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10월 2004-10-01   1310

[회원사랑방] 어둠 탓하기보다 촛불 하나 켜는 게 낫다

서울을 출발할 땐 흐렸어도 하늘은 제법 말끔했는데,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빗줄기가 굵어졌다. 지리산 자락에 둘러싸인 산청에 도착했을 땐 급기야 폭우로 변했다. 엉뚱한 곳에서 버스를 내리는 바람에 장대비 쏟아 붓는 낯선 곳에서 곤경에 빠지기도 했지만, 어쨌건 목적지인 간디학교엔 무사히 도착했다. 간디학교의 첫인상은 내 예상을 배반했다. 산 속 깊은 곳에 제각각 다른 모습의 건물 서너 동이 모여 있는 게 학교 같지가 않았다. 학교 하면 으레 네모난 상자에 창문만 뚫린 감옥 같은 건물이 떠오르는 걸 보면, 나 역시도 어지간히 판에 박힌 사고에 젖어 살았구나 싶었다. 그게 기존 학교교육이 원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간디학교에서 진짜 교사 됐어요”

간디학교는 1997년 양희규 선생이 사랑과 자발성, 자립을 교육원리로 해서 설립한 학교다. “어둠을 탓하기보다는 촛불 하나를 켜는 것이 낫다”는 사티쉬 쿠마르(인도출신의 생태사상가이자 녹색운동 지도자, 교육자)의 말처럼, 입시위주의 경쟁교육에 바탕을 둔 획일적인 공교육의 문제를 정부 탓으로 돌리기에 앞서, 먼저 실천으로 극복하자며 만든 대안학교인 것이다. 행복한 학교를 꿈꾸며 세워진 간디학교 설립 초기부터 국어교사로 재직해 온 정미숙 회원. 그에게서 조금은 남다를 것 같은 간디학교에서의 삶을 들어 봤다.

“간디학교엔 행복하고 즐거워질 수밖에 없는 독특한 교사문화가 있어요. 같은 교육이념과 목표를 지향하는 교사공동체 때문에 가능한 거죠. 교사들이 합의해서 만든 공동체 규약을 자발적으로 존중하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공감을 넓혀 가는 거예요. 빠듯한 생활이지만 월급의 10%를 자발적으로 학교기금으로 기부하는 것도 한 예고요.”

정미숙 교사는 간디학교 교사의 평균 행복지수가 70~80 정도는 될 거라 말했다. 본인은 그보다 조금 더 높을 거란다. 정 교사는 간디학교 교사들이 행복하게 사는 이유로 자유로운 학교구조를 들었다.

“학교가 구조적으로 억압하거나 통제하지 않으니까 교사들 스스로가 자기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요. 일반학교에서 교사 생활하던 때와는 많이 다릅니다. 그땐 교사 개인의 의견은 아무런 힘이 없었어요. 학교에 문제가 있어도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했어요. 무력했죠. 교사가 자기 목소리를 못 내니까, 아이들과의 관계도 어그러질 수밖에 없었고요. 교사인 제가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못 느끼는 구조였죠.”

하지만 간디학교는 달랐다. 교육내용과 교재선택을 포함, 학교와 관계된 모든 사항들을 교사들이 함께 논의해서 결정했다. 회의도 많고 고민해야 할 것도 훨씬 많아졌다. 때문에 에너지도 배는 더 소모됐지만, 교사들은 즐거웠다. 비로소 진짜 교사가 된 것 같았다. 교사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장에 관심이 많은 교장에 대한 신뢰도 한 몫 했다.

“문제가 생겨 그걸 해결하려면 때론 8시간씩 식구총회(교사와 학생 등 간디학교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회의)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밤새워 교사회의를 해요. 힘들죠. 결론을 내는 것도 어렵고요. 하지만 그게 다 학교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나눠 갖는 과정이라 뿌듯해요.”

그래도 교사에게 가장 힘든 부분은 역시 아이들과의 관계다. 정 교사 또한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지 못할 땐 교사로서 심한 자괴감을 느낀다고 한다.

“아이들 존재 하나하나가 도전이 됩니다. 학교가 자유로운 만큼 학생들도 다양한 욕구를 갖고 있고 개성이 강한데, 그걸 채워주는 게 쉽지 않아요. 담임을 맡고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학교가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 내린 결론을 당사자가 못 받아들이고 학교를 그만뒀을 때예요. 그 아이는 그 아이만의 존재방식이 있었던 거죠. 물론 그 아이와는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땐 너무 힘들었어요.”

간디학교의 교과구성은 일반학교와는 많이 다르다. 지식교과 외에도 학생들의 다양한 감수성이 분출하도록 돕는 감성교과와, 직접 밭농사를 짓고 봉제를 하는 노작교과가 따로 있다.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토론도 수업의 단골 메뉴다.

“언젠가 수업시간에 들어가 낙천낙선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더니, 아이들이 거의 매시간마다 그 주제를 다뤘다며 이제 그만 하자고 하더라고요. (웃음) 흔한 일이죠. 효순.미선이 반전 촛불시위가 한참일 때는 우리 아이들도 거의 매주 산청이나 진주시내로 나가 촛불시위에 참가했어요. 동네사람들이 산청에 3.1운동 이후 최대인파가 모였다고 했을 정도였는데, 그 최대인파의 대다수는 우리 아이들이었답니다.”

“국가가 못하니까 우리가 하는 거예요”

정 교사를 만난 9월 12일은 일요일이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교무실엔 학생 몇이 소파에서 책을 보거나 잠을 자고 있었다. 3학년인 은정이는 정 교사더러 걸어서 15분 이상 올라가야 하는 기숙사까지 차로 데려다 달라며 졸라댔다. 은정이는 유달리 엔지오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여름방학 한달 동안 전국연합, 민중연대, 전농 같은 단체에서 자원활동을 했다고 한다. 은정이가 말하는 간디학교 생활은 이랬다.

“자유롭다는 점이 제일 좋아요. 학교가 작아 선생님과 학생이 서로 다 알고 지내는 게 너무 맘에 들고요. 방학 때 서울 가서 만난 친구한테 1학기 수시 합격했다는 말을 들었을 땐 마음이 착잡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기에서 더 많이 배운 건 분명해요. 한국 근현대사를 처음 배웠고, 그러면서 사회를 볼 수 있는 눈도 생겼어요. 불복종의 가치도 배웠고요. 일반학교에 갔었다면 가능했겠어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는 은정이는 간디학교 졸업 후 서울에 오면 자원활동 하러 참여연대에 꼭 들르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간디학교의 역사는 올해로 7년째다. 대안교육이 불모지였던 7년 전과는 참 많이 변했다. 인가 받은 대안학교만 해도 전국에 25곳에 이른다. 일각에선 대안학교가 교육의 공적책임을 약화시키는, 선택받은 일부만의 학교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이에 대해 정미숙 교사의 생각은 확고했다.

“대안교육은 교육의 다양성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공교육의 공공성과 대립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개인은 자기에게 맞는 학교를 선택하고 교육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국가가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니까 개인이 나선 것이고요. 오히려 국가가 다양한 국민의 교육의 욕구를 담아낼 수 있는 대안학교를 대중화하는 데 나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육법을 개정하고 파악조차 되지 않는 미인가 대안학교에 대해 최소한의 지원이 가능하도록 힘을 보태는 것이 필요합니다.”

남들은 지금껏 잘해왔다고 말하지만 간디학교는 여전히 어렵다는 정교사는 대안학교의 성과를 평가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말한다.

“간디학교를 졸업한 학생이 이리로 교생실습을 온 게 올해가 처음이에요. 간디학교에 대한 평가도 졸업한 학생들이 사회에서 활발히 활동할 때라야 가능하지 않겠어요?”

간디학교의 실험이 한국 교육풍토를 더 성숙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길, 그래서 간디학교 식구들이 경험한 행복을 더 많은 아이들이 누리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희망한다.

정지인 참여연대 시민참여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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