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3월 2005-03-01   746

[삶의 길목에서] 시골에서 겨울나기

* 앞으로 삶의 길목에서를 연재해 주실 고진하 님은 서울 근교 시골에서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생활한다. 도시생활을 접고 시골로 간지 5년째. 아직 익숙지 않은 생활이지만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시도하는 새내기 시골 아줌마의 일상을 전해 줄 예정이다.

‘봄바람은 천지만물에 차별 없이 불어오지만, 기다린 가지만이 싹을 틔운다.’

이와 비슷한 구절을 얼마 전 소설책에서 읽었다. 봄을 기다리는 이 시골 아낙의 마음도 가지의 기다림만큼이나 간절하다. 여름엔 냉방병, 겨울에는 외투 속에 반소매 옷 입고 외출하는 도시 사람들은 이 마음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의 지난 겨울은 지독히 추웠다. 우리 집 안방의 실내온도를 알려주는 보일러 표시창에는 9에서 12까지의 숫자가 내내 떠있었다. 몸과 마음이 한가로운 겨울, 난방비는 시골 사람들의 주름살을 깊게 만드는 시름거리다.

재작년 가을, 집을 새로 지어 이사온 나는 난방수단으로 심야전기를 염두에 두었지만 설치비가 700만 원이나 든다는 말에 기름보일러를 설치했다. 첫겨울을 새 집에서 나보니 34평 실내를 섭씨 18도 정도로 유지하는데 보일러용 등유가 세 드럼(한 드럼 200L) 가까이 들었다. 그 때 한 드럼에 11∼12만 원이던 기름 값이 지난 겨울에는 14∼15만 원으로 치솟았다.

이런 실정인지라 겨울이 깊어지면서 가계부에는 도저히 메우지 못할 구멍이 휑하니 뚫리고 만다.

연탄 보일러로 바꿀까 고민도 해보았으나 2000장이 넘는 연탄을 어디에 쌓아두며, 연탄재는 어쩌나 골치가 아파 포기하고 말았다. 도시 가스가 들어온다는 반가운 소식은 없다. 가스보일러도 기름보일러와 비슷하게 비용이 든다. 그래서 작전을 바꿨다.

어차피 여간 때서는 따뜻하게 지내기 힘들 테니 차라리 덜 때자. 미국의 추악한 전쟁도 다 그놈의 석유 때문인데…. 한 달에 한 드럼만 때고 버티는 작전으로 들어갔다. 두툼한 내복과 겹겹이 껴입은 겉옷으로도 모자라 외투, 무릎 담요, 털 슬리퍼가 필수품이었다. 책 볼 때와 컴퓨터 쓸 때는 손가락이 곱아서 장갑을 끼어야 했다. 잘 때는 털 양말까지 갖춰 신고 솜이불이며 오리털 이불을 꺼내 머리까지 올려 쓰고 잠을 청했다. 도시에서 찾아오겠다는 손님들은 따뜻한 봄에 보자고 거절했다.

가족 친지들은 아이들도 있는데 너무 춥게 지내는 것 아니냐고 걱정들이 대단했다. 염려 덕분인지 다행히 아이들은 독감예방주사도 맞지 않았는데 가벼운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잘 버텨주고 있다. 감기 바이러스도 너무 추운 곳에서는 활동성이 떨어지는가 보다. 그러나 나는 어려서 걸렸던 동상이 기어코 재발하고 말았다. 난방비 아낀 것 고스란히 치료비로 들어가게 생겼다.

얼마 전 우연히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서 이러니 시골에 살기 힘들다는 말 나오지 하는 생각과 함께 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40%가 등유로 난방을 하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이 소득이 낮은 서민층. 등유 사용 가정의 겨울철 월평균 난방비는 23만원인 데 비해 도시 가스를 사용하는 비슷한 크기의 공동주택은 13만원밖에 안 된다. 등유 값 부담이 큰 것은 등유가 수송용 연료인 경유로 전용되는 것을 막으려고 세금을 경유세금에 연동해서 올리고 있기 때문인데, 실제로 등유의 세금은 220원인데 비해 도시 가스는 49원이라는 것이다.

높은 분들이야 난방비에 등골 빠지는 서민들 속사정 알 리 없겠지만, 지금이라도 등유 세금이 획기적으로 줄어 올 겨울에는 시골 사람들도 난방비 걱정 덜 하면서 등 따신 한철 지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나마 한 가닥 위안이 있다면 매서운 겨울 뒤에는 어김없이 따스한 봄이 돌아온다는 변치 않는 자연의 질서다.

고진하 (참여사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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