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8월 2003-08-01   1391

진보와 보수의 올바른 길찾기

‘보수와 진부, 주체적인 입장을 가져야’


일시 : 2003년 7월 16일 오전 9시 30분

장소 : 참여연대 제2회의실

사회 : 김호기 본지 편집위원장·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참석 : 김상봉 철학박사·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교장

홍성태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상지대 교양학부 교수

정리 : 김선중 본지 기자

사회: 80년대 진보진영의 시민권 복원 등을 둘러싼 논쟁에서 시작해 최근까지 우리 사회에서의 진보와 보수에 대한 토론은 학문적 영역과 정치적 영역 모두에서 활발하게 이뤄져온 것 같다. 또 생태주의, 페미니즘 시각에서는 진보와 보수라는 기존의 이분법을 넘어서자는 주장들도 제기되고 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일반론적인 수준에서 진보와 보수, 또는 진보주의와 보수주의가 무엇인지, 어떻게 볼 수 있는지 짚어보는 것으로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김상봉(이하 김): 막연히 보수는 나쁜 것, 진보는 좋은 것이라는 우선적 가치판단이 요즘의 사회적 편견인 듯하다. 중립적인 논의를 위해서는 이와 같은 가치판단은 배제하고 서로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개념규정을 해야할 것 같다. 추상적으로 표현해서 모든 보수주의의 근본적 특징은 자연적, 사회적 의미에서의 필연성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반해 진보주의의 근본적 특징은 필연성으로부터 끊임없이 자기를 해방시켜서 능동적인 인간성의 실현을 추구해온 것이라 할 수 있다.

홍성태(이하 홍): 공감한다. 진보와 보수는 사회를 이해하는 포괄적 틀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다. 보수가 기존질서를 필연성의 이름으로 지키고자 하는 것이라면, 진보는 그런 필연성의 이름으로 강요되는 기존 지배질서의 문제를 지적하고 극복하려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가 어느 한쪽만이 옳다고 강요할 수는 없다. 더불어 중요한 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진보와 보수의 내용이 변화해왔고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다면 어제의 진보가 오늘은 보수가 될 수도 있다. 최근 새만금 간척사업을 둘러싼 논의에서도 그런 양상을 볼 수 있다. 진정한 진보라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적극적으로 성찰하고 이에 걸맞은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

사회: 서구에서 보수의 경우에 에드먼드 버크류의 구보수와 신자유주의와 동일시 할 수 있는 신보수가 있고, 진보의 경우에도 사회주의로 대표되는 구진보, 여성해방주의나 생태주의를 포괄하는 신진보라는 구분이 가능하다. 우리의 경우에는 일제 시대와 해방 공간에서 진보가 도입되고 본격적으로 논의되었지만, 한국전쟁 이후 조희연 교수가 지적한 이른바 ‘반공규율주의’ 사회에서 진보주의는 사실상 결빙되었다고 볼 수 있다. 80년대 사회운동을 통해 진보가 해빙되기 시작하고 일종의 학문적,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하면서 이념구도가 새롭게 형성되어 왔다. 서구의 경우와 비교할 때 어떻게 볼 수 있는가.

홍: 서구의 경우 근대시민혁명이 시작되면서 정치사조로 보수가 나타났다. 애초에 보수주의는 왕정복고를 추구하는 반근대적인 움직임이었다. 이에 맞선 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부르주아 운동이 당시에는 진보적인 것이었다. 부르주아 지배가 확립된 뒤에는 전통적인 보수주의 사상이 더 이상 보수가 아니라 수구로 일컬어졌다. 그리고 한때 보수주의에 맞선 자유주의는 부르주아 지배질서를 강력히 옹호하는 보수의 사상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자유주의가 보수화 하면서 이에 맞붙게 된 것이 노동운동이었고, 이 노동운동을 위한 대표적인 이념이 사회주의, 공산주의였다. 20세기 초반부터 서구 노동자들의 지위가 어느 정도 확립되고 복지사회에 이어 이른바 풍요사회가 되면서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한 것이 환경문제와 여성해방인데, 이 두 문제에 대한 대응이 신진보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에 비해 우리의 경우에는 자유주의가 척박하다. 보수를 자처하는 세력들은 서구적 의미에서 보면 왕정복고를 추구하는 정통적인 수구파도,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근대적인 보수파도 아니다. 사실상 근대 정치체계에는 자유주의는 반자유주의로서의 파시즘과는 대척점에 있는 조류다. 우리 사회의 보수파들은 반자유주의라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인 집단,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냉전이라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등에 업고 지배력을 확보해 온 세력이었다. 냉전이라는 시대적 상황이 변화되었는데도 여전히 이들이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큰 문제라고 본다. 한국에서 진정한 보수, 합리적 보수가 자리를 잡으려면 보수를 참칭하는 비보수적, 반보수적 냉전수구파의 철폐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김: 서양의 경우에 보수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존중하는 필연성이란 것은 물리적인 의미에서든 사회적 의미에서든 다른 타자를 고려하지 않은, 자신이 대면하는 자연이다. 반면에 우리의 경우에 보수주의자들이 존중하는 필연성은 자연, 사회, 제도와 같은 것들이 아니라, 한마디로 외세라는 의미의 타자다. 바로 여기서 모든 종류의 왜곡이 일어났고 한국 보수주의의 근본 성격이 결정되었다. 진보에 있어서도 서양의 진보는 전통적인 인습이나 가족제도, 여러 정치·사회적인 질서나 필연성으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반면에 우리의 진보는 우리만의 특수한 가치나 지향점들을 갖고 있다. 특히 외세로부터의 자기해방이라는 목표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여성문제든 환경문제든 어떤 진보적인 가치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자기실현을 할 수 없는 질곡 속에 있다.

사회: 우리나라에 정말 보수가 있을까. 보수가 정치적인 보수세력과 정치철학적 보수주의의 두 가지를 가리킨다고 할 때, 몇몇 정치학자들은 우리나라에서 보수세력은 있지만 보수주의는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최근 일각에서는 유교담론과 같은 전통사상을 끌어들여 보수주의 철학으로 제시하기도 하는데…

김: 필연성을 존중한다는 명목상의 정의로 볼 때 우리사회에도 보수주의자들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갖고 있는 필연성이 보편성을 가지는 필연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외세 속에 있는 필연성이다 보니 보편적인 설득력과 정당성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보수를 진정한 의미에서의 보수라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할 수밖에 없다. 발전적인 의미에서의 포괄적인 사회 진보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보수를 가져야하지 않을까. 그리고 전통담론에 대해서는 그것이 자기 주체성에 바탕한, 인간에 내재된 필연성을 다루고 있다면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겠지만, 허위의식으로서의 과거추수 내지 회귀라면 헤게모니를 획득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 본다.

홍: 한국적 보수주의의 특징은 이념의 결핍과 신념의 과잉에 있다. 이 점에서 이념으로 무장된 서구적 보수주의와는 다르다. 제대로 된 보수주의의 성숙과 출현은 한국사회의 합리성을 높이기 위한 시급한 과제가 될 것이다.

사회: 수구, 반동, 보수는 각각 그 의미가 다르다. 우리의 경우 수구와 반동이 보수와 동일시되고 보수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으로 보인다. 이점은 어떻게 볼 수 있는가.

김: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서양의 보수는 자기를 위한 이데올로기라는 점이다. 자기를 위해서 부정할 수 없는 필연성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존중하겠다는 것이고 진보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도 이에 대해 진지하게 대면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에는 자기를 위해 추구하는 보수가 아니라 외세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이기 때문에 일관된 이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의 한 예가 군대문제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발생한 군부대 사건들을 보면 불복종운동이라도 해야할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보수주의자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군대가자고 외친다면 이 운동이 주도적으로 벌어질텐데, 어이없게도 군대 안가는 것이 우리나라 보수주의자들이 말하는 보수다.

홍: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자발적인 근대화의 좌절이 많은 사회변화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세계적 차원에서의 근대화는 제국주의 근대화와 종속된 식민지 근대화라는 이중적 과정으로 전개되었는데, 한편이 자기 필연성을 가진 변화였다면 다른 한편은 이끌려 가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식민지 근대화는 분열적 마인드의 보편화를 가져왔으며, 이런 것이 결국 제대로 된 보수를 자라지 못하게 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시대적 과제 중의 하나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면서 토론과 설득으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하는 합리적 보수세력을 어떻게 형성하느냐에 있다. 이것은 진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지난 20년간 진보가 수구세력에 맞서서 크게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념이나 목표를 세계사적 시각에서 보면 편협한 부분이 존재한다. 자유주의 기본원리를 수용하지 못한 것 등 진보도 적극적인 자기 갱신의 필요성을 과제로 가지고 있다.

이점에서 흥미로운 집단이 최근에 나타나는 보수적 시민단체들이다. 이들에게는 어떤 면에서 과거 보수를 참칭한 냉전 수구세력, 사실상의 관변단체들과는 구분되는 지점이 있으며, 어떤 시대적 변화를 보여주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 원리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구현하려는지가 합리적 보수주의의 구분기준이라고 할 때 이들 보수적 시민단체들에게는 여전히 미흡한 부분 또한 작지 않다.

김: 그런 단체의 등장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나름의 이념을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기보다는 비주류세력의 집권이 이어지고 있는 이 사회가 자신들의 지배로부터 멀게 느껴지니까 위기의식을 가지고 대응하는 것이라고 본다. 오히려 주목되는 것은 보수적 시민단체들보다 시청 앞에 모인 10만여 명의 기독교인들이었다. 그 집단이 어떻게 변모해갈지 궁금한데,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부정적 의미의 보수주의가 구현된 구체적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념체계인 종교는 지속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동원될 수 있는 저변의 대중이 아직 우리 사회에 많다는 사실에 착잡해졌다.

사회: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양대 과제로 흔히 산업화와 민주화를 꼽는데 진보진영의 중요한 기여는 민주화를 주도했다는 데 있다. 하지만 진보에 내재된 집단주의나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도 없지 않으며, 최근에는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비전이나 프로젝트를 진보가 과연 어디까지 제시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도 있다. 진보진영의 명암을 성찰적으로 살펴봤으면 좋겠다.

김: 외세로부터의 자유로운 자기형성이라는 기준에서 봤을 때 진보진영은 해방 전, 해방 후, 민주화 과정에 이르기까지 성과 있는 투쟁의 모습을 보여줘 왔다. 시민사회 안에서 이제는 외세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주체적인 목소리를 성찰적으로 결집하려는 노력은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자유로운 자기 형성을 완성하기 위한 우리의 과제는 단지 타자로부터의 소극적인 의미의 탈출 또는 해방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바로 눈앞의 적을 타파하는 것이 진보의 기치였지만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내적 풍부함을 위한 사유가 필요하다.

홍: 성취 후에 스스로 갱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진보도 결국 보수에 속하게 된다. 그러기에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자각적이고 반성적인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요건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80년대 이후의 진보세력의 진출은 놀라웠다. 그들이 이룬 민주화는 한국사회를 세계사적 시각에서 볼 때 정상적인 사회로 돌리는 동력이었다. 이제는 새로운 길을 열어나가는 능력과 결단이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라고 본다.

사회: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 중의 하나는 진보와 보수의 구도에서 존재하는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의 비대칭성이다. 시민사회에서는 진보가 다소 우세한 편인데 정작 정치사회는 보수적인 정당체제가 주도하고 있으며, 진보진영을 대변하는 민주노동당은 정치사회에 진입하는데 적잖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비대칭성을 어떻게 볼 수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풀어야 할까.

홍: 정치는 공인된 강제력이 집행되는 영역이기 때문에 어느 사회에서든 변화가 더딜 수밖에 없고 급격한 변화를 위해서는 강력한 동력이 필요하다. 정치의 급격한 변화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사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급격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조절이 필요하며, 이 점을 전제로 할 때 우리사회에서 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구조적인 측면 외에 진보세력의 내적 역량의 한계나 사회변화에 따른 불충분한 대응도 물론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민주화의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 진보의 정치세력화가 꾸준히 이뤄져온 것 또한 사실이다. 사회 전체의 정치의식을 성숙시킨 낙선운동과 같은 건강한 동력을 염두에 둔다면 정치지체의 완화나 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를 낙관적으로 볼 수도 있다. 진보의 정치세력화를 어떤 집단이 제도 정치에 들어가서 헤게모니를 획득하는 차원으로만 아니라 제도정치를 정상화하고 근대적 정치질서를 확립한다는 점에도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김: 좁은 의미에서의 진보의 정치세력화도 문제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과연 정상적인 의미의 정치가 있는가를 새삼스럽지만 묻고싶다. 보수와 진보 가릴 것 없이 국민전체의 견해나 욕구가 직업적인 정치에 반영되는 시스템 자체가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진보적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제도정치로 결집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 고민해야겠지만 그 욕구들을 빨리 수렴해내는 장치가 필요하다.

사회: 최근 서구의 일각에서는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는 ‘제3의 길’이 활발히 토론되어 왔다. 보수와 진보가 여전히 유효한 패러다임인가를 묻고 싶다.

김: 여전히 유효하다. 인간의 삶이 필연성을 가지고 있고 또 자기를 형성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이 추구해온 자유의 요체라고 한다면 어떤 시대나 보수와 진보의 스펙트럼은 나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건강한 긴장상태에 있을 때 사회가 건강할 수 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보수든 진보든 원칙적으로 제자리를 찾는 게 필요하며, 능동적인 자기형성의 과제를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 그 내용은 환경, 여성 등을 포함해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세계시민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가깝게는 동북아 시민으로서 이제는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감당해야할 사명감과 책임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때이기도 하다. 더 가깝게는 국내 외국인 노동자 문제부터 고민해야 함은 물론이다.

홍: 공감할 수 있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줄어들고 있는 혼혈아에 대한 우리의 푸대접도 지적해야 할 부분이다. 그들은 떠나고 있는 게 아니라 쫓겨나고 있다. 이들을 비롯해 우리 사회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노동자들을 포함해 다양한 타자들과 공존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가 건강하게 대립 혹은 조화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보수, 즉 내적 필연성에 근거하고 이를 지키고자 고투하는 보수가 나타나야 하고, 진보 또한 더욱 자신을 갱신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사회: 오랜 시간 진지한 토론에 감사한다.

김선중(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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