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7월 2005-07-01   932

“문화운동은 문화사회로 가는 걸림돌을 제거하는 사회운동”

문화연대 지금종 사무총장

문화 아닌 게 없다

녹음이 짙어간다. 어느덧 성하(盛夏). 벌써부터 더위에 허덕인다. 피서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참여사회』 편집위원회에서는 여름 휴가를 앞둔 독자들에게 잘 놀고 잘 쉬는 방법을 조언해 줄 사람을 만나 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찾아낸 인물, 지금종 문화연대 사무총장.

‘삶을 자율적으로 꾸려나갈 수단과 조건이 갖추어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에 착취나 억압, 파괴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사회’를 꿈꾸며 창립한 문화연대의 최고 책임자에게 겨우 여름 휴가 잘 보내는 법을 알려 달라고 조른 무모함이 찜찜한 바 없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별 불쾌감 없이, 오히려 할 말이 무척 많다는 듯 흔쾌하게 응해 주었다.

고상하게 ‘문화’가 무엇인지부터 물었다. 다짜고짜 ‘노는 법’부터 물으려니 적잖이 켕겼기 때문이다. 그의 답을 한 마디로 옮기면 ‘그 때 그 때 달라요’다. 문화에 대한 정의가 무려 169개에 이른다고 그는 말했다. 뭐가 그렇게 많으냐 싶었지만, 누군가가 큰 맘 먹고 진짜로 세어본 거라니 믿을 수밖에. 그만큼 문화는 다의적인 개념이란다. 그는 문화에 대한 몇 가지 대표적인 오해를 지적했다.

“문화를 공연, 미술, 음악, 전시 등의 예술행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1980년대 사회운동이 그랬듯 투쟁의 도구로 문화를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먹고 살 만큼 돼야 문화생활도 가능하다는 생각 역시 잘못된 것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고전적인 방식으로 문화를 정의하자면 삶의 방식, 가치나 신념 체계, 혹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 뭐 그런 거지요. 법 질서 도덕 관습 등의 규범문화, 미술이나 음악 등으로 표현되는 표출문화, 학문이나 과학 같은 인지문화 등으로 구분해 보면 문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요. 따지고 보면 문화가 아닌 게 없어요.”

답변이 ‘정말’진지했다. 사회문화 강의를 듣는 기분이었다. 그 진지함에 자세를 바로 갖추지 않을 수 없었다.

“문화연대는 그렇게 다의적인 문화 개념을 어떻게 운동으로 승화시키고 있는지요?”

주변부 삶과 무관한 문화운동 가치 없어

“저는 개인적으로 사회운동으로서의 위상을 갖는 문화운동이 아니라면 이 일을 안 할 거예요. 문화, 문화운동이라는 게 주변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무관해서는 존재 가치가 없는 거니까요. 문화란 삶을 관통하는 건데, 문화적으로 살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조건들이 있어요. 거칠게 말해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지 않는 사회, 호혜 상생의 분위기가 넘치는 사회, 공공성이 높은 사회를 문화사회라고 한다면, 문화사회가 되기 위해 어떤 조건들이 필요한지를 찾아내어야죠. 그래서 비정규직 문제가 문화사회로 가는데 큰 걸림돌이라고 계속 발언하는 거예요. 소수자, 교육, 언론, 문화공간, 도시, 문화유산 관련 문제들도 다 마찬가지예요. 한국사회에서 문화적으로 잘못하고 있는 것, 안 하고 있는 것,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것, 그런 것들에 문화연대가 개입하는 거죠. 철저하게 사회운동으로서 문화운동을 보고 있는 겁니다.”

그는 경기도 성남 사람이다. ‘중앙’이 아닌 ‘변방’ 출신이다. 서울 중심의 사고에 젖은 나 같은 사람을 위해 그는 나타난 것처럼 보인다. 그가 서울에서 활동한 시기가 있긴 하다.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따뜻한 햇볕 한 줌 될 수 있다면’이라는 노래로 우리에게 따스한 서정을 선사했던 <노래마을>을 기억하는지? 그는 <노래마을>이 한창 사랑을 받던 90년대 초반 <노래마을> 매니저로 잠시 서울에 둥지를 틀었다. 그 때는 아무나 노래패 매니저를 할 수 있겠거니 하고 짐작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원래 그 바닥에서 좀 ‘놀았던’ 그다.

“제가 어렸을 때 디제이를 했어요. 당시 9급 공무원 월급이 10만 원 정도였는데, 제가 30만 원씩 벌었으니까, 잘 나가는 디제이였죠.”

돈 잘 버는 디제이가 어쩌다 운동권이 됐을까? 역시나, 친구 잘못(?) 만난 탓이다. 운동권 친구 덕택에 의식화 과정을 겪던 중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을 읽고 ‘뻑 간’것이다. 그는 이 때를 ‘양질전환의 법칙’이 실현된 ‘결정적 순간’으로 회고한다.

“다 때려치우고 공장에 들어갔지요. 사실 디제이가 노는 직업이잖아요? 혹시 공장에서 일해 보셨어요? 훈련시킨다는 명목으로 처음 현장에 보내는 활동가는 노동강도가 제일 센 공장에 보내거든요. 밤에 집에 돌아가면 손마디가 퉁퉁 붓고 몸은 얼마나 쑤시던지. 그 몸으로 학습하고 또 새벽에 일어나서 공장 가고, 그런 생활의 반복이었어요. 그러다가 위장취업 사실이 발각돼서 대공과에 끌려갔고, 그 뒤론 블랙리스트에 올라 공장 취업이 안됐어요.”

어쩔 수 없이 현장 바깥으로 밀려난 그는 지하신문을 제작하다가 성남청년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지역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평화민주통일연구회 등 재야 조직에서 활동하다가 87년 6월 항쟁 때는 시민대표로까지 나섰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방황의 시간을 피할 수 없었다. 잡지사 기자, 출판사 편집장 등을 전전했다. 문화연대 초창기 주춧돌 역할을 하던 심광현 선생과의 만남은 그에게 삶의 전환점을 제공했다. 지역에서 문화운동을 하다 문화연대의 핵심활동가로 이렇게 우리 앞에 앉아 있게 된 것이다.

내 할 일은 차이를 가로지르고 엮는 것

그를 새벽녘 포장마차에서 만났다는 사람들을 여럿 봤다.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하는 게 좋단다. ‘가로지르고 엮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논조의 차이가 있는 좌파언론 <참세상>과 <한겨레신문> 제2창간위원회 발기인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노선과 사상은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하지만 사상이란 게 다양한 흐름 속에서 각기 제 몫이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지요. 필요하다면 논쟁을 해야겠지만, 지금은 차이에만 너무 집착하는 것 같아요. 명확한 전망을 가진 이론을 만들어내고, 그 이론이 현실적인 운동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힘을 모으는 게 더 중요할 거 같아요.”

안타깝게도 나는 그를 술자리에서 본 적이 없다. 주로 토론회장에서 만난다. 주제에 따라 하는 말에 차이가 있지만, 자본에 대한 그의 견제와 비판은 한결같다.

“참여정부의 선언처럼 이미 권력은 자본으로 넘어갔어요. 욕망도 자본에 의해 조직되지요.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대중이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갖고 반응을 보이는지 알잖아요. 그렇지만 그런 건 진정한 대중의 생각이 아니에요. 자본의 시스템이 만들어낸 것일 뿐입니다.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얘기하고 있지만, 지금처럼 획일화된 사회는 없어요. 옷 같은 것도 얼마나 획일적이예요. 여자들 옷 보면 큰 건 잘 안 만들잖아요. 굉장히 마른 몸에 맞을 만한 옷만 만들고, 또 거기에 사람들이 맞춰 가잖아요. 이미 있는 틀에 자기 몸을 맞추는 게 우리 삶이에요.”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세상은 자본이 외모를 만들고, 외모가 자본이 되는 요지경이다.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늘씬하지 않은 몸에 걸칠 옷은 눈을 씻어도 찾을 수 없는 옷가게를 고개를 늘어뜨린 채 돌아나오는가.

이러한 획일화에 대한 대안으로 그는 문화의 공공성 회복을 강조한다. 사회경제적 지표는 나아지는 듯 하지만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고, 삶에 대한 만족도는 점점 떨어지는 위험사회에서 탈출하려면 모든 것을 자본의 손에 맡겨두어선 안 된다는 얘기다. 그게 바로 문화사회라는 것이다.

“임대 아파트도 이윤 추구나 불순한 정치의 결합으로 바라보니까 시멘트 덩어리만 지어 놓고 들어가 살라고 하게 되는 거지요. 분당 지역만 봐도 큰 평수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임대아파트 아이들을 거지 취급하거든요. 임대고, 작은 아파트라 하더라도 그런 것을 기준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문화가 형성되지 않도록 사회가 신경 써야 하는데 말입니다. 윤리적 환경 역시 생태, 안전, 미와 같은 가치들처럼 문화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지요. 사람도 신체와 감성, 지식 등을 조화롭게 갖춰야 비로소 전인성(全人性)을 획득할 수 있는 거잖아요.”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휴가는 이제 그만

휴가 잘 보내는 비결을 전수 받기 위해 마련한 자리가 너무 심각해져 버렸다. 너무 많이 먹고 산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 점심도 걸렀다는 그를 계속 붙잡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래도 인터뷰의 목적이 있기에 입을 뗐다. “문화적인 휴가법 좀….” 그가 대답했다.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정답은 없는데….” 너무 간단해서 스스로도 아쉬운지 한 마디 붙인다.

“소모적이지 않은, 나에게 정말 필요한 휴가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아야겠죠. 남들처럼 승용차 타고, 길에서 몇 시간씩 줄 서 가면서 길 막히는 것 참고 스트레스 받고, 도착해서 바가지 쓰고, 비싼 거 사 먹으면서 땀 뻘뻘 흘리고, 저녁 때 되면 고기 구워서 포식하고, 술 마시고, 그런 건 자기파괴적인 휴가라고 생각해요. 그것도 뭐, 정말 좋아한다면 해야 되겠죠. 그런데 그것만이 휴식의 전부는 아니고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라는 것을 꼭 얘기하고 싶어요.”

몇 년 동안 휴가 한번 제대로 못 가고, 기껏해야 찜질방에 누워 등 지지는 처지에 할 말이 있겠는가. 어쨌든 휴가라고 하면 반드시 어디를 가야 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보라, 전복적이고 전향적인 휴가를 설계해보라는 주문일 테다. 그의 주문대로 올 여름에는 집 둘레에 꽃을 심거나 이불이나 커튼을 빨아 너는 따위 밀린 집안 일을 흔쾌한 마음으로 해 보는 건 어떨까?

그보다도 올 여름엔 ‘문화휴가’한 번 즐겨보란 말을 그에게 꼭 해주고 싶다. 휴가법 배우러 만난 사람에게 “제발 휴가 좀 가라”는 말로 작별을 해야 하다니…. ‘대략 난감’이다.

박영선 참여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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