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5월 2005-05-01   851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기구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기구, 이번에는 제대로 될까?


“고위공직자 비리 특별수사부를 설치하라! 고위공직자 비리를 완전히 척결하기 위해서는 강력하고 독립적인 사정기관이 요구된다. 특별수사부를 구성하고 특별검사와 특별수사관을 두어 독립적이고 엄정한 사정활동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냐, 공직부패수사처냐, 상설특별검사제냐를 두고 뜨거운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2005년 4월의 성명서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1998년 7월 22일 참여연대가 다른 시민단체와 함께 발표한 성명서의 일부분이다.

10년 전 이야기 아직도 반복해야 하나

권력층을 비롯해 고위공직자의 비리에 대한 사정기관을 두자는 참여연대의 일관된 주장은 그보다 2년을 더 거슬러 올라간다. 참여연대는 1996년 11월 부패방지법안을 입법 청원했다. 청원안에서 참여연대는 이렇게 주장했다.

“부패방지법(안)에서는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를 구성하고 여기에 특별검사와 특별수사관을 두어 독립적이고 엄정한 사정활동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종래 특별검사제를 요구해 온 대다수 국민의 여망을 부패추방에서만이라도 반영하는 것임과 동시에 부패추방에 획기적인 전환을 마련하는 일이 될 것이다.”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선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기구

그동안 수많은 권력형 비리 및 고위공직자 부패사건과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그 때마다 강력한 부패방지 대책과 신뢰받지 못하는 검찰을 대신할 상설특별검사제나 수사기구의 설치 요구가 빗발쳤다. 하지만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은 권한을 나눠 가지는 것에 강력히 반발했다. 권력을 쥔 정치세력은 자신들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는 기구에 대해 생리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였다. 야당 또한 집권 이후 자신들에게 돌아올 부메랑이 될까 걱정하여 독립적 수사기구 설치를 주저했다.

그 결과 참여연대가 1996년부터 주장했던 부패방지법의 주요 내용 중에 공직자 윤리규정, 공익제보자 보호, 돈 세탁 방지 등은 2001년 7월 법제화되었지만(부족한 점이 많아 지금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독립적 수사기구 설치는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독립적 수사기구가 없었던 그 동안에도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 관련 사건의 일부는 검찰이 아닌 특별검사의 손에 처리되었다.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 특별검사, 옷 로비 사건 특별검사, 노무현 대통령 측근 비리 사건 특별검사, 대북 송금 사건 특별검사 등이다. 최근에는 철도공사 유전개발사업에 대한 특별검사 임명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특별검사를 임명할 것인지를 두고 매번 국회에서 정치 논쟁이 불거졌고 결국은 정치적 타협이나 여론에 의한 굴복을 거쳐 특별검사가 임명되었다. 특별검사들이 제대로 수사를 했느냐는 차치하고 수사 시작까지의 소모적 논쟁만으로도 국회가 마비될 정도였다. 이 때문에 참여연대는 상설적 수사기구의 필요성을 주장했던 것이다.

잘 차렸지만 먹을 게 없는 3당 법안

2002년 7월 당시 민주당의 노무현 대통령 후보는 국가정보원장 등 권력기관장에 대한 인사청문회 실시와 함께 고위공직자 비리를 전담하는 비리조사기구 신설을 공약사항으로 발표하였다. 하지만 16대 국회가 끝난 지난해 4월까지도 그 공약은 지켜지지 않아 참여연대는 약속이행을 촉구하기도 했다.

다행히 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도 별도의 수사기구 설치를 공약으로 내놓음으로써 법제화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16대 국회 때인 2002년 7월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설치 법안을 국회에 입법 청원한 참여연대는 17대 국회가 개원한 2004년 10월 다시 법안을 국회에 입법 청원했다.

정부는 별도의 수사기구를 만든다고 하면서 그 기구를 대통령 직속인 부패방지위원회 산하에 설치하고 기소권도 주지 않는 내용의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한나라당은 정부 법안이 과거 대통령 직속 사정기관인 사직동팀의 재판에 불과해 정치적 중립성이 의문시된다고 비판하면서도 정작 별도의 수사기구 설치라는 총선공약은 팽개쳤다.

한나라당이 4월 초에 내놓은 법안은 검찰 수사가 미덥지 않다고 정치권이 판단하면 국회가 특별검사 임명을 대통령에게 요청한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이름만 상설특검법이지 실제 내용은 한시적 특별검사제와 차이가 전혀 없다. 민주노동당도 3월말 법안을 제출했는데, 현재의 방식과 크게 다른 게 없다는 것과 검찰이 잘 다룰 수 있는 사건도 무조건 특별검사를 임명해야 하는 문제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의 주장은 별도의 수사기구 설치 논의 맥락에서 벗어나 잘못 흘러간 셈이다. 그나마 상설적 수사기구 운영이라는 애초 취지에 부합하는 것은 정부안이다. 하지만 정부안에도 참여연대가 수용할 수 없는 결정적인 흠이 있다.

우선, 별도의 수사기구에 기소권을 주지 않는 점을 들 수 있다. 왜 수사기구에 특별검사를 배치하여 법원에 피의자를 직접 기소할 수 있도록 하지 않는가. 검사는 수사관의 수사행위를 지휘할 수 있는 수사지휘권과 수사결과에 대한 처리권에 해당하는 기소권을 가지고 있다. 고위공직자 수사기구가 수사지휘권과 기소권을 갖지 못한다면, 이 기구는 검찰의 지휘 통제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정부 법안의 또 다른 핵심 문제는 수사기구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정부는 대통령 소속 기구로 공직부패수사처를 설치하자고 한다. 검찰이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 때문에 별도의 수사기구 설치 주장이 나온 것인데, 정부 주장대로라면 차라리 검찰에게 열심히 하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정부안에 대해 열린우리당 일부에는 대통령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기구를 만들자는 주장을 받아들이지는 못하더라도 기소권은 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가진 이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의 견해는 전혀 힘을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이 정치적 독립성을 문제삼아 정부안에 반대하면서 타협하기 어려운 별도 법안을 제출한 상황이라, 불완전하고 실효성에 한계가 있는 세 법안 중 하나라도 통과가 되기는 할 것인지마저 불확실한 상태이다. 정쟁만 치열하게 벌이다 제대로 된 고위공직자비리수사기구 설치까지 또다시 강산이 바뀌는 세월을 하냥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박근용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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