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1월 2005-01-01   787

기억에 남을 판결, 잊혀져야 할 판결

2005년은 판결 모니터에 역점을 둔 사법감시로 거듭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에서 일하다 지난 6월 사법감시센터로 소속이 바뀐 나는 새로운 분야를 파악하느라 정신 없이 반 년을 보낸 뒤 어김없이 또 새로운 한 해를 맞고 있다. 지난 한 해 사법 분야를 돌이켜보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같은 굵직한 법원 소식과 전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 판결이 풍성했던 특이한 해였다.

화제 만발 2004년 사법계

대통령탄핵소추심판사건,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를 처벌하는 병역법규정의 위헌성 여부,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의 위헌성 여부, 국가보안법 제7조 1항(찬양,고무)과 5항(이적표현물 소지 및 제작)의 위헌성 여부 등 국가적 주요사안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국가보안법 폐지 여부를 둘러싸고 치열한 사회적 토론이 진행되는 와중에 내려진 대법원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자에 대한 유죄 선고가 세간의 뜨거운 관심과 비판을 받았다.

최고법원만 화제를 모은 것은 아니다.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송두율 교수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은 1심 법원과 달리 국가보안법 사건에 있어서도 형사재판의 기본인 엄격한 증거주의의 관점에서 검찰의 기소내용 중 증거가 희박한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여 주목을 모았다. 특히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서울남부지법 이정렬 판사의 판결은 이 문제를 새롭게 보게 이끈 판결이었다. 또 2003년 말부터 2004년 4월까지 진행된 검찰의 불법정치자금 수사로 정치인과 기업인 수 십 명이 한꺼번에 재판을 받게 되면서, 법원이 그들에게 어떤 처벌을 내릴 것인가에도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1심 재판에서 선고받은 처벌 수위가 타당한 이유 없이 2심에서 뚝 떨어져 비판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8월의 신임 대법관 임명을 두고서도 논란이 많았다. 특히 시민단체가 최초의 여성대법관으로 임명된 이를 추천한 것을 두고 보수진영의 반발이 거셌다.

대법원 산하에 설치된 사법개혁위원회가 2004년 중반부터 로스쿨과 배심·참심제 도입 등을 두고 과거보다 진전된 토론을 하면서 사법제도의 전반적인 변화 가능성에 대해서도 많은 소식들이 쏟아졌다.

판결 모니터 강화를 약속하며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적은 인력으로나마 사법 제도 개혁 과정을 모니터하고 10년 전부터 주장해왔던 사법 개혁 과제를 성취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이와 동시에 법원 판결이 소수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며 인권을 옹호하는지, 특정 계층과 정치세력에 편향된 판결은 아닌지 꼼꼼히 살펴보아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판결 모니터 활동을 강화했다. 많은 판결을 주시하지는 못했지만, 역량이 닿는 범위에서, 그리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판결에 대해서는 최대한 모니터하고 비판적 의견을 제시했다.

참여연대 회원들에게 100% 지킬 것이라고 약속하지는 못하겠지만, 사법감시센터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보다 판결모니터 사업에 더 힘을 기울일 생각이다. 인권 보호와 정의의 수호자로서 법원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정치적으로 편향되지는 않는지 더 엄정하게 따져볼 것이며, 환경 보호와 사회적 다양성 존중 등 발전하는 국민 의식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판결을 내리지는 않는지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지켜볼 것이다.

2004년의 판결 중에서 참여연대 회원들이 기억하는 판결도 꽤 있을 것이다. 대통령탄핵심판이나 송두율 교수 재판은 당연히 그 중에 들어갈 것이다. 언론매체에 소개된 것이나 참여연대가 모니터하고 논평을 냈던 판결들도 있다. 그밖에도 의미 있었던 판결들이 적지 않았다. 찬찬히 돌아보면, 이런 판결이 앞으로 다시 나오지 않기를 바랐던 경우도 있고,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도 있다. 새해에는 더 부지런히 사법감시활동을 펼쳐나갈 것을 회원들에게 약속하면서 2004년의 판결 중에서 의미 있었던 몇 가지를 골라 소개한다.

2004년 주요 판결 모니터

■ 갖가지 이유로 정보공개제도를 무시해오던 공공기관에 일침을 가한 판결(대법원) – 참여연대 vs 국회사무총장, 개인이 아닌 시민단체도 정보공개법에 따른 정보공개청구자격이 있고, 정보공개방식 선택은 공공기관 재량사항이 아니므로, 국회는 국회 예비금 등의 자료를 복사해서 공개하라고 결정.

■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 보호에 기여한 판결(서울중앙지법) – 비록 부부 사이일지라도 배우자의 의사에 반하는 성행위일 경우에는 강제 성추행죄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한 판결.

■ 환경파괴 사안의 심각성과 특수성을 이해 못한 결정(서울고법) – 새만금 공사중지 가처분 소송, 본안 소송이 끝날 때까지 공사를 중지시킬 긴급한 필요성과 환경 파괴의 심각성이 없다며 공사중지가처분결정을 내린 1심 판결을 뒤집은 2심 판결.

■ ‘양심의 자유’를 부차적인 것으로 전락시킨 판결(대법원) –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는 병역을 거부할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며, 양심의 자유를 국방의 의무에 종속시킨 판결.

■ 앞뒤 바뀐 법률 해석으로 여성장애인을 ‘보호불능’상태로 만든 판결(부산고법) – 성폭력처벌법의 장애인 강간죄를 적용하려면 일반적인 경우보다 더 항거 불능 상태여야 한다며, 정신지체1급 여성장애인을 강간한 마을 이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

■ 형식적이고 무리한 법률 해석으로 경제정의실현에 역행한 판결(대법원) – 참여연대 vs 삼성전자, 소송의 효력이 인정되는 법정 시한 내에 전환사채발행무효소송을 제기하여 문제없는 상태에서, 중요한 무효사유에 해당하는 회사 측의 이사회 의사록 조작 사실을 소송 진행 중 발견하였는데, 이 사실은 소송 제기 시한 이후에 주장했다는 이유로 그 내용을 검토조차 하지 않은 판결.

박근용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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