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10월 2004-10-01   1187

[칼럼] 또 다시 씨를 뿌리는 시기

강산은 변했지만 여전한 ‘그들’

참여연대가 10살이 되었다. 지난 9월 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새로운 10년,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참여연대를 위한’ 후원의 밤 행사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해 6명에 이르는 10년 근속 상근자들에게 공로상을 수여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말 그대로 참여연대는 한국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 10년을 한결같이 달려왔다. 특유의 ‘실사구시’식 접근과 ‘한번 물면 놓지 않는 불독 정신’을 바탕으로 치열하고 끈질기게 활동했고, 그 결과 우리 국민들이 가장 신뢰하고 또한 한국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시민단체로 성장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에서 우리 사회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기 위한 참여연대의 노력은 시민적 가치와 참여민주주의의 실현에 크게 기여했다고 자부한다.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시민단체의 권력화, 정치적 편향시비가 끊임없이 제기된다. 활동방식에 대한 지적도 뼈아프다. 지나치게 언론중심으로 활동한다든지, 생활밀착형 운동에 무관심하다든지, 또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몸을 사린다는 따가운 눈총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들은 참여연대를 위한 건전한 비판이기에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비이성적 편가르기, 토론없는 극단주의에서 비롯된 매도와 왜곡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누가 문제인가

편가르기와 극단화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아마도 며칠 전 보수인사들의 ‘사회원로 시국선언’일 것이다. 그들은 지난 총선을 친북.좌경.반미세력의 국회진출로 규정한다. 대한민국은 이미 공산화됐고 선동하기도 한다. 참여연대는 지난 총선때 탄핵쿠데타세력을 심판하자고 주장했는데, 영락없는 친북.좌경.반미세력의 낙인이 찍히고 만다. 어느 월간지 편집장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이는 한 술 더 뜬다. “한국의 애국세력이 반역세력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고 한다. 참여연대는 그의 기준에 따르면 반역세력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그는 나아가 참여연대와 같은 대한민국의 ‘적’을 무장해제시키자고 호소하기도 한다.

과거 분단과 독재를 통해 부를 축적하고 호가호위했던, 심지어는 인권탄압의 최선봉에 섰던 자들이 원로를 자처하고, 애국을 운운하는 것이 가증스럽다. 이들은 군복을 입고, 성조기를 손에 들고 광장에 모여 혈서를 쓰고 화형식을 쓰고 심지어는 자해소동까지 벌이고 있다. 청와대를 북한 인민공화국의 출장소라고 할 정도이니, 시민단체를 정권의 홍위병이라고 부르는 것은 차라리 점잖은 편이다.

‘진보’가 손해인가

필자가 보기에 현재의 한국 상황은 ‘격동기’일지언정 혼란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십년 동안 오른쪽으로만 휘어져왔던 사회의 균형추를 약간 왼쪽으로 꺾어 제자리를 찾도록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분단을 핑계로 인권을 탄압하고 민주주의를 외면해온 과거 역사를 반성하고, 새로운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미래를 열어나가자는 목소리에 냉전과 독재의 잣대로 재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뿐 아니라 진부하기까지 하다. 그들이 적대와 파괴를 일삼고 분열과 갈등을 선동함으로써 얻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행동이나 언어의 과격성에 있어 과거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세력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화끈(?)한 그들에게는 2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극단적인 적개심의 이면에는 자신의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기득권의 몸부림이 있다는 것이다. 변화를 혼란이라 선전하고, 갈등을 증폭시켜 상대방을 제압하려고 한다. 또 다른 특징은 극단적이고 과격한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질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구속체포의 위협이나 해고, 해직과 같은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들에게 피가 터지고 살이 터지는 고문과 폭력은 ‘스스로만 자제하면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일일 뿐이다.

격동기의 참여연대

이처럼, 한국사회가 요동치고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참여연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지만 이미 고민의 일단은 시작됐다. 참여연대는 장기적으로는 ‘권력감시’라는 기본 틀을 견지하면서 전문화를 강화해나갈 것이다. 갈수록 심해지는 사회적 양극화 과정에서 사회경제개혁 운동을 강화하고, 한반도 평화와 화해를 위한 시민행동, 국제연대의 강화, 활동단위의 분권화도 이루어 갈 것이다. 사회적 논쟁과정에도 참여연대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사실, 참여연대는 논쟁에 익숙하다. 예컨대 소액주주운동과 관련하여 참여연대는 좌우로부터 협공을 당했다. 재벌과 기득권세력으로부터는 사회주의운동이라고 매도당하고, 한편 사회운동세력으로부터는 신자유주의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기도 했다. 2000년과 2004년의 총선연대활동을 통해 참여연대는 정치개혁운동을 주도하는 단체가 됐지만, 홍위병논란, 중립성시비의 발단이 되기도 했다. 최근 북핵이나 이라크 파병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은 한미동맹.주한미군문제 등 근본적인 한국사회의 구조에 대한 논쟁을 야기했지만 참여연대는 물러서지 않고 전면에서 운동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국가보안법과 과거사청산과 관련해서도 참여연대의 역할은 점점 커지고 있다.

‘권력감시’를 표방하고 창립했던 참여연대가 너무 많은 일에 개입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들은 민주주의의 진전, 개혁의 완성, 인권의 옹호라는 참여연대의 창립정신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10년을 달려왔지만 아직 추수의 기쁨을 누릴 때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하나하나 열매를 따고 또 다시 씨를 뿌리면 되지 않겠는가.

장유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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