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10월 2004-10-01   605

신비스런 눈빛에 관한 예술가들의 사연

『진주귀고리 소녀』

잠 때문이었다. 〈움베르토D〉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잠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토요일 밤이었고 모두 떠나고 없었으며 낮 어느 땐가 마셔둔 약간의 카페인 기운이 더해졌던 탓이었을 것이며 그래서 잠은 더욱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잠의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TV를 켰을 것이다.

영화 〈움베르토D〉는 비토리오 데시카가 1952년에 만들었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헌정한 작품이지만 이탈리아를 너무 비관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환대받지 못했다고 한다. 스토리는 단순하며 슬프다. 연금 생활자인 움베르토 디가 밀린 집세와 생활을 위해 구걸을 하는 지경에 이르지만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아 자신의 유일한 벗이자 가족인 애완견 플릭을 맡아줄 사람을 찾고 자살하려 한다. 기차에 뛰어들어 죽으려다 실패한 움베르토 디는 공원에 몰래 두고 온 플릭을 다시 찾아내고 함께 어딘가로 떠난다.

움베르토 디를 연기한 배우도 〈자전거 도둑〉에서처럼 길거리에서 캐스팅했다고 하는데 그 공허한 눈빛 연기는 일품이다. 그 밤이 지나도록, 일주일이 지나고 한달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 눈이 말하는 것은 잊을 수가 없다. 거역할 수가 없다. 요하네스 베르메르가 그린 ‘진주귀고리 소녀’가 던지는 눈빛은 매혹적이다. 말을 걸 듯 말 듯 눈에서 쉽게 시선을 옮길 수 없도록 한다. 이 소녀의 눈빛에 대해서는 해석이 구구하다. 무언가를 묻고 있는 듯하면서도 아닌 것 같고 장난기가 조금 비치는 듯하면서도 순진한 구석이 있다. 멀리서 보았을 때와 가까이서 보았을 때의 느낌도 사뭇 다르다. 아무튼 그림을 보았을 때 제일 먼저 두 눈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리고 나서 살짝 벌어진 입술이 눈길을 끌고 소녀가 하고 있는 장신구가 진주라는 사실은 약간의 시간적 간격이 있고 나서야 깨달을 수도 있다. 저자 트레이시 슈발리에처럼 자꾸 자꾸 그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얼굴에 내려앉은 빛이며 머리에 두른 푸르고 노란 천이며 소녀가 입은 황금색의 저고리 그리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배경이 몹시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진주귀고리 소녀’를 그린 화가는 17세기 네덜란드의 델프트라는 도시에서 살았던 요하네스 베르메르다. 그는 평생 서른 다섯 점의 그림과 열한 명의 아이를 남겼다. 빛의 화가 램브란트가 활동하던 이 시기의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곳이었다. 영국의 크롬웰에게 제해권을 빼앗기기 전까지만 해도 세계 해상 무역의 중심지였으며 막강한 카톨릭 교회의 권위도 신교도의 집합소인 이곳에선 힘을 쓰지 못했다. 사회를 주도하는 층은 무역으로 돈을 번 상인들이었다. 아마도 소설 속 반 라위번 같은 인물이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베르메르의 그림 속에 종종 등장하는 이 부유한 상인이 그림을 주문하고 사는 소위 후원자 노릇을 하는 것은 그 당시에는 흔한 일이었다. 저자는 소설이 ‘진주귀고리 소녀’의 갖가지 추측을 불러일으키는 모호한 표정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책장을 넘기면서 만나게 되는 베르메르의 다른 작품들을 감상하는 재미도 놓칠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이다. 출판사가 영어판 원문에는 없는 베르메르의 다른 작품들도 실어 놓았던 덕이다.

이 그림 속의 소녀는 누구일까? 화가의 딸인가, 전문적인 모델인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빛을 향해 살짝 돌아선 듯한 이곳은 어디인가?

사실 그림만 보아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트레이시 슈발리에와 같은 작가적 상상력이 뒤따르지 않았다면 이런 궁금증에서 끝났을 수도 있다. 이것이 작가와 독자를 구별짓는 경계선인 셈이다. 더 나아가느냐 여기서 멈추느냐. 그러므로 평범한 사람들은 왜 예민한 그리트가 화가 베르메르의 집에 하녀살이를 갈 수 밖에 없었는지, 그리트의 어떤 감각이 베르메르의 신뢰를 얻게 되었는지, 베르메르가 어떻게 그 그림을 작업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1600년대 델프트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에 대해서까지 작가의 상상력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진주귀고리의 소녀』는 그 상상이 쏟아내는 이야기가 참으로 그럴 듯해 보인다.

길드의 조합원이었던 아버지가 사고로 눈을 다치자 딸인 그리트는 화가의 집에 하녀로 들어간다. 언젠가 본 적 있는 ‘델프트 풍경’을 그린 바로 그 화가의 화실을 청소해 주는 일을 하면서 조금씩 그의 신뢰를 얻고 나중에는 물감 섞는 일까지 거들게 된다. 화가의 작품에 자신의 견해까지 밝힐 만큼 감각이 있던 그녀를 화가는 그림의 모델로 청하고 그와의 이별의 도화선이 될 바로 그 문제의 ‘진주귀고리 소녀’가 탄생한다. 끝까지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 화가는 그림속에서 걸고 있는 진주귀고리를 그녀에게 돌려주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녀는 이 진주귀고리를 어떻게 할까?

작년에 이 『진주귀고리 소녀』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만들어졌다. 올 해 극장에서 만난 영화는 좀 더 압축적이었다. 베르메르와 소녀의 아슬아슬한 심리적 관계에 좀 더 초점을 맞춘 듯하다. 책에서 보았던 섬세한 감정선을 그대로 살릴 수는 없었겠지만 그리트 역의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는 그런대로 볼 만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실제 그림 속의 소녀가 훨씬 더 많은 표정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물을 머금은 듯한 소녀의 눈은 분명 무언가 말하고 있다. 번역자의 표현대로 그것이 무슨 말인가를 건네기 위해 살짝 돌아선 것인지, 화가에게 보내는 안타까운 시선인지, 슬픔에 찬 것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그것은 감상자인 우리들의 숫자만큼이나 무수한 형태의 언어들을 건네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지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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