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7월 2005-07-01   1341

주민등록번호가 당신을 위협한다

만약에 지금과 같은 정보화 사회에서 빅브라더가 존재한다면, 그는 자기 국민을 어떻게 감시하고 통제할까? 그는 개개인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싶어한다. 그는 국민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기록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얻어진 막대한 정보들이 쌓여가면서 그는 고민에 빠진다. 정보를 개인 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름으로 구분하는 것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사람들은 워낙 다양하고 자유분방해서 그들이 스스로 지은 이름 역시 제멋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번호를 매기기로 한다. 어떤 번호가 가장 효율적일까?

우선 번호가 겹치거나 빠지면 곤란하다. 한 사람도 빠뜨리지 않고 고유한 번호를 매겨야 한다. 이를 위해 태어날 때부터 번호를 주는 것이 좋겠다. 번호가 중간에 바뀌는 것은 번거롭고 헷갈리는 일이므로 사람이 죽을 때까지, 또는 죽은 뒤까지 하나의 번호를 유지하도록 하자. 무의미한 일련번호보다는 생일이나 성별, 출신지 등의 정보를 번호에 담아 신상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하면 더 좋을 것이다.

이제 이렇게 만든 멋진 번호를 잘 활용하는 일이 남았다. 국민들이 스스로 자기 번호를 널리 쓰도록 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국민의 모든 정보는 번호와 함께 기록되어야 하므로 관공서는 물론 기업과 학교, 병원, 상점 등 모든 곳에서 번호를 쓰도록 하자. 그리고 자기 번호를 증명하는 신분증을 늘 지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사람들은 곧 자기 번호를 달달 외울 정도로 번호에 익숙해지게 될 것이다. 이제 모든 정보는 번호와 함께 수집되고 저장될 것이며, 그러한 정보는 하나의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로 손쉽게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좀 있다. 빅브라더의 통제를 벗어나고 싶어 잔머리를 굴리는 사람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번호를 쓰지 않겠다고? 그렇다면, 번호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만들자. 신분증을 갖고 다니지 않겠다고? 경찰이 아무 때나 불심 검문을 해서 신분증을 확인하도록 하라. 다른 사람의 신분증을 갖고 다닌다고? 신분증에 사진을 넣어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지. 그런데 사진으로는 쉽게 식별하기 어려운데다가 신분증을 위조할 수도 있지 않은가?

사람들마다 고유하면서 남에게 줄 수도, 복제할 수도 없고 자신과 분리될 수도 없는 좋은 정보가 없을까? 그렇다. 지문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열 손가락 지문을 찍게 하고 그 중 오른손 엄지손가락 지문을 신분증에 올리면 되겠다. 그리고 지문인식기를 곳곳에 설치해 신분증 위조 여부를 검사하도록 하자. 지문으로 부족하다면 홍채나 정맥은 어떨까? DNA 정보도 수집하고, 그것으로도 안 되면 아예 전자 팔찌를 채울까? 아니면 제거할 수 없는 컴퓨터칩을 몸에 박아버릴까?

이야기를 듣는 동안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되면 제대로 본 것이다. 이것은 결코 상상이나 가정이 아니다. 정보화 사회의 빅브라더가 꿈꾸는 감시 통제 프로젝트, 그것은 이미 현실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말이다. 주민등록번호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현실에 한 명의 빅브라더는 없다. 그러나 주민등록번호가 진정 두려운 이유는 그것이 수많은 작은 빅브라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민등록번호를 가진 누구라도 작은 빅브라더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작은 빅브라더들의 감시 아래 놓일 수 있다는 것은 물론이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자.

A가 B의 주민등록번호를 알게 됐다. 어떻게 알았냐고? 반대로 물어봐야 한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냐고. 애써 눈감지 않는다면 어떻게 모를 수가 있는가? 당신이 하루에도 몇 번씩 주민등록번호와 신분증을 건네주는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다. 물론 모두가 손쉽게 주민등록번호와 신분증을 주고받기 때문에, 서로 믿고 사는 사회에 있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믿음은 허망하게 깨지기 쉽다.

언론매체가 누누이 얘기하지 않던가? 암거래되는 개인정보데이터베이스는 기본 수백만 명이다. 그 개인정보의 출처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이동통신사, 쇼핑몰, 보험사 등 이른바 믿을만한 곳이다. 동사무소 직원이 수백 명의 주민등록등본을 팔아먹은 사례도 여러 차례 있었다. 그 뿐인가? 인터넷 검색엔진을 조금만 두드리면 나오는 주민등록번호가 수천 건이다. 공공기관 홈페이지에서도 절반이 넘는 곳에서 주민등록번호가 발견되었다. 파일공유 서비스에는 수많은 이력서들이 통째로 떠다니고 있다. 중학생 66%가 어른의 주민등록번호를 알고 있다. 주민등록번호가 성인인지, 본인인지 확인하는데 필수적이라고? 말을 말자.

갑자기 A는 B가 궁금해졌다. 이유야 뭐 여러 가지 있을 수 있겠다. A는 범죄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다. A는 신분증을 위조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지도 않다. A가 경찰이나 공무원이어서 주민등록번호로 B의 신원정보를 조회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A는 대기업의 회원정보 관리자도 아니어서 회원데이터베이스를 뒤져볼 수도 없다. 물론 그럴 수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겠지만, 그 경우는 상상하기 괴로우니 넘어가자.

A는 주민등록번호만으로 B의 나이, 생일, 성별을 알아냈다. 이것만으로도 A는 B 이름으로 어떤 웹사이트에도 가입할 수 있다.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한 인터넷 실명제? 웃기는 일이다. 아무튼 이것은 주민등록번호가 그 자체로 개인정보를 노출시키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에는 주민등록번호가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A는 접근할 수 있는 권한만 있다면 어떤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에서도 주민등록번호만으로 정확히 B의 정보를 찾을 수 있다. B의 정보가 아예 없을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어지간하면 가입하지 않을 수 없는 회원 천만 명이 넘는 사이트가 수두룩하다.

A는 아무런 권한 없이도 누구나 아는 방법으로 B의 정보를 인터넷에서 알 수 있었다. A는 동창 찾기로 유명했던 한 사이트와 일촌 맺기로 유명한 한 사이트에서 나이와 성별로 B를 추적했다. 또한 거의 모든 사이트는 주민등록번호만 넣으면 사용자명을 알려주기 때문에 B가 주로 쓰는 사용자명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전자우편과 블로그 주소를 알아낼 수 있었다. 만약 A가 이 일에 재미를 붙여서 비밀번호를 알아내고자 한다면, 개인정보보호정책이 허술한 몇몇 사이트에서는 충분히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 뒤는? 당신이 알게 모르게 인터넷에 남긴 정보들을 생각해 보라. A가 작은 빅브라더가 되는 것은 오로지 과감함과 집요함, 그리고 믿기 힘든 도덕성에 달려 있다.

당신은 B가 아닌가? 그럼, 혹시 A? 당신, 주민등록번호와 함께 살 수 있겠는가?

지음 진보넷 정책국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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