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3월 2005-03-01   5922

[작은권리찾기운동] ‘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 더는 안 된다.

위층에 누군가 새로 이사 온 뒤부터 몹시 신경 쓰이는 일이 생겼다. 아이들이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발뒤꿈치가 아프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심하게 뛰어 다니는 것 같았다. 간혹 온 신경이 곤두서서 그 발소리를 따라 신경을 모으다보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어린 아이들의 발소리에도 이렇듯 신경이 쓰이고 짜증이 나는데 하물며 1년 내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르내리는 비행기의 굉음을 들으며 생활해야 한다면 그 고통이 오죽할까?

일제시대에 일본군 비행장으로 출발해 1958년 국제공항으로 지정된 김포공항은 80∼90년대 급격한 확장을 거치면서 2001년 새로운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할 때까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국내선과 국제선 비행기가 뜨고 내린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주로 국내선 비행기만 운항하고 나머지 공간에는 대형 할인매장과 극장이 들어섰지만 내게는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탔던 설렘과 신혼여행 비행기를 놓칠까봐 헐레벌떡 뛰었던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비행장 근처 주민들에겐 아이들 뛰는 소리보다 몇 백 배는 더 컸을 비행기 굉음에 가슴 벌렁거리고 밤잠을 뒤척여야 했던 곳이다.

우리 헌법 제10조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하지만 이러한 헌법적 권리는 자주 국가에 의해 제한되거나 말 뿐인 상징적인 의미로 축소되기도 했다. 지난 2000년 참여연대 등이 제기한 ‘김포공항소음피해소송’은 바로 이런 헌법적 권리를 현실 속에 되찾기 위한 자각의 산물이다.

공항공단이 항공기 소음기준 및 대책을 소홀히 해 인근 주민들이 헌법이 보장한 행복추구권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소송을 제기한지 5년 만인 지난 1월 말 드디어 대법원은 원심대로 공단이 주민들에게 피해를 배상하도록 했다.

이번 판결은 그동안 공익이나 경제성을 이유로 ‘다수의 이익을 위한 소수의 희생’을 불가피하고 심지어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 이들 피해자들을 외면해 온 것에 대해 경종을 울린 것이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님비’(Not In My Backyard, 내 뒷마당은 안 된다는 뜻)현상으로 매도하고 묵살만 할 것이 아니라, 이들이 삶의 터전을 지키면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를 우선적으로 취해 주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번 판결을 통해 피해 주민들은 몇 십 만원에서 많아야 100만∼200만 원의 피해 보상을 받게 된다. 이 돈을 받자고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소송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이번 판결의 효력은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들에게만 적용된다.

같은 취지로 2002년 7월 2차로 소송을 낸 피해주민 9600여 명은 여전히 판결을 기다려야 하고, 2차 소송에도 참여하지 못한 피해주민들은 개별적으로 소송을 제기해야만 한다.

이처럼 국가나 기업에 의해 다수에게 피해가 발생했는데도 배상액이 적게 되면, 피해자는 적극적인 권리 구제에 나서지 않으려 하게 되고, 가해자는 이 때문에 피해를 예방하거나 줄일 노력을 게을리 하게 되는 폐단이 있다. 따라서 같은 피해를 본 사람들의 대표자가 제기한 소송의 결과가 피해 집단 전체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집단소송제 도입이 시급하다.

백종운 참여연대 사회인권국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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