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10월 2004-10-01   1274

[회원사랑방] 일제가 만들고 유신독재기에 부활한 ‘반상회’

권력자들은 늘 주민들을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통제해 왔다. 주민들이 서로 돕고 사이좋게 지내게 하기 보다 늘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도록 만들었다.

봉건왕조시대에는 다섯 집을 하나로 묶어서 서로 감시하고 연대보증처럼 연대 책임을 묻게 했다. 중국에서 유래한 주민통제기구를 본떠 조선에서는 다섯 집을 모아 한 통(統)으로 삼고, 다섯 통을 모아 한 리(里)로 삼는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도쿠가와 막부시대 이후로 다섯 집에서 열 집을 하나로 묶어서 ‘도나리구미(隣組)’라고 불렀다.

북한에서도 1958년 이후 당 간부 한 사람이 다섯 집을 책임지고 사상교양사업과 경제사업 등을 지도하는 5호담당제를 실시하고 있다.

오가작통법이나 도나리구미를 통하여 권력자들은 범죄자나 사회개혁 운동가를 색출하고, 온갖 가지 명목으로 세금을 징수했다. 게다가 각종 부역에 주민들을 강제로 동원하기도 했고, 천주교도들을 적발해서 끔찍하게 처형하기도 했다. 조선을 식민 지배한 일제는 1917년부터 조선인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도나리구미(隣組)’와 비슷한 ‘반상회(班常會)’를 실시했다.

반상회는 총독부의 행정방침을 널리 알리고, 주민의 건의를 반영하며, 이웃끼리 서로 돕는 정신을 기르기 위한 모임이라는 명목을 가졌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본 제국주의를 위협하는 불순분자인 독립운동가를 색출하고, 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한 감시 기구에 불과했다.

이러한 일제 식민지통치의 잔재이자 하향식 주민통제-감시기구인 반상회는 해방이 되자 사라졌다가 유신헌법을 통하여 종신 대통령을 꿈꾸었던 독재자 박정희에 의해 1976년에 다시 부활되었다.

매월 25일은 반상회의 날이 되었고,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불순분자나 간첩을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집을 번갈아 가며 반상회를 열게 했다. 반상회에서 주민들은 낯선 사람을 무조건 신고해야 했고,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 위대한 결단으로 선전되었다.

파시즘 시대가 끝나고 사회가 민주화됨에 따라 반상회는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그러나 반상회는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해서 서로 의사소통을 하고 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한 기구라는 명목으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반상회 하나만을 놓고 보더라도 ‘과거 청산’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이제는 반상회 같은 하향식 통제기구가 아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풀뿌리 동네 모임을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박상표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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