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3월 2005-03-01   913

[조정래 선생 강연후기] 천형(天刑)이 따로 있을까

작가 조정래 님에게는 각종 문학상이 주어지고 문학관이 헌정되었으며 매달 엄청난 액수의 인세가 들어온다. 대한민국의 문학 풍토로 보면 천복(天福)을 누리고 있는 격이다. 좋은 글을 쓰는 작가란 ‘인류의 스승이고 시대의 산소’라 한다. 그런 칭송을 들어 마땅한 그의 40년 문학인생을 듣기 위해 그를 참여연대 회원한마당에 초청했다. 강연 시간 30분 전부터 회원들이 몰려오기 시작해 순식간에 100여 석 자리가 차서 앉을 자리가 없었다. 10분 전에 도착하신 조정래 님께 녹차 한잔을 대접하며 인사하려 했지만 그의 굳게 다문 입과 판판한 이마가 얼마나 단호하게 보이는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마흔 즈음에 자신의 작품들을 모아놓고 살펴보았다. 8권의 장편소설을 비롯한 중편, 단편집을 앞에 두고 그동안 쓸 만큼 썼다고 자부해 왔는데 막상 자신이 죽은 후에 무엇이 기억되랴하고 추려보니 한권도 남지 않더란다.

소설은 거짓말이되 진실하여야 하는데 그는 서슬 퍼런 국가보안법이 무서워서 진실로 진실(?)을 말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즉 자기 검열에 걸린 것이다. 그는 비로소 진실을 말하는 작품을 다시 쓰겠다고 다짐하고 『태백산맥』을 쓰기 시작했다.

역사의 진실을 향한 열망으로 『태백산맥』 집필

역사의 진실을 향한 열망으로 『태백산맥』 집필로 이어져차마 진실을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는 세월이었다. 우리는 50년 이상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살아왔으며, 분단된 현실에서 남과 북의 지도자들은 상대를 교묘하게 이용하였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무슨 이슈가 생기고 정부의 입지가 불리해질 때마다 어김없이 대형간첩사건이 터졌다. 3년에 걸쳐 300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6.25 동란의 기억이 생생한 국민들에게 북의 남침 야욕만큼 확실한 처방은 없었다. 반공이데올로기가 나부끼면 국민들은 일시에 불만이나 불평을 꿀꺽 삼키고 순한 양이 되었다. 그런 분위기이니 작가들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그 즈음에 광주사건이 터졌다. 그는 당시 초등학생인 아들을 앞세우고 가족이 광주로 내려갔다. 행인이나 택시기사나 식당 여주인이나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침묵하였다. 그러나 5층짜리 YMCA건물은 총탄 자국이 얼마나 많던지 350개까지 헤아리고는 그만 둘 정도였으며 벽면과 건물바닥에는 핏자국이 선연했다. 그 핏자국에 대해 광주시민들은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도시를 짓누르는 참담한 슬픔을 서로 나누어 품을 뿐이었다.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었겠지. 그토록 느닷없고 광포하고 잔인하고 애통함을 어떻게 다시 되새길 수 있겠는가. 그때 그는 역사를 제대로 기록해야한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였으며 이것은 태백산맥을 쓰게 된 또 하나의 이유였다.

그는 1983년부터 소설 『태백산맥』을 쓰기 시작했다. 처절한 창작의 고통과 각종 질병, 혹시 살해당할지 몰라 유서까지 써놓을 만큼 공포에 떨면서, 그럴수록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작가적 책임감으로 집필을 계속하였다. 350만 독자들이 그를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폭발적인 반응만큼 보수 세력의 반발도 거셌다. 급기야 한 사건으로는 유래가 없는 120쪽 분량의 500개 항목으로 고발자들로부터 소송을 당하여 대한민국의 각종 수사기관에 불려 다녀야 했다. 1994년에 고발당한 후 수백 건의 질문사항에 관한 사실 증빙과 반박자료를 만들어 제출하였지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의 고소사건은 해결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성인이 보면 소설이고 학생이 보면 이념서라는 검찰의 지침만 변함없이 남아 있을 뿐이다.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그렇게 고통을 받았지만 그는 지난 연말 국가보안법의 폐지보다 3대 민생관련안의 통과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치외법권이던 국가보안법이 존폐의 논란이 되는 것만으로도 이미 죽은 법이나 다름없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의 명쾌한 논리에 가슴이 후련했다.

고발까지 당하면서 그가 소설 태백산맥에서 말하고자하는 진실은 무엇인가. 작가는 한마디로 그들도 인간임을 말하고 싶었단다. 소설 첫머리에 정하섭과 무당 소화의 사랑이야기를 펼쳐 보였듯이, 투철한 이념으로 무장하여 악랄하게 좌, 우 양 극단에서 활동을 했던 이들이지만 극한 상황에 몰려서도 사랑을 느끼고 여인의 품을 그리워한 인간이며 그들 역시 어쩔 수 없는 현실과 시대의 희생자임을 인식시키려 했다. 좌우(左右) 상반된 두 집단 사이에서 그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이 책에서 비춰주는 진실을 통하여 잘잘못을 이해하고 인정하여 용서할 때 우리는 화합하고 진정 통일로 갈 수 있으리라.

소설 세 편의 등장인물 1200명, 원고지 5만1500장

그가 『태백산맥』을 끝낸 후 일제 시대의 진실을 파헤치는 대하소설 『아리랑』과 전후(戰後) 남북 지배계층이 권력을 유지하고 경제적으로 급성장하는 과정의 진실을 기록한 『한강』을 썼다. 비록 공산주의자라 할지라도 독립운동가는 독립운동가로 대접받아야하고, 남북의 권력자들이 정권유지를 위해 어떠한 획책과 강화를 했으며 한강의 기적이 위정자 한 두 사람의 노력이 아님도 밝혔다. 세 편의 대하소설은 200자 원고지 5만 1500장 분량으로 원고지를 모두 쌓아놓으면 높이가 그의 키의 3배가 넘는다. 세 작품에 등장한 인물만도 1200명이다. 그는 일일이 손으로 그 많은 원고지를 메웠고 창작과 취재의 어려움만이 아니라 살해 협박까지 받느라 위궤양과 불면증, 둔부의 종기, 기침, 오른팔 마비, 탈장 등을 겪었다. 수술을 받고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지만 그는 고통조차 달게 받으며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데 20년 세월을 바쳤다. 이 땅에 수없이 많은 역사학자와 지식인들과 작가들이 있건만 홀로 스스로 짊어진 멍에였다. 가히 하늘이 내린 형벌(刑罰)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는 나라를 위해 이름 없이 죽어간 수백만 호국 영령(英靈)과 100년 200년을 이어나갈 우리의 자손들을 생각할 때, 역사의 진실을 알리는 것은 분단국가에 사는 작가로서의 숙명이고 책임이며 의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인간과 사회에 진실하고자 노력하는 시민단체 활동을 높이 평가하고 사회에 꼭 필요한 선(善)한 사람들이 바로 여러분이니 자부심을 가지고 더욱 더 희생하고 봉사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마른 침 넘기는 소리만 꼴깍거리던 강당에 박수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와 동시대인이고 같은 참여연대 회원이라는 사실이 더없이 가슴 벅찬 얼굴들이었다.

이해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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