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9월 2004-09-01   917

[인터뷰] “참여연대 10년, 내손으로 찍어냈죠”

세진 인쇄소 강은식 대표


《참여연대 상근자들에게는 ‘세진 아저씨’라는 친근한 호칭으로 더 많이 불리는 세진 인쇄소 대표 강은식 회원은 10년을 한결같이 참여연대와 함께 해 왔다. 1977년부터 형의 일을 도와주면서 인쇄소 일을 시작했다는 그. 민주화운동의 산 증인이라 할 만하다. 70~80년대 검열과 통제가 극심했던 시절 전국에서 인쇄하기 어려웠던 글은 모두 이 곳으로 가지고 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세진인쇄소는 한국사회의 민주화, 노동, 인권, 사회운동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민주화와 인권신장이 많이 이루어진 2004년, 세진 인쇄소에서 바뀐 것이라곤 오랫동안 머물던 5평 남짓한 작업장에서 좀 더 넓어지고 깨끗해진 작업장으로 올해 초 옮겨왔다는 것이다. 여전히 한쪽에서 시끄럽게 돌아가는 인쇄기 소리와 벽면에 가득 쌓여있는 원고 뭉치와 책들, 그리고 언제나처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통과의례처럼 ‘다방음료’를 시켜주시는 넉넉한 인심은 그대로다. 10년만에 찾아왔다던 무더위가 잦아들던 금요일 오후 을지로 3가에 있는 세진인쇄소에서 한결같은 웃음으로 맞아주시는 그를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올해로 참여연대가 창립 10주년이 됐습니다. 오랫동안 참여연대를 지켜보시고 많은 일들을 도와주셨는데 소감이 어떠신지요?

“참여연대가 벌써 그렇게 되었다니 10년동안 참여연대의 일을 함께 한 사람으로 매우 기쁘고 감회가 새롭습니다. 생각해 보면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규모만 봐도 처음 참여연대가 용산에 있는 사무실에서 시작했을 때는 아주 작았는데 지금 보면 그 몇 배로 규모가 커졌어요. 오래전부터 이 일을 하면서 흔히 말하는 운동권 단체나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참여연대 운동은 이전 운동과는 많이 달랐어요. 과거 운동은 사람들이 쉽게 다가가기 힘든 부분이 많았는데 참여연대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에서 사회운동을 하다 보니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많이 얻었어요. 한 마디로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많이 긁어주는 운동을 한 것이 오늘처럼 참여연대가 성장한 원인이 아닌가 생각을 해 봅니다.”

물론 인쇄소 일을 하면서 참여연대와 계속 인연을 맺고 있긴 한데 처음 참여연대와는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창립멤버인 문혜진 씨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어느날 친구와 함께 와서 인쇄물을 부탁하더라구요. 사실상 참여연대 초기부터 참여연대 일을 해준 셈이지요. 참여연대 초기인 용산시절에는 새벽에도 일을 맡기러 오곤 했어요. 급하게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다음날 아침에 필요한 자료를 전날 밤늦게 와서 해 달라고 오기도 했으니까요. 어떡하겠어요. 밤을 새워서라도 해 줬지요. 그런데 그게 소문이 났는지 그후에는 밤늦게 와서 인쇄해달라고 부탁하는 단체들이 많더라구요. 이제는 익숙해져서 괜찮은데 제본하는 사람들이 고생할 때가 많지요. 어떤 경우에는 새벽에 나오라고 해서 작업할 때도 있으니까요. 그럴 때는 그 사람보기가 민망하죠.”

운동의 현장을 찍어낸 세진 인쇄소

인쇄소를 처음 시작하던 시절에 대해 얘기해 주시겠어요?

“제 형이 1969년부터 이 일을 시작했어요. 저는 형의 권유에 따라 1977년부터 이 일을 같이 했지요. 형은 참 열성적인 사람이었어요. 광주항쟁이 있었던 80년초 얼마나 살벌했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광주항쟁 때의 사진을 갖고 와서 인쇄를 해 달라고 하더군요. 보통사람 같으면 많이 망설였을텐데 형은 바로 작업을 해서 포스터로 만들어 줬지요.

인쇄소 일은 처음부터 노동운동단체라든가, 민주화와 인권 관련 단체 등 주로 운동과 관련된 단체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해왔어요. 당시에는 이런 단체들이 지금처럼 여러 곳에서 후원을 받는 것도 아니어서 대부분 재정이 열악했어요. 이 사람 저 사람 소개로 여러 단체에서 일감을 맡기러 왔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외상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그런데 그후에 그 단체가 없어지거나 담당 상근자들이 바뀌는 경우가 있어 외상값을 못 받은 적도 많았지요.”

전부터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인쇄소 이름이 왜 ‘세진’인가요?

“세진? 형이 이름을 지은건데 세상으로 뻗어나간다고 지은 이름이예요. 세상 세, 나아갈 진(世進). 한창 때는 우리 얼굴은 몰라도 세진이라는 상호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지요.”

인쇄 일을 시작한지 35년정도 되셨지요?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힘들어서 후회해 본 적은 없으신지요?

“인쇄소를 하면서 후회해 본 적은 별로 없지만 굳이 말하면 재정문제로 어려워져 생활이 힘들었을 때지요. 아마도 주거래처가 일반 회사들이었다면 돈은 많이 벌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과 같은 보람은 많이 없었겠죠. 또 경찰서나, 중앙정보부 등에 끌려가서 밤 새워 조사 받고 조서 쓰고…. 특히 형이 끌려갔을 때 걱정이 많이 되었지요.

아, 재미있는 얘기하나 할까요? 형은 서울의 거의 모든 경찰서에 연행돼 조사를 받은 경험이 있었어요. 어느날은 얘기를 하던 중 “야, 옥인동만 빼고 경찰서란 경찰서는 한 번씩은 방문해 봤다.” 그러더라구요. 그런데 우연인 건지… 그날 밤 옥인동 경찰서에 연행돼 갔잖아요.(웃음)

지금 생각해 보면 어렵게 인쇄소를 운영했을때가 많이 힘들긴 했어도 지금보다 더 재밌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여기에 오는 단체들이 우리를 장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같이 운동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같이 여러날 밤을 새워가면서 일도 했고요.”

《강은식 회원은 유난히 형 이야기를 많이 했다. 특히 경찰서에 끌려가서 고생했던 이야기를 할 때는 형이 이곳저곳에 끌려가서 고초를 겪었던 일을 늘어놓으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는 살짝 뺐다. 단지 “형이 나보다 더 많이 불려다니며 고생을 했지요”라는 말로 자신도 많은 고초를 겪었음을 살짝 드러낼 뿐이다. 2년 전에 병마와 싸우다가 돌아가신 형님 강은기 씨는 강은식 회원에게 세진인쇄소의 역사 그 자체인 것처럼 보였다.》

“참여연대와 함께 인쇄 일 계속 하셔야죠.”

오랫동안 참여연대와 함께 하신 만큼 많은 행사에도 참여하셨을 텐데요. 기억에 남는 행사나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혼자 일을 하다보니 행사에 많이 참석하지 못했어요. 1년에 한번하는 총회에나 참석할까…어디 가려고 해도 급하게 인쇄를 해줘야 할 때가 많아 참석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다른 단체 행사에도 그렇고요. 내가 가지 못하니까 단체 사람들이 여기에 찾아오면 잘해주려고 해요.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먹기 싫다고 해도 마실거리를 꼭 챙겨주지요. 오히려 행사보다 참여연대 초기부터 일했던 상근자들이 더 기억나요. 참여연대에서 일했던 상근자들이 지금은 전국에 퍼져 있고, 가끔 인쇄를 맡기러 오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때면 일부러 오는 것이라서 고맙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지요.”

참여연대 사업, 방식, 운영 등이 회원들이나 시민들의 의견과 다르게 진행이 되는 경우를 얘기할 때도 있는데요. 그럴 땐 어떤 생각이 드는지요.

“저는 참여연대가 하는 모든 사업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해 쓴소리를 못하는 면도 있지만 주로 믿고 맡기는 편입니다. 그동안 없는 자 편에서 일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다지 나쁜 얘기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사람들 생각이 같을 수 없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으로 보여요. 오히려 관심으로 봐야죠. 또 여러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그런 비판은 당연히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요? 본인의 바람일 수도 있고, 참여연대 또는 이 사회에 대한 바람일 수도 있고요.

“참여연대는 시민 속으로 들어가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대중적인 운동이요. 참여연대가 이 땅에서 시민운동을 하고 있으니 조금 더 어려운 사람들,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어려움을 알고,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에 맞서 싸워나갈 수 있기를 바라지요. 시민들이 참여연대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참여연대가 있어주기를 바랍니다. 음…개인적인 바람은 소박합니다. 내 몸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이 인쇄일을 했으면 좋겠어요.”(웃음)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그는 지갑에서 오래된 사진을 한 장 꺼내면서 가족이야기를 했다. “아내는 나보다 더 낙천적인 사람이에요. 내가 돈도 많이 못 벌고 고생도 많이 시켰는데 구박 한 번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내가 신경을 많이 못 쓴 사이에 두 딸은 어느덧 대학생이 됐어요. 세월이 참 많이 흘렀지요.” 그는 한참이나 사진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잇는다. “이때 이후 가족 사진도 제대로 못 찍었는데..” 10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사진. 은근히 미안한 생각이 든다. 저 사진 뒤에 흘러간 많은 시간들 중 일부는 참여연대와 함께 한 시간일 것이다. 그는 9월 8일 참여연대 10주년 창립행사에 온다고 한다. 늘 그랬듯이 그날도 조용히 행사장에 왔다가 흐뭇한 웃음만 머금고 갈지 모른다. 그날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가족사진권 한 장을 선물하는 것이 어떨지하고 생각해 본다.》

최인숙 참여연대 시민참여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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