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9월 2004-09-01   824

가장 기본적인 ‘인간적인 삶’ 위해

생계의 절박함까지 이르게 하는 이라크 실업문제


어쩌면 오늘 이라크에서 가장 큰 문제는 사회 불안도, 테러도 아니라 바로 실업 문제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사회 불안과 테러가 끊이지 않는 원인 중의 하나 역시 실업 문제일 것이다. 실업률 75%. 전쟁이 끝났다는, 모든 고통과 불행의 원인이라고 여겨졌던 사담 후세인이 물러갔음에도 여전히 먹고 살기조차 벅찬 사람들. 이들의 삶이 마냥 행복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이들이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이나 이라크 임시정부에 대해 그저 고마워하기만 할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사람이란, 배가 고플 때, 내일이 보이지 않을 때 자꾸 절망감과 분노만을 키워갈 뿐이니까.

생계를 위해 순교자의 길로, 테러에 가담하기까지

젊은이들을 자살폭탄테러에, 총을 들고 점령군과 싸우는 일에 끌어들이는 것에는 반미, 반외세라는 이념적, 정치적, 종교적인 이유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6개월 된 갓난아기를, 노모와 어린 형제들을 고향에 두고 순교자가 되기 위해 팔루자로, 나자프로 향하는 젊은이들의 마음 한켠에 순교자가 되면 가족의 살 길이 보장될 것이라는 경제적 기대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교도’ 미국과 맞서 이슬람 종교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은 ‘순교자’ 본인은 천국에 가고, ‘순교자’의 가족들은 이웃들이 맡아서 보살펴 주어야만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라크 노동자공산당 대표 사미르 아민도 실업 문제가 테러 단체들에 계속해서 젊은이들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민병대에 들어가거나 테러에 가담하면 돈을 줍니다. 이라크에서 일반 노동자들이 한달에 이삼백 달러도 안 되는 월급을 받는데 비해 한번 테러에 가담하면 300달러에서 500달러 정도를 준다고 합니다. 공격에 가담하고도 살아남으면 한 번에 목돈을 버는 거고, 만약 죽더라도 그 사람은 ‘순교자’가 되는 거니까 자신은 천국에 가고 가족들은 생계를 보장받게 되는 거지요.”

한편 경제적 이유 때문에 테러나 반미 저항에 나서는 이들은 이런 젊은이들만은 아니다. 소위 ‘후세인 지지자’들이라 불리는 전 바트당원들이나 전 이라크 군인들의 저항에도 경제적인 이유가 상당 부분 존재한다. 소위 ‘수니 삼각지’라 불리는 지역 중의 하나인 사마라에서 만난 전 바트당원 아흐메드는 이라크 전쟁 직후 미군정이 아무런 대책 없이 바트당과 이라크 군대를 해체한 것이 심각한 실업 문제를 낳았다고 비판한다.

“독재정권의 잔재를 청산한다고요? 좋아요, 우리도 그것이 필요하다는 걸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 고위 인사들, 실제로 책임이 있는 자들만 색출해서 그 죄를 물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먹고살기 위해 군에 들어갔던 말단 군인들까지 무조건 해고해 놓고 또 전 바트당원이었다고 해서, 전 이라크 군인이었다고 해서 새로 일자리를 얻는 것까지 막아놓으면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먹고살라는 겁니까? 부당하게 해고됐다는 불만, 당장 닥쳐온 생계의 위기 속에서 할 줄 아는 일이라고는 싸우는 것밖에 없는 사람들이 뭘 하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이 다 돈을 받고 테러에 가담하게 되는 거지요.”

그는 이어서 그렇기에 사마라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후세인 지지자나 전 바트당원들이라는 미군 측 주장이나 외신 보도에 불만을 터뜨렸다. 사담 후세인은 과거와 함께 사라져버렸다고, 지금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계를 위해 테러에 가담하는 절박한 이들이거나 계속되는 사회 불안과 고통의 원인을 미 점령에서 찾고 있는 단지 이라크 국민들일 뿐이라고.

벽에 붙은 이름 한줄이 행복일 줄이야

이념이니 정치적 목표니 하는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살아남기 위해 저항에, 테러에 가담할 수밖에 없다는 이라크 사람들. 그 반대편에는 또 살아남기 위해 ‘점령군’을 위해 일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점령군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점령군에게 협조했다고 해서, 점령군의 주구라고 해서 죽임을 당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통역이나 안내인, 관리처럼 더욱 적극적인 협조뿐만 아니라 미군 기지에서 청소부나 세탁부로 일하는 사람들까지도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

아말(가명)은 그렇게 처제를 잃었다. 한달 여 전쯤, 미군 기지에서 청소부로 일하고 있던 아말의 처제는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다른 두 명의 이라크 여성들과 함께 괴한의 습격을 받았다. 대낮에 바그다드 대로 한 가운데서 괴한들은 그들이 타고 있던 차를 세우고 그들을 밖으로 끌어낸 다음 “점령군에 협조하는 이들은 다 죽여버려야 한다”며 그들의 머리에 총을 쐈다. 그러나 아말의 가족들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장례식조차도 드러내놓고 치를 수 없었다. 몰래 몰래 죽은 이의 시신을 거둬 밤을 빌려 공동묘지에 묻었다. 이후 집밖 출입도 마음놓고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점령군 주구의 가족이었으니까.

아말은 그 이야기를 전해주면서 어깨만 으쓱했다.

“이래저래 목숨을 걸고 사는 거지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온 식구가 굶어죽든가, 미군을 위해 일하다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살해당하든가… 어떻게 보면 선택의 여지가 없는 극단의 상황인 거죠.”

슬퍼만 하기에는, 분노만 하기에는 먹고사는 문제는 너무도 절박한 것이었다.

8월 1일 저녁, 바그다드 최대의 빈민가로 알려져 있는 사드르시티의 알 사드르 사무실 벽 앞에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모여 있었다. 다음 주 공공근로에 선발된 이들의 명단이 발표됐기 때문이다. 공공근로에 선발된 사람들은 일주일 동안 거리 청소며 잡초 뽑기, 간단한 도로보수와 같은 일을 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받는 돈은 기껏해야 하루 만원이 채 안 되지만 그런 일이라도 이들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기회다. 16살 자심은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가리키며 환하게 웃었다.

“화요일부터 일주일 동안 거리 청소를 하는 일이에요. 우리 가족이 14명인데 일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거든요. 저라도 조금이라도 돈을 벌어 보태야해요. 돈을 벌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는데, 저한테 일을 주는 사람이 없네요.”

생계 위해 목숨을 건 집회까지 불사

이라크실업자연대는 요즘 대규모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불안한 이라크 정세 때문에 대규모 야외 집회나 행진은 자살행위에 가까울 정도로 위험부담이 크다. 그러나 이라크 실업자연대 대표 팔라 아르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회를 준비해야 할 정도로 이라크의 실업 상태가 심각하다고 말한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집회를 성사시킬 겁니다. 우리의 요구는 실업자들에게 매달 100달러의 실업수당을 지불해 달라는 겁니다. 미국이 전쟁을 일으킨 이유가 뭐였습니까? 사담 후세인 정권에게서 우리를 구해주고 우리에게 인간다운 삶을 되찾아주겠다는 것 아니었습니까?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권이나 민주주의보다도 ‘인간다운 삶’의 가장 기본이 아닌가요?”

강은지 (민족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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