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3월 2005-03-01   960

『참여사회』를 통해 본 한국사회 10년의 변화 –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지난 10여 년 간 한국사회는 많은 변화를 거듭해 발전해왔다. 2005년 3월호, 『참여사회』 지령 100호를 기념해 1995년 창간호부터 현재까지 발간된 『참여사회』를 통해 한국사회의 변화와 시민운동의 역할, 그리고 의미를 살펴보았다. 편집자주

홍일표 iphong@pspd.org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 수료/참여연대 전(前) 연구팀장)

우리 시대 ‘실록’을 넘기며

몇 년 전 서점가에서는 조선왕조실록을 새롭게 해석해 쉽게 풀어쓴 책들이 크게 유행한 적이 있었다. 조선왕조실록 해제작업이 일단락되고 CD-ROM 형태로 구입할 수 있게 됨으로써 관심 있는 이라면 누구나 쉽게 실록을 읽고 자신의 관심에 따라 재구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물론 후대 연구자들의 해석과 기술혁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수 백 년을 한결같이 기록해 온 선조들의 노력의 산물이라 봐야 할 것이다. 『참여사회』를 통해 지난 10여 년 간 한국 사회를 되짚어 볼 수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오늘’의 문제는 하루만 지나면 ‘어제’의 것이 되지만, 이를 통해 우리가 다시 ‘내일’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오늘’에 대한 철저한 성찰과 기록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 짧은 지면에 10년의 한국 사회를 모두 담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참여사회』의 특집과 기획들을 중심으로,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 한국 사회의 변화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참여사회』의 주요 흐름 : 빈곤, 정치개혁, 시민운동, 그리고 평화

『참여사회』라는 렌즈를 통해 눈에 들어온 한국 사회는 크게 네 가지 영역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우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과 관심에 바탕을 둔 빈곤과 불평등, 그리고 사회복지 문제 △한국의 권력집단, 특히 정치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감시와 비판 △1990년대 한국 사회 변화를 이끌어 가는 주요 세력으로 성장한 시민운동에 대한 지지와 성찰 △2000년대 이후 더 두드러지는 북한과 미국 관계, 반전평화에 대한 열망이 그것이다(물론 이외에도 재벌개혁, 조세개혁, 사법개혁 등 주요한 개혁과제들, 지역 시민단체들의 활동, 외국의 시민운동 등을 포함한 곳곳의 숨소리가 『참여사회』를 통해 계속 기록되어 왔으며, 이를 통해 한국 사회 변화의 또 다른 양상을 읽어낼 수 있지만 지면의 제약으로 인해 다루지 않는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사회 양극화

김중배 당시 참여연대 공동대표의 「‘희망의 연대’를 위한 뼈저린 물음」으로 시작된『참여사회』창간호(1995년 5·6월호)에서는 1994년 12월부터 시작된 참여연대의 국민생활최저선 운동을 중심으로 세계화 시대 삶의 질의 문제를 첫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세계화의 전제조건 삶의 질을 높이자!」). 이후 한국 사회의 빈곤과 불평등, 그리고 사회복지 문제는 『참여사회』의 주된 관심주제가 된다. 낙제점 수준에 불과했던 한국 사회복지는(「대특집 : 한국의 복지성적표」(1996년 5·6월호)), IMF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급격하게 늘어난 실업과 ‘일하는 빈곤’이라는 새로운 상황을 뛰어넘을 여력이 없었다(「저소득 실직자에게 비상구는 없다」(1998년 7월호), 「일하는 빈곤」(연중기획으로 2001년 2월호∼2002년 5월호 연재)).

이는 또한 심각한 사회양극화를 불러오게 된다(「’10 : 90’의 한국사회」(2002년 1월호), 「사회귀족, 하다」(2002년 10월호), 「신빈곤, 탈출구가 없다」(2003년 9월호), 「최저생계비인가 최저생존비인가」(2004년 8월호)).

창간호에서 크게 다뤘던 참여연대 국민생활최저선운동은 이후 1999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으로 일정한 제도적 성과를 거두게 되지만, 실업과 빈곤, 양극화 문제는 오히려 더 심각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복지제도의 보완과 이를 가능케 할 재정의 확충, 소득재분배 효과를 높이는 종합조세개혁에 대한 요구는 더 시급하다 할 것이다(「사회양극화 해법을 찾는다」(2005년 2월호)).

한국 정치개혁의 성장사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참여사회』는 권력집단들에 대한 매서운 감시와 비판을 멈추지 않는다. 이 가운데 『참여사회』가 출발부터 지속적으로 다루어온 가장 중요한 주제는 정치개혁 및 정치민주화 문제였다. 1987년 이후 한국 사회의 민주화가 다양한 영역에서 빠른 속도로 진행됐지만, 정치는 지난 10여 년 간 여전히 부패와 무능이라는 구태에 갇혀있었고, 이를 변화시키기 위한 시민운동의 노력과 요구는 그치지 않고 계속돼 왔다(「정치개혁과 시민운동」(1995년 9·10월호), 「시민운동, 대선을 바꿔라」(1997년 7·8월호), 「국회감시운동 이제 시작이다」(1999년 11월호)).

그러나 ‘제언’과 ‘감시’만으로 국회는 변하지 않았다. 결국 한국의 시민운동은 전국적인 낙선운동을 전개했고, 그 결과는 ‘유권자 혁명’이라 불릴 정도로 충격적인 것이었다(「낙선운동 현장에 가다 : ‘낙천자 리스트’ 전격공개」(2000년 2월호),「4·13총선과 유권자혁명 ‘바꿔‘」(2000년 4월호)).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경험은 이후 2002년 대선에서의 대선유권자연대 운동(「2002 대선, 유권자의 선택은?」(2002년 11월호)), 그리고 2004년 총선에서의 또 한 번의 낙선운동과 다양한 유권자운동으로 확대되기에 이른다(「정치개혁, 유권자의 힘으로」(2003년 11월호),「유권자 독립선언, 총선혁명!」(2004년 3월호)). 정치민주화를 위한 우리 사회의 열망은 조직화된 시민운동의 성장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2004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수백 만 개의 촛불을 통해 확실히 확인될 수 있었다(「탄핵 그리고 유권자의 선택」(2004년 4월호)).

그러나, 정치개혁을 위한 시민들의 뜨거운 열정과 시민운동의 다양한 노력, 그리고 크고 작은 성과와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금 한국 사회의 정치개혁과 민주화는 여전히 제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환희와 좌절은 되풀이되고 있으며, 새로운 정치의 시작이라는 큰 기대를 한 몸에 안고 출발했던 17대 국회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고, 진보정당의 현실적 한계 또한 분명하다. 정치사회의 정상화와 그에 따른 시민사회/운동의 새로운 재편은 다시금 ‘시민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라 할 것이다(「한국정치 ‘변화’는 없는 것인가」(2005년 1월호)).

시민운동이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

『참여사회』를 통해 지난 10여 년 간 한국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온 시민운동의 발자취와 이를 둘러싼 논란과 반성, 쟁점과 전망을 읽어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시민운동은 ‘새로운’ 사회운동으로 시작해 1990년대를 거치며 ‘중요한’ 사회운동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고 『참여사회』는 이러한 한국 시민운동의 성장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해왔다. 때로는 시민운동에 대한 지지와 성원을 이끌어냈고(「시민운동의 도전! 자원봉사자를 잡아라」(1996년 11·12월호), 「시민단체, 풀뿌리 돈줄을 찾아라」(1999년 9월호), 「시민운동, 이제 퍼블릭 엑세스를 활용하라」(1999년 10월호)), 때로는 엄격한 반성과 평가를 스스로에게 던지기도 했다. (「경실련 파문과 시민운동의 과제」(1997년 5·6월호), 「시민운동에 던진 도전적 문제제기」(2000년 7월호), 「운동사회 성폭력을 말한다」(2003년 4월호)).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민운동이 놓인 조건의 변화와 그것의 의미를 짚어내고, 날카로운 전망과 제언을 내놓기도 했다. 해마다 빠지지 않고 시민운동 평가와 전망을 특집으로 다루었을 뿐만 아니라, 진보정당의 창당이나 인터넷 사용의 급속한 확장, 보수적 시민운동의 성장 등이 기존 시민운동에 미친 영향들을 분석하고 있다(「진보정당 창당과 시민운동」(1999년 8월호), 「시민운동과 인터넷」(1999년 11월호), 「보수단체들의 시민운동 흔들기」(2001년 6월호)). 『참여사회』는 2000년 낙선운동 이후 시민운동을 둘러싼 담론 환경이 급속히 악화되기 시작했고 2002년 대선을 거치며 시민운동의 정치적 중립노선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진 사실도 놓치지 않고 있는데(「시민단체가 홍위병이라고?」(2001년 9월호), 「정치적 중립, 시민운동의 보신주의인가」(2003년 1월호)), 이는 한국 시민운동의 급성장을 가져온 안팎의 조건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통일운동’에서 ‘미국’의 문제로

마지막으로 『참여사회』는 한국 사회에서 통일문제가 북한과 미국, 그리고 한반도와 세계평화라는 큰 틀에서 재구성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1990년대 중·후반까지 통일 문제는 주로 통일운동 차원에서 논의됐다. 이는 『참여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남북통일 전망과 분석」(1995년 9·10월호), 「통일운동」(1996년 7·8월호),「남북정상회담과 통일운동의 과제」(2000년 5월호)). 그러나 2000년을 지나며 남한의 통일운동에 대한 관심보다는, 북한과 한반도 평화 문제로 논의가 넓혀짐을 알 수 있다(「남북정상회담과 한반도 평화」(2000년 6월호), 「한반도 평화 만들기」(2000년 8월호), 「평화의 다리를 놓자」(2001년 6월호), 「평양축전과 서울, 절망과 희망 사이」(2001년 10월호), 「냉전광기 넘어 ‘평화’로!」(2002년 8월호)). 특히, 2003년 이후 한국 사회는 북핵문제 해결이라는 또 다른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북핵위기, 그 해법은?」(2003년 5월호), 「6자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분석」(2003년 10월호)).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미국’ 문제가 광범위하고 대중적으로 다뤄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이라크 침공으로 이어지는 미국의 패권주의(「세계평화를 테러한 미국 패권주의」(2001년 11월호), 「누가 ‘악의 축’인가」(2002년 3월호), 「미국은 아직도 우방인가?」(2002년 4월호), 「미국 패권주의는 몰락하는가」(2002년 9월∼11월호)「현지르포 9·11 테러 1년, 아프가니스탄을 가다」(2002년 9·10월호), 「“눈물의 이라크, 나눔이 절실하다”」(2003년 6월호), 「빈곤과 제2의 전쟁 치르는 이라크」(2003년 8월호))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 그것이다. 그리고 효순이와 미선이를 위한 촛불 집회, 한국군 파병에 대한 반대운동 (「여중생 압사사건과 주한 미군」(2003년 1월호),「파병결정 시민의 힘으로 철회시키자」(2003년 11월호), 「’파병철회’ 함성을 다시 울려라」(2004년 4월호))은 새로운 상황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들이라 할 것이다. 이는 현재 한국 사회가 북한과 미국의 대치상황, 미국에 의해 주도되는 세계전쟁이라는 과거와는 또 다른 위기국면에 놓여 있으며, 이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가 시민운동의 중요한 숙제로 자리잡았음을 보여 준다.

변한 ‘세월’ 속에 변하지 않은 ‘희망’의 기록

『참여사회』 제2호(1995년 7·8월호)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진을 싣고 있다. 그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는 과연 ‘안전’한가? 2년 전 대구지하철 참사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지난 10년 간 변한 게 과연 무엇인가 되물을 것이다. 부실과 안전불감증, 부패와 무능, 불평등과 전쟁 위협은 과연 해소될 수 있을 것인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좌절이 반복되면서 힘겨워 하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참여사회』를 통해 돌이켜본 한국사회 10년에는 분명 작지 않은 변화와 희망이 담겨 있다.

모두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 좌절하고 있을 때, ‘변화’를 이끌어 냈던 기록을 우리는 『참여사회』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참여사회』의 책장을 다시 넘겨보는 이유다.

홍일표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 수료/참여연대 전(前) 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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