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4월 2005-04-01   1129

호주제 폐지, 여성운동의 또 다른 시작

호주제 폐지만큼 여성운동에서 험난한 역정을 겪은 운동이 또 있을까. 지난 반세기의 기나긴 세월은 물론이고, 호주제 ‘사수론자’들의 저항과 반격은 만만치 않았다. 민법 개정안 통과 직후 그들은 ‘국가보안법 사수정신으로 가정을 지켜온 호주제를 사수하자’는 신문광고를 통해 호주제의 죽음에 분노했다. 가부장제의 강력한 알리바이가 소멸된 것에 대한 경악과 애도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일각에선 호주제마저 없어졌으니 ‘여성운동이 더 할 일이 남아 있느냐’고들 한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가부장적 위계의 든든한 후견인이 되어 준 호주제가 폐지됐으니 그럴만 하다고 해야 할까.

관습과 일상은 법보다 힘이 세다

호주제 폐지는 여성운동의 금메달 감이다. 어느 사안보다 길고도 지난한 수고가 요구됐던 만큼 여성운동사의 큰 획을 긋는 사건이다. 그러나 한편 이제서야 호주제를 소멸시킬 수밖에 없었던 우리 사회의 성평등에 대한 ‘나태한’ 감수성이 참으로 놀라울 뿐이다. 십년전 세계여성대회에서는 성평등은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정의’의 전제이자 필수조건임을 선언했다. 국제회의에서 다른 나라 참석자들에게 호주제가 무엇인지 이해시키기는 언제나 쉽지 않았는데, 그 때마다 무엇이 남성을 합법적인 대표로 하는 가부장적 가족관계를 그토록 오랫동안 유지시켜왔는가를 새삼 되물었다.

호주제는 특정 시기에 만들어진 하나의 ‘발명품’이다. 한 교수의 표현대로 ‘사적 국가보안법’인 이 발명품은 가족관계를 넘어서 오랫동안 정치, 사회, 종교 모든 분야에 걸쳐 제도로, 관습과 이데올로기로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을 지배하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남성중심의 혈연 가족주의와 혈연적 민족주의는 서로를 보듬고, 유지시켜준 배타적인 쌍생아의 모습이다.

호주제를 폐지한 지금, 여성운동은 우리의 일상에 깊이 각인된 성별 위계적인 혈연 가족주의의 뿌리를 어떻게 흔들 것인가를 생각한다. 정말이지 일상은 너무나도 견고하다. 이 점에서 호주제 폐지는 여성운동의 또 다른 시작을 요청한다. 그 뿌리 흔들기의 시작은 여성운동에게 법의 공정한 적용을 둘러싼, 다시 말해 남성중심적인 법 운영과의 싸움이 될 것이다.

때론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는 ‘성폭력 신고의 피해’는 성폭력 피해의 고통을 능가하는 현실은 이같은 맥락이다. 법은 사회적 규범과 관계의 ‘최소조건’을 규정하는 반면, ‘운동’은 인간의 모든 삶을 최대조건으로 만들기 위한 멈출 수 없는 실천이다. 이 실천은 법의 올바른 해석과 운용은 물론 관습적 일상의 재구성을 포함한다. 관습은 법보다 훨씬 힘이 세다. ‘법’이 ‘현실’로 작동하는 문제는 일상속에 관습화된 젠더 권력관계를 반영한다. 남녀고용평등법 제정(1987년)으로 고용상의 성평등이 보장되지 않으며, 가정폭력방지법(1999년) 제정으로 가정폭력이 근절되지 않았다. 출산율을 올려야 한다고 아우성 치는 한편, 여성단체 상담창구에는 임신, 출산으로 인한 지방발령과 해고를 호소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상담은 줄지 않았다. 여성부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중 절반을 훨씬 넘는 사람들이 가정폭력방지법이 가정내 폭력을 방지하는데 기여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미국 여성학자인 사라 에반스의 말처럼 ‘여성은 모든 분야에서 가시적 존재가 되었으나 평등은 교묘하게 왜곡되어 성취되지 않았다”. 법과 제도의 변화는 운동의 완료형 목표가 아니라 삶의 조건을 바꾸는 하나의 ‘수단’이자 ‘조건’일 뿐이다. 관습, 일상과 사람들간의 위계적 관계를 꿈꾸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제도화를 넘어 : 여성운동의 ‘파도’만들기

지난 20여년간 여성운동은 ‘젠더의 제도화’에 주력했다. 남성과는 다른 여성들의 삶의 경험을 드러내면서, 남성의 관점을 ‘보편과 중립’으로 전제한 법과 제도에 질문을 던지고 바꾸어냈다. 여성운동은 ‘젠더의 제도화’ 과정에서 국가와는 갈등, 때론 대화와 협상을 통해 유연하고 전략적인 지형을 주도했다. 우리나라처럼 여성운동이 법과 제도의 변화를 만드는 주도적 위치를 점한 경우도 흔치 않다.

민법개정 운동의 경우는 유독 시민시회내 저항 집단과의 싸움에 더욱 많은 힘을 쏟아부어야 했다. 많은 성공적인 법제도화 운동은 여성운동과 전문가들의 열정으로 가능했다. 그러나 운동의 과정에 일반여성들은 얼마나 참여하고 지지했으며, 그들의 삶은 얼마나 변화하였는가. 여성들은 자신의 일상을 스스로 바꿀 수 있는 힘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개개인의 삶의 변화를 여성운동가와 전문가들이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가족개념의 재구성 및 새로운 신분등록제를 둘러싼 논쟁, 부계 성씨 변경문제 등 여성운동은 새로운 도전을 목전에 두고 있다. 법의 합리화를 넘어서 생활과 의식세계의 성별성 및 차이를 위계화 차별화하는 교묘한 관습과 관행을 바꿀 수 있는 운동을, 많은 여성들의 지지와 참여를 높여가는 운동방식을 깊이 고민해야할 때이다.

여성운동의 대중화는 이들과 ‘함께’ 일상속에서 의제를 만들고 조직하고 실천하는 속에서 가능하다. 여성들은 자신의 변화와 실천에 스스로 이름과 의미를 붙여나가는 과정 속에서 변화의 주도성을 갖게 된다. 자기주도성을 지닐 때 여성들은 자기 삶으로부터 세상을 읽어내면서 일상의 문제는 개인의 영역을 넘어 전체 사회와 연속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이를 통해 개인적인 것을 ‘정치화’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스스로 참여하고 결정하는 모든 과정에서 자신과 사회가 동시에 변화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여성 자신들이 세상을 바꾸는 행위자임을 확인하는 것이야말로 운동의 대중화 과정이자 그 결과이다.

제도는 인간의 삶을 규정하지만, 운동은 제도를 넘어선 다양한 실천들로 기존의 제도를 상대화시키면서 부단히 새로운 변화를 요청하는 것이다. 변화를 가져오는 지점은 제도 밖에서 ‘다른 하나들’의 삶과 운동방식을 만들어내는 상상력과 실천일 것이다. 여기서 ‘다른 하나들’은 ‘길들여진 것’을 넘어서 ‘여러 개의 하나들’, 다양한 중심들을 만들어 내는 삶 속의 실천으로 만들어진다.

다른 운동과는 달리 여성운동을 지칭하는 표현은 ‘물결’(wave)이다. 파도를 뜻하는 이 단어는 ‘요동치다’, ‘굽이치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파도는 수많은 작은 물방울들이 동시에 움직일 때 만들어진다. 여성운동을 파도 버전으로 정의한다면 독립적 인간인 각각의 여성 개인들이 자신의 선 모든 자리에서, 매일의 삶 속에서 제도, 전통과 관습의 이름으로 ‘길들여진 것’에 맞서서 크고 작은 물결을 만들어내는 힘을 갖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맞설 수 있는 파도를 만드는 힘의 근원은 궁극적으로는 국가나 제도로부터가 아니라 여성 자신들일 것이다. 호주제 폐지 이후 여성운동은 이러한 수많은 파도를 굽이치게 만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무엇인지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윤정숙 전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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