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7월 2005-07-01   1508

농지법 개정을 통해 본 대한민국 농업

한국경제의 투기구조 부추기는 정부 개악안

세계화 국면의 농업에 대한 2가지 삼단논법

우리나라에서 농업이라는 매우 특별한 ‘산업 부문’은 21세기라는 아직 정의되지 않은 새로운 시대를 힘들게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국민들에게 하나의 상식이 되다시피 한 농업 관련 담론을 삼단논법으로 한 번 정리해보자.

1. 세계무역기구(WTO)가입과 함께 우리나라는 통상을 통해 이익을 본 나라이다.

2. 그래서 전면 개방을 함으로써 더 많은 통상을 통해 경제발전을 추구해야 한다.

3. 그러므로 농업이 줄면 줄수록 우리나라는 더 잘 살게 된다.

이러한 논리는 ‘수출 중심형 개방체계’에서 절대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수출이 지금까지 국민들을 먹여 살려 왔으며, 앞으로도 수출 증대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농업은 한낱 구시대의 산업일 뿐이다. 더 나아가 농업을 더 이상 ‘산업’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든다.

안 그래도 농업의 입지가 옹색한 상황인데, 여기에 농지에 대한 참여정부의 삼단논법이 가세하고 든다.

1. 어차피 농업은 힘들다.

2. 따라서 농업 대신 농민들의 소득보전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3. 그러므로 농민들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자산인 농지에 ‘도시자본’의 개입을 허용해야 한다.

이러한 두 번째 삼단논법에 의해 2003년 12월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2004년 7월 이헌재 전부총리에 의해 발표되고, 2004년 12월 국회에 상정된 농지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농지소유 전면허용이다. 농지은행에 농지를 맡기는 경우 농민이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농지법 개정안이 1987년 헌법에 신설된 121조항의 경자유전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은 아닌지, 이렇게 농지보유를 허용했을 때 토지투기를 제어할 정책 장치가 있는지는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대단히 슬픈 일이지만, 이것이 농업 정책에 도움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라는 논의는 눈에 잘 안 띠게 부속처럼 달려 있다.

농업의 규모화가 옳은가

우리나라 농업에는 너무 많은 모순들이 집중되어 있어서 이제는 일관성 있게 정리된 담론을 제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이지만, 정부는 이렇게 복잡한 문제점을 상당히 단순화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참여정부의 농업 기본 정책인 ‘6헥타르 정책’이 그것이다.

농지 면적이 1만 8,000평은 되어야 비로소 농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논리인데, 대부분의 농업정책은 여기에서부터 나온다. 지금 우리나라 농가의 평균 농지소유면적은 3,500평 정도다. 6헥타르로 규모화하는 게 옳다면 새만금도 옳고, 농지법도 옳을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자연 조건을 볼 때,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흩어져 있는 6헥타르의 농지를 가지고는 관료들이 꿈꾸는 대로 헬기로 농사짓는 미국식 대규모 농업도, 델몬트나 키갈식 기업 농업도 힘들다. 당초 이 계산의 바탕에는 화학농을 전제로 수입쌀의 단가에 맞추는 억지스런 숫자놀음이 끼어 있다.

지금 세계의 농업은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가고 있는데, 미국의 규모농, 유럽의 유기농, 제 3세계의 단작농이 그것이다. 여기에 부분적으로 단작농에서 생태농업으로 전환하려는 흐름이 있는데, 쿠바의 성공에 자극을 받아 생태농업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선택한 길은 제 3세계의 단작농과 미국의 규모농 사이에 어정쩡하게 걸쳐 있다.

그래서 규모화를 위한 농지법 개정은 농업의 회생을 이루기 전에 농민들의 반발부터 사고, 그보다 먼저 농지투기의 덫에 빠지게 된다. 지금으로서는 규모화가 농업만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투기를 조장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볼 수 있다.

농지제도연석회의의 출범과 향후 논의의 방향

2005년 4월 농지법의 국회 상정 문제가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100여 개의 시민단체가 농지제도연석회의라는 다소 급조된 연대체를 발족시켰다. 조금 거칠게 의미를 부여한다면, 농민단체와 환경단체를 포함한 시민단체가 농업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수 있는 테이블이 처음으로 열린 것이고, 농지투기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장이 마련된 것이다. 농업회생연대의 실패에 이어 새로운 농업 논의를 위한 장이 열렸다고도 평가할 수 있는데, 4월 농지법 개정 저지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

환경단체들과 농민단체 사이에는 아직은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고, 무엇보다도 농업이 사회적 사안이라는 담론을 형성하는데 힘겨워하는 것이 현실이다. 오랫동안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굳어진 ‘민족농업’담론으로 인해 농지보다 쌀 협상 문제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농민보다 도시거주자들을 회원으로 거느리고 있는 환경단체 역시 총체적 관점의 농업 담론을 쉽게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농업문제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라는 투박한 논리틀에서만 살펴볼 문제는 아니다. 농업안보, 국토생태, 부동산투기형 국민경제로의 재편, 농촌지역에서의 지방자치 등의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게다가 추곡수매 형식으로 지불하던 농업 보조금을 지금처럼 농촌지역의 ‘건설산업’보조금으로 전환해도 좋은 것인지 조세체계와 산업간 형평성 문제도 개입돼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놓고 농업의 진로를 찾는 일은 한국 사회에 관한 전면적 논의 속에서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최적의 농지제도를 찾느냐가 아니라 21세기에 농업이 이 사회에서 어떤 위치와 역할을 가져야 하는가다.

우석훈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경제학 박사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