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3월 2005-03-01   954

대안학교의 졸업식

한 대안학교의 졸업식에 갔다. 그 학교는 남쪽지방의 산골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주 드물게 다니는 버스를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빠듯해 택시를 타고 갔다. 가는 길 내내 운전사는 이런 좋은 환경에서는 달리 보약 먹을 일이 없다는 점을 계속 강조했다. 웬 마을에 들어왔나 싶었는데 여기가 바로 학교라고 기사가 일러주었다.

아이들은 별로 들뜬 표정도 없이 무덤덤하게 삼삼오오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룻바닥이 깔린 강당에는 이미 학부모들이 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강당 안에는 별다른 표시가 없었다. 단출한 플래카드가 한 장 걸려 있었는데 일회용이 아니라 두고두고 쓸 요량으로 만든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식을 시작하기 전에 사회자가 아이들에게 내빈석에는 앉지 말라고 일렀다. 내빈석이란 다름 아니라 허름한 방석 몇 개가 놓여진 자리였다. 책상다리로 앉으면 너나 할 것 없이 키가 똑같아지는 그런 자리였다. 군수님도 내빈으로 참석했는데 저런 자리에 그가 정말로 익숙해졌는지 궁금했다.

맨 처음 순서로 졸업생들의 입장이 있었다. 재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박수를 받으며 아이들이 겅중거리는 걸음으로 활기차게 들어왔다. 졸업생 스물두 명 모두 환한 얼굴이었다. 아이들의 복장도 각양각색이었다. 노랑머리에 한쪽 귀에 이어링을 길게 늘어뜨린 남학생이며 벌써 파마를 동글동글하게 하고 나타난 여학생도 있었다.

졸업생에 대한 시상식이 시작되었는데 이사장상, 학교장상, 육성회장상 등이 주어질 때는 일반 학교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지 않은가 싶었다. 그러나 곧 희망상, 평등상, 창조상….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이름의 상이 죽 이어지고 나서야 졸업생 22명이 모두 한개 씩의 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내빈축사는 아주 짧은 게 특징이었다. 우리도 저렇게 짧게 말할 수 있는 민족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자리였다. ‘회고하건대’ 혹은 ‘돌이켜 보면’ 혹은 ‘마지막으로’ 하는 식의 문장은 등장하지 않았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고자 하는 이 또한 거의 없어보였다.

아이들이 받을 상을 다 받고나서 졸업생들이 각자 한마디씩 하는 순서가 이어졌다. 이제야 졸업식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되었다. 학생들은 한명 한명 돌아가며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학교생활이 어떠했는지, 이 학교가 자신을 어떻게 키워주었는지 말했다. 솔직하고 담백한 어투였다. 울음이 범벅이 되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게 하는 아이도 있었다.

단상에 올라간 아이들이나 마룻바닥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나 모두 하나같이 졸업식 자체에 열중하고 있었다. 식 따로 나 따로 노는 풍경은 전혀 없었다. 핸드폰으로 문자 보내는 아이나 속닥거리는 아이도 없었다. 앞에 선 이의 말을 경청하며 깔깔거리거나 눈물을 훔쳐내느라 바쁜 아이들만 있었다.

졸업식을 보면서 이 아이들은 학교를 통해 자기들이 커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교육에 스스로 자유롭게 참여했다는 사실도 더불어 알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원래 이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는 지금 대안학교를 통해 에둘러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 대안학교가 원래 정상학교인 것이다.

권은정 『참여사회』 편집위원,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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