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3월 2005-03-01   1467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회고전> 폐허의 역사, 역사의 유령

지난 해 독일에서 가장 화제가 된 영화는 아돌프 히틀러의 최후의 삶을 그린 영화 <몰락Der Untergang>이었다. 빔 벤더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천사로 출연했던 배우 부르노 간쯔가 히틀러로 분한 <몰락>은 지난 해 9월 독일에서 개봉하면서 450만의 관객을 동원하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곧바로 정치적 논란을 일으켰다. <몰락>은 히틀러의 개인 여비서였던 트라우들 융게의 회고록을 근거로 1945년 4월 베를린 포츠담 광장 부근의 비밀 벙커에서 히틀러가 보낸 마지막 12일간의 삶을 담고 있는데, 히틀러의 개인적인 생활과 잘 알려지지 않은 인간적인 면모를 그려냈다는 점 때문에 영화에 대한 격렬한 찬반양론을 일으킨 것이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해방 60주년을 맞이하던 즈음에 프랑스에서 이 영화가 개봉하면서 논란은 더해만 갔다. ‘히틀러를 찬미하는 영화’라는 비판과 ‘독일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란 긍정적 평가가 엇갈린 가운데, 지난 1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수용소에서 기념식이 벌어지던 날 프랑스 극장가에서는 <몰락>이 개봉 첫 주보다 더 많은 관객몰이에 나서고 있었다.

<몰락>을 둘러싼 유럽 비평계의 논란은 과거사에 대한 평가 못지않게 역사를 재현하는 영화의 윤리성, 책임성의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역사를 재현하는 것과 관련해 매번 영화가 비판의 도마에 오르는 것은 역사의 현실성, 현실성의 역사를 구성하는 영화의 독특성 때문이다. 과거의 사건을 지금 눈앞에서 진행 중인 사건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과거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역사와 관련한 특이성을 갖고 있다. 일찍이 발터 벤야민은 역사가의 책무가 아직껏 완결되지 않은 것에 완결을 주기 위해, 동시에 완결되었다고 믿어지는 것에 대해 어떠한 본질적인 완결도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비판적으로 지적하는 것이라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영화 또는 영화감독에게도 곧바로 적용될 수 있다. 특히, 전후의 감독들 중 일부는 생존자들에 저항해 사망자를 지켜내는 것, 사망자가 부활할 수 있는 연고를 제공하는 것을 영화의 사명이라 여기기도 했다. 37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또한 그런 예술가였다. 그는 독일 전후세대 감독들 중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독일역사의 상흔을 영화에 담아냈고 파시즘과 대항한 투쟁을 벌였다. 3월, 안국동의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회고전’은 파스빈더(1945-1982)의 영화가 남긴 역사적 흔적을 되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파스빈더의 영화는 침묵 속에 숨겨져 있던 독일의 역사를 표상해냈다는 점 때문에 각별하다. 영화사가인 토마스 앨새서에 따르면 전후 독일은 과거의 역사를 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이후, 연합군은 전 고위 나치가 다시 이전의 사회적 지위를 누릴 수 있도록 관대했고, 대부분의 독일인들 또한 역사를 편리하게 지워버렸다. 학계에서 잠깐 히틀러의 인종주의와 전쟁정책이 어떻게 광대한 지지를 얻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을 뿐, 19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독일에서는 개인의 책임에 대한 논쟁이나 죄의식에 대한 공개적인 표현이 거의 전무했으며 아우슈비츠의 비극이나 독일 유태인의 운명을 그린 영화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유일하게 프랑스의 알랭 레네와 폴란드의 안제이 뭉크가 아우슈비츠의 비극을 영화에 담아냈을 뿐이다). 그리하여 근 20여 년간 독일에서는 전쟁에 관한 기억, 나치즘, 유태인에 관한 영화가 결코 만들어지지 않았다. 오랜 침묵의 시간이 흐른 뒤, 젊은 세대들은 나치즘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고 영화는 히틀러의 직접적인 결과나 영향을 검토하며 전쟁이 초래한 폐허를 묘사하기 시작했다. 나치 시대에 대한 재검토가 이루어진 것은 1970년대 후반의 일인데, 이러한 작업은 1945년 이후에 태어난 젊은 영화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시기 파스빈더는 잿더미와 국가적 치욕의 상황에서 스스로를 일으켜 세운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삶을 그린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으로 물질적 풍요와 사회의 안정성의 이면에 숨겨진 질병과 우울을 표현했다. 그는 40여 편이 넘는 영화를 통해 당시의 독일인들에게 과거의 독일을 되돌아보도록 했다.

물론 파스빈더의 영화가 지닌 중요성은 그가 과거의 역사를 단지 영화로 재현해냈다는 점에 머물지 않는다. 그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망각을 표현할 것인가였다. 이는 역사를 표상하는 것의 (불)가능성과 관련한 문제다. 파스빈더는 파시즘을 재현하는 것(그것이 다큐멘터리이든 픽션이든)이 곧바로 그것의 재현의 (불)가능성의 문제와 직결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역사에 작용하는 힘을 시청각 매체인 영화는 얼마나 충실하게 재현할 수 있는가, 영화는 역사를 일관되고 이해 가능한 것으로 만들면서 과거를 결국 청산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역사의 재현에 있어서 개인적인 이야기가 차지하는 위치는 무엇인가, 영화의 이미지는 결국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어떤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곤란한 문제와 직면하면서 파스빈더는 새로운 전략을 취했다. 역사의 희생자를 재현하는 것과 관련해 파스빈더는 과거로의 회귀(노스탈지어)나 과거와의 급진적 단절(정치적 모더니즘)도 아닌 제 3의 길, 즉 할리우드 멜로드라마를 급진적으로 재구성하는 길을 택한다. 그는 일반 대중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비판정신을 담아낸 영화가 가장 이상적인 영화라 여긴 사람이었고 전 생애에 걸쳐 역사적 기억을 창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멜로드라마, 감상적인 대중음악 등을 적극적으로 영화에 활용했다.

베를린이 폐허가 되고, 소련의 적군이 시시각각 진군해 들어올 때 나치의 선전상이었던 조셉 괴벨스는 그의 동료들에게 ‘100년쯤 후에는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끔찍한 날들이 화려한 컬러 필름으로 영화화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괴벨스의 예언대로 영화는 폐허의 역사를 재현해냈다. 하지만 보다 큰 질문이 남는다. 역사를 재현하는 것의 영화적 한계는 무엇인가, 영화는 역사를 표상하는 권능과 소명을 어떻게 지닐 수 있는 것일까? 파스빈더는 폐허의 역사와 마주하면서 영화를 내부에서 개혁하는 것 이상으로 영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질문한 사람이었다. 파스빈더의 영화는 그 때문에 현실성을 갖고 있다. 역사의 유령들이 스크린을 뒤덮고 있는 작금의 한국영화에 그의 영화는 미학적, 윤리적 문제들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공할 것이다.

김성욱 영화평론가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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