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7월 2005-07-01   973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는 13자리 숫자

주민등록번호 태동 배경과 문제점

주민등록법은 애초 “주민의 거주관계를 파악하고 상시로 인구의 동태를 명확히 하여 행정사무의 적정하고 간이한 처리를 도모함을 목적으로”(제정 주민등록법 제1조) 시행된 제도이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군사정권은 주민의 편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이 법을 만들었다. 이러한 사실은 “주민등록제도는 … 일반에 관한 입법목적 외에도 치안유지나 국가안보가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된 것”이라고 본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99헌마513, 2004헌마190 병합, 2005. 05. 26). 그러나 1962년 5월 주민등록법을 제정, 시행할 당시만 해도 ‘주민등록번호’는 존재하지 않았다. 주민등록번호는 1968년에 가서야 시행령을 통해 처음으로 등장한다.

13개의 숫자에 담긴 개인식별정보

주민등록법 제 1차 개정이 이루어진 1968년은 벽두부터 굵직한 사건이 잇달아 박정희 정권을 괴롭히던 해다. 1월 21일,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의 대남침투조가 청와대 코밑까지 진격해 정권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틀 뒤에는 원산 앞바다에서 첩보활동을 벌이던 미국의 푸에블로호가 나포되었다. 대북강경책을 요구하는 박정희의 희망과는 달리 미국은 베트남전의 차질을 우려해 북한과 타협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박정희의 장기독재가 가시화되면서 비판이 제기되고 있었다. 박 정권은 1967년 대통령 선거 이후 이러한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동백림 사건’을 조작하는 등 폭압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국내·외에서 닥쳐온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박정희 정권은 일련의 조치를 취하게 된다. 1968년, 향토예비군의 조직 및 무장 강화를 내용으로 하는 향토예비군설치법 개정안을 단독통과시켰다. 이 과정에서 주민등록법 제1차 개정안이 함께 통과되었다.

주민등록번호제도는 처음에 법이 아닌 시행령에 그 근거가 있었다. 주민등록법에는 제 5차 개정이 이루어진 1977년에야 처음으로 주민등록번호라는 말이 나온다. 당초 생년월일 및 일련번호로 이루어진 12자리의 주민등록번호는 1975년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지금과 같은 13자리로 바뀐다. 생년월일로 이루어진 앞의 6자리와 성별, 지역번호, 신고순위, 검증번호로 이루어진 뒤의 7자리로 조합이 이루어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개인식별번호는 여러 명에게 중복 부여되어서는 안 되고(유일독자성), 생존기간 동안 변하지 않아야 하며(영구성), 신원을 확인하는데 확정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전속성)을 조건으로 한다. 주민등록번호는 이 세 가지 조건을 가장 완벽하게 만족시키는 번호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개인식별번호가 모든 국민에게 주어짐으로써 국가는 행정이 편리해졌음은 물론 국민의 신상현황을 파악하기가 쉬워졌다.

주민등록번호만으로도 개인의 신원 정보를 단번에 알 수 있으므로 매우 민감한 개인정보로 분류된다. 한 사람에 관한 모든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만능열쇠 노릇을 하는 주민등록번호는 이름, 주소 같은 일반적인 개인정보보다 훨씬 강력하게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이와 거리가 멀다. 주민등록번호가 안 들어가는 곳이 없으며,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심화되는 개인정보유출 현상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부는 주민등록번호와 관련된 문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인정하면서도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마련하는데 소극적이다.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함으로써 얻는 행정편의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개인정보보호의 첫걸음은 주민등록번호 폐지

주민등록번호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은 잘 알려져 있다. 위험성에 대한 경고는 이미 수도 없이 있었고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한 개인정보 유출 및 신원도용 범죄가 속출하고 있다. 주민등록번호의 위험성을 심각하게 느끼게 된 사람들이 주민등록번호사용의 제한이나 폐지를 요구하고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04년 10월 정보인권 활동가들은 주민등록번호의 성별구분에는 국가에 의한 성 역할 규정 등의 문제점이 있다는 이유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주민등록번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인권침해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실제 주민등록번호는 번호만으로도 나이, 지역, 성별에 따른 차별행위를 불러올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주민등록번호의 사용 용도에 관해서도 문제 제기가 계속되고 있다. 2002년 발전노조 파업 당시 경찰이 수배전단에 수배자들의 주민등록번호를 그대로 올린 데 대해 지문날인 반대연대 등 사회인권단체들이 강력히 항의한 바 있다. 자기앞수표 뒷면에 주민등록번호를 이서하는 것에 대해서도 개선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들이 무분별하게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는 관행을 고치라는 주장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회원제 사이트를 운영하는 거의 대부분의 업체들이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인정보 유출이 심각한 지경이기 때문이다.

주민등록번호로 인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주민등록번호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실제로 전 국민에게 고유식별번호를 부여하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독일의 경우 국민공통의 개인식별번호를 부여하는 것을 입법과정 자체에서 금지했다. 폴란드는 개인식별번호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위헌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우리도 개인식별번호를 유지할 필요가 전혀 없다. 행정의 불편과 혼란이 초래될 것이라고 정부는 주장하지만 주민등록번호가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외국의 경우는 정부의 주장을 무색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주민등록번호제도 폐지가 어렵다면 사용용도의 제한만이라도 이뤄져야 한다. 우리와 비슷한 식별번호체계를 가지고 있는 스웨덴 등 일부 국가에서는 민간이 식별번호를 이용할 수 없도록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일부는 정부기관 간에도 주민등록번호를 식별코드로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와 같이 개인식별번호를 함부로 사용하는 나라가 없는 것이다. 최근 식별번호제도를 도입한 일본의 경우에는 번호를 개인이 선택할 수 있으며 언제든지 바꿀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권한 없는 사람들이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하는 것에 대한 처벌규정만 강화하고 있는 행정자치부의 안일한 대처는 주민등록번호의 악용을 근절하는 대안이 될 수 없다. 주민등록번호는 폐지되어야 한다. 국민의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첫걸음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윤현식 지문날인반대연대 활동가, 민노당 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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