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3월 2005-03-01   1424

[세계는 지금] 중국에 시민사회는 존재하는가

세계화의 흐름에 따라 국제시민사회가 등장했다. 또한 국제시민사회의 확고한 구축을 위해서 NGO의 역할이 그 어느때 보다도 요구되고, 이 NGO의 역할 강화로 국제시민사회가 영역을 확보해가고 있다. 본지는 이번호부터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주요 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적 배경을 통한 특징과 의미 그리고 이 안에서의 NGO활동을 소개한다. 첫번째로 한국과 가까운 아시아, ‘중국’부터 시작한다. 편집자주

중국의 시민사회라는 주제에 대한 가장 일차적인 반응은 “중국에 시민사회가 존재하느냐”라는 의문이다. 경제·사회 영역에서 많은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공산당 1당 지배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물음은 당연하다. 중국공산당은 1949년 권력을 잡은 이후 계속된 정치운동과 사회주의 개조사업을 통해 오랜 전제주의 역사 속에서도 이루지 못한 기층단위에 대한 직접적이고 수직적인 관리체제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1990년대 각종 국제회의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중국의 비정부조직이 중국정부를 대변하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국제사회에 중국의 시민사회에 대한 회의적 시각은 더 깊어졌다. 그러나 경제적 변화에 잘 나타나는 것처럼 어제의 일만으로 오늘을 판단할 수 없는 게 현재의 중국이며 시민사회에 대한 이해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천안문 사태 이후 등장한 중국 시민사회론

1989년 천안문사태 이후 주로 서구 학자들이나 해외에서 활동하는 중국학자들에 의해 처음으로 시민사회론이 중국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천안문사태의 전개 과정에서 나타난 학생, 지식인, 노동자 등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서 중국 시민사회의 싹을 찾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에 지속적으로 도전하는 정치세력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정치적 행위에 초점을 맞춘 접근은 성과를 거두기 어려웠다. 다른 학자들은 천안문사태의 실패에서 민주화가 안정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성숙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이끌어냈고, 주로 경제적 자유화에 따른 시민사회 발전의 필연성과 당위성에 대한 이론적 설명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현실 뒷받침을 받지 못하는 이러한 노력 역시 중국사회 변화에 커다란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에 따라 시민사회론은 한때의 유행으로 그치는 것으로 보였다.

시민사회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줄어든 반면 꾸준한 경제개혁은 시민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사회적 기초를 강화시키고 있었다. 중국의 공업총생산액에서 국유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개혁개방이 시작됐던 1978년에는 77.6%였으나 1997년 25.5%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사영기업, 외자기업 등 사적 소유제에 바탕을 둔 기업의 비중은 GDP(국내총생산)의 1/3을 넘어섰으며, 사영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수도 1992년 232만 명에서 2001년 약 2714만 명으로 증가했다. 경제구성의 다원화는 사회적으로 계급, 계층의 다원화를 촉진했다.

이는 국가와 사회 관계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했다. 우선 계층 분화와 계층 사이의 이익갈등, 개인이나 사회집단들의 권리의식을 키웠다. 또한 국가가 계획경제 때와 같이 직접적이고 수직적인 방식으로 사회를 관리, 통제하는 것도 한계에 직면했다. 국가도 자신의 통제에서 완전히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따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는 민간부분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중국정부도 비정부 조직이나 시민사회에 대한 논의를 금기시하지 않고 있으며,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1990년대 민간조직의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표1>).

민간조직과 비정부 조직의 활성화

물론 민간조직의 증가와 국가의 사회관리 방식의 변화만으로 시민사회가 발전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중국의 민간조직이 완전히 정부로부터 독립한 것이라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중국에서는 민간조직의 등록을 위해서는 업무를 주관하는 행정단위의 비준을 받아 우리의 행정자치부에 해당되는 민정부에 등록을 하여야 하는데 중국 현실에서 비준을 받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러한 규정은 천안문사태가 발생한 직후인 1989년 10월 제정된 사회단체등기관리조례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1998년에는 조례를 고쳐 관리체제의 법적 권한과 책임을 보다 분명하게 했다. 그 결과 1997년 약 20만 개에 이르던 사회단체의 수가 13만 개로 감소했다. 운영에서도 정부의 감독과 개입은 여전히 강한 편이다. 이는 중국공산당이 여전히 국가를 사회보다 우위에 놓고 현재의 변화를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민간조직들이 공식적이고 법적인 차원에서 정부의 통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더라도, 재정과 활동 등 실질적인 차원에서는 독립성을 강화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시장화에 따라 정부가 장악한 경제적 자원이 줄어 사회단체에 대해 과거처럼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없게 된 것이 이러한 경향을 촉진하고 있다. 즉 민간조직들은 재정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했으며, 정부의 요구보다는 사회의 수요를 활동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90년대 중반부터 중국에서는 자주성과 자발성 등 NGO로서의 기본 요건을 어느 정도 충족시키는 새로운 유형의 사회단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들 비정부 조직은 주창형보다는 환경운동, 보건위생, 교육 영역 등의 서비스형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이 단순히 국가의 역할을 보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종종 국가정책과 마찰을 일으키며 주창형의 활동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중국 허난성에서 매혈을 통해 농민들에게 에이즈가 급속하게 확산된 문제를 알렸던 아이즈싱(愛知行)의 활동은 지방정부는 물론이고 중앙정부와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2004년 위난성 누장(怒江)의 수리시설 건설을 둘러싼 환경보호단체들과 지방정부 사이의 갈등도 사례로 들 수 있다. 이들은 국가와의 대립을 전제로 하지는 않으나 자율적인 사회?행위 규범을 제시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정부에 의해 조직된 NGO(GONGO)와는 구별된다.

환경적 제약 속에서도 가치와 영향력 인정받는 시민사회단체들

최근 성공회대학교 아시아NGO정보센터가 실시한 중국 NGO활동가들의 시민사회에 대한 인식 조사결과도 중국 시민사회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이 조사는 △구조(시민사회단체의 가입, 시민의 참여, 분포, 구성, 정치적 참여, 자원) △환경 및 공간(법률과 규제, 국가와의 관계, 사회·문화적 규범) △가치(관용·인권·성적 평등·지속가능한 발전·사회정의, 투명성과 책임성, 내부 민주주의) △영향력(공공정책, 시민사회 단체의 대변 능력, 시민사회 단체의 효과성, 미디어의 관심과 대중의 인식) 등의 4개 차원으로 나누어 시민사회에 대한 인지적 평가를 측정하였는데 100만점을 기준으로 △공간 44.4 △가치 64.0 △영향력57.0 △구조 49.0을 각각 얻었다.

환경 및 공간 차원이 낮은 점수를 받은 것은 중국의 정치체제가 사회단체들의 조직과 활동에 많은 법·제도적 제약을 가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제약은 중국공산당 영도가 여전히 당의 기본 노선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쉽게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구조는 전체적으로 보면 공간과 마찬가지로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공간에 비해서는 약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는 중국에서 공간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단체들이 꾸준히 발전하고 있는 추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합법적인 등록이 어려운 상황에서 비등록 민간단체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추세를 고려하면 민간조직의 수는 <표1>이 보여주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을 것이다.

시민사회 단체들의 공공정책 결정 등에 대한 영향력 평가 항목에서 57점이 나온 것은 공간적 제약과 구조적 취약성을 고려하면 예상 밖의 결과이다. 그러나 이는 시민사회단체들의 공공정책 결정에 대한 실질적인 영향력보다는 변화되고 있는 중국 사회에 공공성과 관련하여 새롭고 진보적인 가치나 의제를 도입하는 원천으로서의 역할이 높이 평가된 것이다. 그리고 피설문자들은 시민사회단체들의 영향력 증가와 관련하여 언론매체들의 기능을 강조했다. 언론이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을 긍정적으로 다뤄줌으로써 공간과 구조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의 공공영역에 대한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주요 통로를 제공하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청년보(中國靑年報), 재경(財經), 남방주말(南方週末) 등의 언론매체가 이에 많이 기여했다. 그리고 중국에서 시장화에 따라 사회복지, 교육, 의료 등의 공공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나 국가의 공공 서비스 제공 능력은 오히려 계속 떨어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이 영역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의 영향력이 더 증가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대만의 경우도 1980년대 정치활동에 대한 제약이 많은 상황에서 주창형보다는 서비스형 비정부조직 활동이 활발했으며, 서비스형 비정부조직이라고 해서 국가와 협조적 관계나 종속적 관계에 머무르지 않고 대만 민주화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가치는 네 차원 중 가장 높은 점수를 얻었다. 가치가 이처럼 높은 점수를 얻은 것은 이 설문이 중국의 일반적인 민간조직보다는 공공성을 추구하는 시민사회단체를 평가 대상으로 삼은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공간, 환경적 제약이 큰 상황에서 이는 시민사회가 발전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다.

종속적 발전의 길 걸을 중국 시민사회

개혁개방과 함께 진행된 시장화 개혁으로 중국에서도 국가의 직접적인 관리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사회적 영역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는 자신의 직접적인 통제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사회영역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인가라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했다. 중국공산당은 여전히 새로운 사회적 공간의 자율적인 발전을 촉진하기보다는 자신의 주도로 새로운 사회공간을 재조직하고 국가 우위의 질서를 유지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시장화와 개방화가 강화될수록 국가로부터 사회의 독립성은 더욱 커지고 국가 주도의 재조직화도 한계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반면 사회의 경우, 국가의 침투에 대응하는 동시에 새로운 사회적 공간에 대한 자주적인 관리능력과 이러한 공간에 요구되는 새로운 규범을 형성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앞의 조사는 중국에서 이미 이러한 방향으로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적 전통이나 정치적 현실을 고려하면 단기적으로는 사회의 자율성을 강화하고 시민사회가 발전하는 데에는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의 시민사회는 종속적 발전(dependent development)의 길을 걸을 가능성이 높다. 즉 중국의 민간조직과 시민사회의 초기적 발전은 국가에 대한 종속적 위치에서 진행될 것이지만 발전과정에서 독자적인 동력이 만들어지면서 점차 국가로부터 자율적인 시민사회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전환은 이념·가치적 측면에서의 선진성이 어떻게 구조화될 것인가에 달려있으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사회단체들의 조직적 역량과 기반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남주 교수 성공회대 중국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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