고 일정액 이상은 유권자에게 전면공개하자는 안에 대해서는 반대 또는 유보적인 입장이 41%에 달했다. 1인2표 정당명부제의 도입 및 비례대표 비율의 확대에 대해서는 23%, 낙선운동을 비롯한 유권자운동의 포괄적 허용에 대해서는 36%의 의원들이 반대하거나 유보적이었다.

여기서 나타난 수치는 앞으로 신당이 구체적인 정치개혁안을 다룰 때 또 다시 격렬한 내부 진통을 겪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만약 신당 주도세력이 이 진통을 피하기 위해 슬로건에 머무는 개혁을 표방한다면 신당은 우리 정치사에 무수히 많은 또 하나의 ‘낡은 당’으로 흘러갈 것이다. 새 부대엔 새 술을 담아야 한다.

장흥배(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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