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10월 2004-10-01   831

우리는 국가신분등록제도의 전면개편을 원한다!

주민등록번호 성별구분 폐지 집단진정운동

8월 25일 12시경,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후문에서는 1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주민등록번호 성별구분 폐지를 위한 만인 집단진정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생년월일, 성별, 최초신고지역, 신고당일 동일 성씨 중 신고순위, 오류검증번호 등 총 13자리로 이루어진 주민등록번호가 개인정보보호에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특히 성별구분 번호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박탈하여 성 소수자들의 인격권을 침해하며, 성별에 순위를 정함으로서 성 역할을 고정시키고 있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문제제기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첫걸음을 내딛는 자리이다.

주민등록번호 성별구분 폐지를 위한 집단진정운동

정보인권활동가모임, 지문날인반대연대, 목적별신분등록제실현연대 등 단체들이 주축이 되어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은 주민등록번호가 정보사회의 진척에 따라 개인정보보호에 많은 해악을 미치는 위험한 제도라고 비판했다. 더불어 국가가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국민의 성 정체성을 강제로 결정하고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주민등록번호제도가 매우 위험한 것이라는 지적은 이전에도 계속 되어왔다. 박준우 함께하는시민행동 개인정보보호팀장은 인터넷 사용과정에서 주민등록번호의 무단도용과 불법적 이용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어 주민등록번호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특히 주민등록번호의 종생불변성과 범용성이라는 특성을 해소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죽어서도 번호가 바뀌지 않는 주민등록번호

주민등록번호는 태어날 때 부여받은 후 죽어서도 그 번호가 변화하지 않는다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이 번호는 타인과 중복되지 않고 개인에게 고유한 번호로 부여됨에 따라 평생토록 한 개인의 신원을 확인하는데 더없이 좋은 개인식별자의 역할을 한다. 이것이 주민등록번호의 종생불변성이다. 더불어 현행 주민등록번호는 그 사용의 범위가 제한되어있지 않아 공공기관은 물론 사회일반에서 무분별하게 수집되어 활용되고 있다. 변경되지도 않는 주민등록번호가 이처럼 광범위하게 사용됨에 따라 한 번 유출된 주민등록번호에 대해서는 그 번호가 어떻게 쓰이는지 관리하기조차 어렵다. 이것이 주민등록번호의 범용성이다.

주민등록번호는 조합체계 자체의 문제로 인하여 너무나 많은 개인정보가 번호 하나로 확인할 수 있다. 일단 번호를 통해 생년월일, 성별, 출신지역을 확인할 수 있고, 연령계산이 가능하고 출생연대를 인지할 수 있으며, 번호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내국인과 외국인의 구별이 가능하다. 조합체계 자체만이 문제가 아니다. 최근 정보사회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인터넷 등을 통해 개인정보의 유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여기서 각 개인의 신원확인을 위한 결정적인 열쇠의 역할을 하는 것이 주민등록번호이다. 더구나 주민등록번호는 개별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어있는 개인정보를 연동할 수 있도록 하는 매개자(matching field)의 역할에 가장 적합한 도구이다. 즉, 주민등록번호와 실명만 알고 있으면 이론적으로 어떠한 데이터베이스에서라도 원하는 사람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한 신원절도와 불법행위가 기승을 부릴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이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주민등록번호로 인하여 발생하는 피해가 증폭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주민등록번호의 관리업무를 맡고 있는 주무부처인 행정자치부는 아무런 대응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동안 행정자치부가 주민등록번호의 오남용에 대해 내놓은 대책이라고는 기껏해야 주민등록번호 생성기의 사용 억제, 허위 주민등록번호의 사용 또는 주민등록번호 도용행위에 대한 처벌조항 강화가 전부이다. 인터넷을 통해 광속으로 유통되는 주민등록번호의 이동을 막기에는 근본적으로 아무런 효용이 없는 조치였던 것이다. 주민등록번호 사용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으며, 실지로 피해가 속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대안을 내놓기는커녕 오히려 주민등록번호의 활용범위를 확장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 현재 행정자치부의 모습이다.

성차별을 넘어 성 소수자의 인격권 침해

이번에 진행되는 ‘주민등록번호 성별구분폐지를 위한 만인 집단진정운동’의 표면적 이유는 첫째, 주민등록번호의 성별 구분이 생물학적 성을 기준으로 하여 국가가 개인의 성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으로서, 정보주체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스스로 규정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한다는 것이고, 둘째로 성별구분에 순위를 둠으로써, 즉 남성이 앞자리 여성이 뒷자리의 숫자를 강제로 부여받음으로서 왜곡된 성 역할 고정현상을 촉발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단지 여성에 대한 차별현상으로만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성 소수자들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현상까지 유발한다. 즉, 성 소수자들의 경우 생물학적 성별과는 다른 차원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규정하는데 이를 인정받을 수 있는 근거를 상실해버리는 결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로 트랜스젠더의 경우에는 법원의 재판을 거치지 않는 이상 자신이 선택한 성과 국가가 규정한 성과의 괴리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을 혼자 감내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

주민등록번호 개편으로 개인정보보호 가능

더욱 본질적인 진정의 이유는 앞서 언급했던 주민등록번호의 종생불변성과 범용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와 대안의 요구이다. 종생불변성과 범용성이라는 현행 주민등록제도의 특수성이 완화될 경우 상당한 정도의 개인정보보호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행정자치부가 주민등록번호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조치를 단 한 번만 취해주더라도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개인정보침해의 사례들이 상당수 줄어들 수 있게 되고, 이번 진정의 근본적인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진정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단체들은 9월 중순까지 최대한 많은 진정인을 모집하여 국가인권위원회에 집단진정을 제기할 계획이다. 또한 이를 계기로 주민등록법의 전면적 개정을 요구하는 입법운동을 함께 펼쳐갈 계획을 가지고 있다. 현재 이 운동의 취지에 공감하고 있는 단체와 개인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진정인 모집을 진행하고 있다. 진정운동에 대한 자세한 사항의 확인 및 개별적 진정인 참여는 이 운동을 위해 마련된 임시 홈페이지(주민등록번호 성별구분 폐지를 위한 만인 집단진정운동 사이트 : finger.or.kr/10000)에서 언제든지 할 수 있다.

이제 주민등록번호에 대한 문제제기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30년이라는 세월동안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할 목적으로 시행되어왔던 주민등록번호는 이제 국가의 감시라는 차원을 넘어서 번호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로 인해 사멸할 처지가 된 것이다.

윤현식 지문날인반대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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