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3월 2005-03-01   1000

소생의 시간

“겨울이 오면 봄은 멀지 않으리.” 영국의 낭만파 시인 퍼시 셸리가 쓴 ‘서풍부’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그는 『프랑켄쉬타인 –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를 쓴 메리 셸리의 남편이다. ‘서풍부’는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부치는 노래’일텐데, 영국은 서안해양성기후대이므로 서쪽은 봄이 오는 곳이다. 이렇게 보면 퍼시 셸리의 ‘서풍부’는 ‘봄을 기다리며 부르는 노래’라고 할 수 있겠다.

“겨울이 오면 봄은 멀지 않으리.” 겨울 바람이 차갑게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문득문득 가슴 속에서 떠오르는 멋진 싯구다. 겨울이 왔다고 슬퍼하거나 절망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소생의 봄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뻐하고 희망을 품어야 한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봄은 더욱 더 가까이 다가온다. 북풍한설이 몰아칠 때에는 세상의 끝이 온 듯이 괴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머지 않아 봄이 오고야 만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겨울이 오면 봄은 멀지 않으리.” 이 싯구에서 겨울이나 봄은 물론 자연의 이치에 따라 돌고 도는 계절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당연히 사회상황의 은유이기도 하다. 겨울은 혹독한 정치적 억압과 반동의 상황일 수 있고, 괴롭기 짝이 없는 경제침체의 시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달이 차면 기울듯이, 7년 홍수에도 끝이 있고, 7년 가뭄에도 끝이 있다. 봄이 온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시금 씨를 뿌릴 준비를 한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겨울이 대단히 따뜻해지고, 나아가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겨울은 가장 혹독한 계절이다. 겨울은 여전히 죽음의 계절로 보인다. 이것은 사실이기도 하다. 많은 생물들이 겨울을 이기지 못하고 죽는다. 겨울은 가장 혹독한 적자생존의 계절이다. 그러나 여전히 살아남는 생물들이 죽는 생물들보다 더 많다. 이 때문에 봄이 되면 세상은 다시금 화사해지고 시끌벅적해진다.

겨울은 사실 죽음의 계절이 아니라 휴식의 계절이다. 모든 생물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 겨울은 밤과 같다. 그것은 더욱 왕성한 활동을 위해 마련된 시간이다. 이런 점에서 겨울은 또한 준비의 계절이다. 따뜻한 햇살을 쬐며 새로운 생명활동을 준비하는 시간이고, 정치적 반동과 경제적 침체를 넘어서 흥겨운 상자이생(相資以生)의 대동사회를 새롭게 준비하는 조용한 희망의 계절이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봄물이 오른 버드나무는 다시금 아스라하게 연두빛으로 빛날 것이다. 즐거운 소생의 시간이요 새로운 도약의 시간이다. 지난 봄은 수구세력의 총반격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겨울은 결국 봄을 이기지 못한다. 수구세력은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수구세력이다. 그렇기는 해도 수구세력은 여전히 약하지 않다. 개혁을 내세워서 시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세력이 그 눈치를 볼 정도로 여전히 강하다.

『참여사회』가 어느덧 100호를 맞게 되었다. 그 동안 8년 3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다. 시절의 봄은 저절로 찾아오지만 시대의 봄은 시민의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 수구세력은 물론이고 그 눈치를 보는 얼치기 개혁세력도 모두 시민의 눈으로 감시하고 시민의 손으로 바꾸어야 한다. 『참여사회』가 지켜온 이런 자세는 앞으로도 계속 지켜질 것이다. 모든 회원과 시민들에게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함께 해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홍성태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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