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7월 2005-07-01   1742

유럽엔 주민등록번호가 없다?

21세기는 고도의 정보사회이다. 정보사회의 핵심 연결고리인 개인정보는 정보 주체 스스로 적절하게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을 때에야 적절하게 보호되고 활용될 수 있다. 개인정보를 수집하거나 활용하고자 하는 정보수요자와 자신의 정보를 통제하려고 하는 정보공급자 사이의 적절한 긴장과 갈등은 정보사회에서 개인과 국가, 지방자치단체, 거대기업의 관계를 새로이 만드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관계 설정에 대한 요구는 헌법상에도 정당한 근거를 갖는다. 대한민국 헌법 제 10조의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기본권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는 규정, 제 17조의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가진다”가 그것이다. 눈을 멀리 돌리면 현재 산고를 겪고 있는 유럽헌법 제 7조의 “자기 자신에 대한 정보의 통제는 정보주체가 가져야 한다”라는 개인정보자기결정(통제)권도 빌어올 수 있다.

개인정보 보호는 민주주의와 직결

개인정보의 수집과 활용은 시대에 따라 중요성이 다르게 나타났다. 중세 사회는 종교 신자의 출생, 종교 수행, 사망에 있어 교회의 우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현재의 호적제도와 비슷한 통제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근대산업사회에서는 개인정보의 수집과 활용의 기술적 한계와 전파의 지역적 한계, 국가의 소극적인 역할 때문에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지만 헌법 제17조의 사생활보호권(privacy)은 여전히 여론의 뜨거운 감자였다. 현대사회는 정보통신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인한 개인정보의 집중화와 연동화(network), 국가의 적극적인 임무설정으로 인한 개인정보 활용의 필요성 증대에 직면하고 있다.

이처럼 개인정보의 중요성은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었을지언정 개인에 대한 전체의 우월성이 인정된 시기에는 항상 개인정보의 수집과 활용이 적극적으로 모색되고 증대되었다. 반대로 전체보다 개개인의 자율성을 강조하던 시기에는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활용하기보다 보호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주민등록번호 13자리는 최적의 개인정보의 집합물이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기업과 같은 정보수요자에게 주민등록번호는 다른 정보의 정확성을 높여주는 더 없이 좋은 연결고리가 된다. 반면에 개인은 약간의 편리를 제공받는 대가로 자신의 개인정보를 통제 당하는 객체로 전락할 위험이 높다. 이는 민주주의의 직접적인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 정신이 왕성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개인정보에 대한 보호 논의가 뜨거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개인정보에 대한 의식의 3극화 현상 즉, 희박한 가해자의식, 희박한 피해자의식, 희박한 권리의식을 뛰어 넘어야 활용에 치중되어 있는 현재의 개인정보보호정책이 민주주의와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필요성과 최소성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는 신원확인

단순한 확인 기능이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을 결정할 수도 있는 신원확인 번호체계가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는 없다. 앞으로도 생겨날 가능성은 미미하다. 자기와 다른 상대방을 완전히 지배하거나 복종시키고자 하는 제 2의 전체주의 국가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럴 것이다. 단순한 신분확인 도구로서 의료보험증이나 운전면허증, 학생증은 여러 방면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그런 것들이 우리의 주민등록번호를 대치하는 것이다. 신분확인을 가능케 하는 관련 증서들을 통합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도 있지만 법률의 엄격한 규정에 따라 예외를 최소화하면서 분산의 원칙을 지키고 있다. 여러 신분증에 들어있는 정보의 통합을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정보들은 영구적이지 않다. 정보 주체가 요구하면 증의 번호는 바뀔 수가 있는 것이다. 이는 개인에 대한 정보가 통합되면 개인이 통치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유럽 사회가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반면 우리의 주민등록번호는 효율적인 행정관리와 치안유지, 국가안보를 위한 영구적인 개인식별도구다. 효율성보다는 침해의 가능성이 더 도드라진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효율성과 필요성이 전체가 아닌 일부에게 해당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주민등록번호는 이제 정보주체에게 돌려줘야 한다. 문명국가에서는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13자리 숫자가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계속 유지돼야 한다는 발상은 위험하다. 보호를 완벽하게 하면 되는 게 아니냐는 소극적 태도 또한 정보사회에 걸맞지 않은 사고방식이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은 맹목적인 효율성을 추구하는 기본권이 결코 아니다.

임규철 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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