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1월 2005-01-01   868

민중의 힘으로 이끌어 낸 참여민주주의

세계은행과 미국의 거대 다국적 기업 벡텔이 사유화했던 물을 주민들의 힘으로 되찾은 도시, 볼리비아 코차밤바. 이 도시가 석유와 천연가스를 볼리비아 민중의 손으로 통제, 관리하기 위한 싸움의 최전선에 다시 섰습니다. 코차밤바의 물 전쟁 이야기부터 해보지요.

1999년 10월, 코차밤바의 상수도는 벡텔의 자회사로 넘어갔습니다. 볼리비아 정부가 코차밤바의 공공용수 소유권을 벡텔이 주도하는 컨소시엄에 40년 간 넘겨주기로 계약하면서부터였습니다. 코차밤바의 식수, 하수시설은 물론이고 관개와 전력 생산에 필요한 모든 용수 공급이 이 컨소시엄의 손에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도시의 모든 우물, 심지어 미래 우물에 대한 권리까지 포함된 계약이었습니다. 주민이 자기 집 마당에 우물을 파서 물을 길어 올리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이 계약으로 기업은 연간 16% 이윤을 보장받은 반면, 주민들은 평균 51%나 뛰어오른 물 값으로 고통받게 된 것이죠. 월 60달러 수입으로 생활하던 이에게 15달러의 수도요금이 부과됐을 정도였으니까요.

격분한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오스카 올리베라가 이끄는 ‘물과 삶을 수호하는 연합’은 대대적인 수도 민영화 반대운동을 펼쳤습니다. 주민들은 나흘 간 공공수도세 재조정을 위한 시위를 벌였고, 이 시위로도 해결되지 않자 이듬해 2월에는 대규모 시위대가 1000여 명의 경찰과 충돌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틀 동안 175명의 주민이 다치고 2명이 실명했을 정도로 거친 충돌이었습니다. 3월과 4월에도 대규모 시위가 잇따랐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도 코차밤바 시위에 합류했고, 협상을 약속했던 볼리비아 정부가 협상하러 온 시위대를 가둬버리면서 정부와 주민의 충돌은 격화됐습니다. 정부가 군대를 보내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한 명의 군인과 4명의 시민이 죽고 88명이 다쳤습니다.

그러나 코차밤바 주민들은 저항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2000년 4월 벡텔의 자회사는 “직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주민들의 경고를 받고 볼리비아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볼리비아 정부와 벡텔 간 계약은 파기됐고 정부는 민영화 계획을 철회했습니다. 5개월 간의 치열한 싸움 끝에 볼리비아 정부는 민중이 뽑은 대표자들을 포함한 공공 이사회에 코차밤바의 물 시스템을 넘겨주었습니다. 물 값은 이전 수준으로 안정됐고 물이 부족한 이 지역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이사회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물전쟁은 국민의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

그런데 ‘물전쟁’의 뒤에는 세계은행이 있었습니다. 세계은행의 2002년 봄 보고서에는 “볼리비아 대통령은 1997년까지 세계은행의 대출 기간을 2년 연장받는 조건으로, 라 파스와 코차밤바의 상하수도 시설을 민영화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현재 벡텔은 세계은행을 중재자로 내세워 볼리비아가 계약 파기에 따른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 그들은 코차밤바의 물 시스템이 엉망이었기 때문에 민영화는 필연적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지요.

하지만 코차밤바 시민들에게 이 문제는 사유화나 공영화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물은 다른 사유화된 수많은 자원들의 목록에 더해진 마지막 사례에 불과할 뿐, 이것은 참여민주주의와 주민들을 위한 믿을 수 있는 관리를 얻어내기 위한 투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투쟁을 주도했던 올리베라는 “기업이나 정부에 대항해 얻어낸 승리는, 일상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들에 대한 사유화되지 않은, 지역 차원에서의 자체 통제권을 얻어낸 승리에 비하면 별 것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민중들은 자신들의 물과 함께 “결정할 수 있는 자신들의 능력”을 발견했다고 말합니다.

자국의 새 역사를 만들어가는 ‘민중’

이렇게 자신들의 목소리와 능력을 발견한 볼리비아 사람들은 이제 더 나아가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아오기 위한 싸움에 나섰습니다. 올리베라는 ‘민중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지금 그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변화는 덜 기업화된 국가입니다. 이들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나라에 석유와 천연가스가 필수적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볼리비아는 남미에서 베네수엘라 다음으로 석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석유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정치 과잉이 있게 마련이지요. 볼리비아의 석유 역시 외국 세력의 손아귀에 있습니다. 1996년 볼리비아에서 두 번째 부자로 알려져 있는 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 대통령은 다국적 석유회사들과 석유 민영화 계약에 서명했습니다. 현재 볼리비아에서 나오는 석유 100달러 어치마다 18달러는 볼리비아, 82달러는 이 회사들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2003년 로사다 대통령은 볼리비아의 천연가스를 미국과 멕시코에 팔 예정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미 민영화의 폐해를 혹독하게 경험했던 볼리비아 민중들은 정부 정책에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다시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고 정부 역시 무력 진압에 나섰습니다. 60여 명이 목숨을 잃고 수백 명이 다치는 유혈 충돌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볼리비아 민중은 승리를 이끌어냈습니다. 로사다 대통령이 물러나 미국으로 떠나도록 만들었던 것이지요.

이제 볼리비아 정부는 천연자원 관리의 국영화를 이룰 수 있고 더 큰 이윤을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되는 탄화수소 법안 초안을 놓고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3일부터 의회가 이 법안을 두고 논쟁을 벌이는 동안 거리에서는 국영화 찬성 시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민중은 두려운 마음으로 의회의 논쟁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볼리비아 민중들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역사적인 발걸음이 될 수도 있지만, 의회가 민중의 희망을 무시할 경우 또다시 유혈 폭력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지구에서 두 번째로 불공평한 나라, 볼리비아. 이 나라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반대 투쟁의 선봉에 설 수 있게 만든 힘은 무엇일까요? 올리베라는 그 힘을 ‘라 젠떼(la gente)’에서 찾습니다. ‘민중’이라는 뜻의 라 젠떼는 볼리비아가 지금껏 벌여온 투쟁의 역사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대 속에서 단순한 ‘민중’이상의 상징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민중들 사이에 서서히 퍼져나가는 하나의 확신, 선거에서 누가 지도자로 선출되느냐에 의한 개혁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확신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묻습니다. “결정권을 가진 자가 누구인가? “그리고 볼리비아에서는 평범한 민중이 스스로 결정을 내리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라 젠떼’의 힘이 볼리비아 역사를 새로 써나가고 있습니다.

강은지 (민족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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