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3월 2005-03-01   889

[인터뷰] “아파도 좋아요, 사랑하니까”

그를 만나러 강화로 향하는 발길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강화에서 가장 오랜 기간 참여연대를 후원해 온 그는 만성신부전증으로 힘겹게 투병 중이었다. 그래서였다. 그의 환대에도, 그를 대하는 마음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후원하는 기쁨으로 우리도 살아갑니다”

뜻밖에 집 앞까지 마중 나온 이정세 회원(45세)의 표정이 아이처럼 밝았다. 덕분에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그의 건강과 경제적 여건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그의 투병생활은 이미 18년째로 접어들고 있었고, 부인(최영애, 42세) 역시 17년째 같은 병과 싸우고 있었다. 국가에서 생계비와 의료비를 지원받아 생활하고 있는 이들 부부 일상의 대부분은 투석 시간에 할애되고 있었다. 이정세 씨는 일주일에 4일 병원에서 혈액투석을, 부인은 집에서 하루 4회씩 복막투석을 받아야 한다. 정말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의 표정은 밝았고, 후원활동은 왕성했다. 벌써 6년차 후원회원이라는 이정세 씨는 참여연대 외에도 환경단체를 비롯해 사회복지시설에도 정기 후원금을 내고 있었다. 어려운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수시 후원은 빼고도 말이다.

“남을 돕고 후원하다 보면 삶의 용기를 갖게 돼요. 다른 사람들에겐 보잘 것 없는 액수일수 있지만, 우리 형편엔 적지 않은 돈이거든요. 그 돈을 후원하면서 느끼는 기쁨으로 우리 부부도 힘을 얻지요.”

참여연대를 후원하게 된 계기도 그랬다. 그는 자신이 아프기 때문에 세상사 하나하나가 더 절실하게 다가왔을지 모른다고 했다. 지긋지긋해 보였던 세상도 절박한 만큼 더 소중하게 다가오는 법이므로.

“제가 아프니까 다른 사람의 아픔과 어려움이 더 눈에 띄는 거 같아요. 얼마나 더 살지 모르지만 그럴수록 세상이 더 걱정되기도 하고. 무임승차하긴 싫었어요. 시민단체들이 이룬 성과를 거저먹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어요.”

한 번 투석할 때마다 부부는 5킬로그램씩 살이 빠지고 있었다. 만성신부전증은 붓고 빠지기의 반복이라 했다. 요요현상으로 피부 주름이 많이 생겨 겉늙는 편이라 이 병을 앓는 사람들은 나이 오십을 넘으면 할아버지 소릴 듣는다며, 그는 웃었다. 그래도 병원에서 투석 받는 일이 고통인 동시에 기쁨이라고도 했다. 신장이 기능을 멈춰 스스로 몸의 독소를 배출하지 못해 기계의 힘을 빌어야 하는 게 고통스럽지만,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독의 분량만큼 몸은 편안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의 독소를 없애고 투명하게 만드는 시민단체의 공익활동에 그가 남다른 관심을 갖는 까닭도 같은 이유에서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도 그렇지, 한 달에 80여만 원이 채 못 되는 돈으로 치료비에 생활비, 거기에 단체 후원금까지 감당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절약하면서 생활하면 후원할 수 있어요. 치료비와 후원비를 먼저 떼어 놓고 그 나머지로 생활해요. 가능해요. 생활비를 우선순위로 놓으면 쉽지 않겠지만….”

그의 신조는 뭐든 “천천히 하자”다. 천천히 생각하고, 천천히 행동하자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즉흥적인 판단으로 움직이고, 사회 또한 그렇다는 생각에서다. 실수나 사실 왜곡도 서두르는 태도 때문에 생긴다고 그는 진단한다.

“횡단보도 걷다 보면 안 뛰는 사람이 없어요. 대부분 다 뜁니다. 하지만 전 절대 뛰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 생각엔 횡단보도 하나 천천히 걷는 게 뭐 대수냐고 할지 모르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건 쉽지 않잖아요. 뭔가를 실천한다는 건 이런 사소한 일상과 다 연관돼 있다고 생각해요.”

한 달 수입 80만 원=후원금+치료비+생활비

부부는 둘 다 강화가 고향이다. 젊은 시절 지역 봉사활동 동아리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다. 사귀는 도중 서로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두 사람은 결혼했다. 결혼 12년차인 부부의 변함없는 사랑은 병을 이겨내는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 부부가 함께 아파서 짊어져야 할 고통도 두 배로 커졌지만, 사랑도 두 배로 커졌기에 넉넉히 이겨내고 있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잉꼬부부란다.

“우린 사랑을 표현하며 살아요. 집에서는 물론이고 야외에서도 가벼운 애정표현은 쉽게 하는 편이죠. 동네에서도 손잡고 다녀서 어르신들이 부담스러워 하시기도 하고요. 투석할 때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은 처와 둘이서 이야기하며 보냅니다. 병원에서 있었던 일, 집에서 있었던 일 등등이요. 우린 서로 사랑하니까, 몸은 아파도 참 좋아요.”

이정세 씨의 새해소망은 부인의 신장이식이다.

“꼭 수술시켜 주고 싶어요. 자포자기하는 건 아니지만, 근본적인 치료에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니까요. 이식하면 적어도 투석은 안 해도 되거든요. 가냘픈 아내가 몸에 2000cc나 되는 약을 넣고 생활하는 걸 더 이상 못 보겠어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점점 야위어 가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요.”

신장이식이 쉬운 일은 아니다. 신장 제공자가 나와야 하고, 이식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그들처럼 공공부조 대상자인 경우에는 심장재단에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고 한다. “그런 기회라도 있어 다행”이라 했더니, “아직까지 신청도 안 해 봤다”는 답이 돌아왔다.

“처음엔 투석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어요. 당시는 혈액투석에 의료급여가 지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거든요. 투석 혜택을 입는다는 것만도 감사했죠. 그러니까 지금까지 이식은 생각도 못해 보고 시간이 이렇게 흘러 버린 거죠.”

부인 최영애 씨의 말이다. 부인 신장이식을 고민하면서 이정세 씨는 요즘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복지단체에 장기이식 신청서를 내려면 신청을 위한 검사부터 받아야 한다. 문제는 약 40만 원 가량의 검사비용이다. 무조건 후원금부터 떼놓고 한 달을 시작하는 두 사람은 그 돈을 정작 본인들 수술에 필요한 검사비로 쓰는 데는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힘들게 나누는 만큼, 그 나눔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아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삶을 깎는 나눔이 이 사회 이곳저곳에 골고루 퍼지길 간절히 바란다.

“눈이 안 보이면 오히려 멀리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눈 감고 있으면 서울도 그려지니까요. 허허허”

합병증으로 이정세 씨는 시야가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머지않아 빛을 잃는다. 그의 웃음 한 자락이 허허로웠다.

정지인 참여연대 시민참여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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