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3월 2005-03-01   767

『참여사회』와 나 – 그 해 여름, 물난리의 추억

참여사회 창간 후 어려웠던 시기 자원활동가 객원기자로 참여사회 제작에 참여했던 김라 씨를 통해 당시 상황을 들어보았다. 편집자주

어찌어찌하다 보니 참여연대 초창기부터 인연을 맺게 되었고, 내가 밥 먹고 살아온 수단이 글 쓰고 책 만드는 일이다 보니 『참여사회』에 발이 묶이게 되었다.

다니던 직장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만두고 나서 전업주부로 집에 있었던 시간은 오히려 삶에 대한 고민이 더 치열해진 시기였다. 내가 더 이상 사회에 쓸모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과 자괴감에 매일 우울해하던 때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야만 주위에서 당당한 한 존재로 인정해준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고, 아무런 부도 창출하지 못하는 존재의 무기력함에 당황해하고 있을 때였다.

난 경제적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아니라 나 자신이란 존재를 증명하고 싶었다. 이 사회에는 ‘돈벌이’라는 개념만 깨버리면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쪼개서 자원봉사를 하려고 했고,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할 일은 많았다. 아직도 엄마 손을 많이 필요로 하는 아이들에게 독립심을 키워준다는 핑계로 내버려두고 참여연대를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때도 있었다.

그 당시 『참여사회』는 기자 혼자 모든 일을 맡아하다 시피 하던 힘든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상당히 알찼고, 반응도 좋았다. 혼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보기에도 안타까워 조금씩 도와주다 보니 어느 새 발을 뺄 수 없을 만큼 깊이 들어가 버렸다. 그래봐야 교정 몇 번 봐 주고, 취재기사 몇 번 써 준 것뿐이지만. 불규칙한 잡지 편집 성격상 크게 도움을 줄 수도 없었다.

『참여사회』에 기사를 쓰면서 아직까지도 잊지 못하는 일이 있다. 몇 년 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서울에 큰 물난리가 난 해 여름이었다. 중랑천 방죽이 터져 천변 저지대가 침수되어 수많은 이재민을 냈다. 대대적으로 성금을 모으고, 정부에서는 구호활동을 한다고 했지만 그게 당사자들에게는 별 도움이 못 되었나 보다. 이재민들이 모여 재해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정부에 요구 한다고 해서 취재를 나갔었다. 당시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의 김칠준 변호사와 함께였다.

서울 서남쪽에 살던 난 그 때 처음 중랑천에 있는 월릉교 인근 동네를 가 보았다. 사무실로 쓰는 작은 컨테이너에 주민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그들의 사정은 우리가 언론매체를 통해 알던 것보다 훨씬 처참했다. 정부의 재해대책이란 것도 겉핥기 식이어서 실제로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도움은 미미할 뿐이었다. 집집마다 작은 가내수공업을 하고 있던 주민들은 생계수단을 다 잃고 막막한 지경이었다. 그나마 집주인들은 보상금을 조금이라도 탈 수 있었지만, 세입자들은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주민들은 밤새 빗속에서 모래주머니를 쌓아올려 방죽을 만들어 놓은 곳을 보여 주었다. 그러면서 그들이 입은 수해가 천재가 아니라 인재라고 입을 모았다. 같이 갔던 김 변호사가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도와주겠다고 시원하게 말하자 주민들은 큰 원군을 얻은 듯 기뻐했다. 나 역시 힘없는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이곳의 실태를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열심히 취재했다.

『참여사회』에서 취재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겉 모습과 속이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스컴을 통해 보이는 모습을 그대로 믿지 못하는 버릇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사회에는 어두운 그늘과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걸 알게 됐고, 염세적인 가치관을 갖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희생을 감내하면서 이 어두운 그늘을 밝히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참여사회』도 그 중의 하나이리라. 이 사회의 이면을 뒤집어 세상에 알리고,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도 밝은 빛을 볼 수 있도록 지금도 열심히 일한다고 믿는다.

『참여사회』 100호, 저절로 되었다고 볼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겐 그 숫자가 범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여기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이 쌓아올린 헤아릴 수 없는 노력과 고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분들에게 감사를 보내며, 보이지 않는 보람과 자긍심이 그분들의 노고에 보답해 주리라 믿는다. 『참여사회』가 내가 할머니가 되어서 손주와 함께 볼 수 있는 잡지로 남길 바란다.

김 라 참여사회 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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