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7월 2005-07-01   1047

청계천 복원 숨은 그림찾기

역사·문화와 환경·생태 복원이 빠져버린 청계천 복원사업

2002년 7월 1일 이명박 서울 시장의 취임과 함께 청계천 복원사업은 공식화됐다. 정확하게 1년 뒤 청계고가도로의 철거를 신호탄으로 청계천 복원사업은 시작됐다. 철거 행사가 열린 광교에는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시민들은 식민지와 개발독재의 시대를 지나며 파괴된 청계천이 되살아나기를 기원했다. 청계천과 함께 서울의 자연과 역사가 되살아나기를 기원했다. 그러나 청계천복원사업은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2005년 6월 1일 청계천 통수 시험식이 열렸다. 전기펌프를 이용해 한강에서 끌어올린 물을 청계천으로 내려보내는 시험식이다. 계획대로 퍼 올린 한강 물이 청계천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 시장은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했다’고 말했다. 이것이 그토록 감격할 일이었는가? 콘크리트 옹벽 사이로 억지로 퍼 올린 한강 물이 흐르게 되었다고 해서 청계천이 되살아난 것일까?

역사 복원이 아니라 파괴

청계천 복원사업은 청계로와 청계고가도로를 걷어내고 청계천을 되살리는 사업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청계천이 역사도시 서울을 대표하는 유적이라는 사실이다. 청계천은 본래 자연하천이었으나 배수로로 개수되었다. 조선 태조가 시작한 청계천의 개수작업은 350년의 세월이 흘러 영조가 완성한다. 영조는 청계천의 양쪽에 돌로 둑을 쌓고 둑 위에는 버드나무를 심어 둑을 강화하는 동시에 멋진 경관을 연출했다. 이 때부터 서울은 ‘유경(柳京)’, 곧 ‘버드나무 도시’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청계천 복원사업은 바로 이러한 역사유적 청계천을 되살리는 것이어야 했다.

취임 직후 이명박 시장은 전문가와 시민의 뜻을 받들어 청계천 복원사업을 하겠다며 조례를 만들어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를 꾸렸다. 이 위원회는 6개의 분과위원회로 이루어졌는데, 그 중에서 복원의 기준을 정하는 것은 역사문화분과였다. 역사문화분과는 영조가 완성한 청계천을 기준으로 청계천 복원사업이 이루어져야 하며, 그렇게 할 수 없는 일부 구간의 겉모습도 영조가 완성한 청계천의 모습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결의했다.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의 구성 취지를 따르자면, 이명박 시장은 당연히 이 결의를 따라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역사문화분과와 서울시의 마찰은 2002년 가을에 시작됐다. 서울시는 역사문화분과와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청계천 복원 예상도를 만들어 언론에 배포했다. 그 모습은 역사유적 청계천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현대식 도심하천공원이었다. 서울시는 단순히 홍보용으로 그린 것이며 실제 복원은 역사문화분과의 결의를 따를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서울시의 해명은 거짓이었다. 서울시는 단순히 홍보용으로 그렸다는 그 그림대로 청계천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서울시는 시민위원회를 속였고, 결국 시민을 속였다.

이명박 시장은 청계천에는 광교와 수표교밖에는 유물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계로를 뜯어내자 영조가 쌓은 석축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식민지와 개발독재라는 모진 역사를 지나면서도 길이가 500m를 넘는 석축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 시장은 이 귀한 유물을 모두 밀어내 버렸다. 복원을 내걸고 파괴를 자행한 것이다. 2004년 3월 5일 역사문화분과와 시민단체 대표들은 이 시장을 직무유기 및 문화재파괴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발했다.

이명박 시장은 자신이 유물로 인정한 광교와 수표교조차 올바로 복원하지 않으려 한다. 자기가 멋대로 고친 청계천 폭에 맞춰 수표교는 잘라내려고 했고, 광교는 다른 곳으로 옮겨 이어 붙이려고 했다. 2005년 3월에는 600년이나 자리를 지켜온 광교의 바닥석이 파손되기도 했다. 이것은 청계천 복원사업이 파괴사업이요, 개발사업이라는 진실을 분명하게 확인시켜준 사건이다.

청계천 주변 재개발 노린 청계천 ‘복원’사업

청계천 복원사업은 문화사업이나 환경사업으로 치장된 정치사업이다. 박정희가 청계천을 복개하고 고가도로를 세워 자신의 능력을 과시했다면, 이명박 시장은 청계천을 뒤덮고 있던 구조물들을 없애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자 한다. 이 시장의 목표는 역사유적 청계천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청계천을 이용해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청계천 복원사업은 거대한 도심재개발사업의 하나일 뿐이다. 이 시장은 청계천 일대의 낙후지역을 화려하고 거대한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선 곳으로 만들려고 한다. 이를 위해 그는 도심재개발기본계획을 서둘러 개정했다. 이렇게 해서 20층 정도의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되었던 곳이 40층이 넘는 건물까지 들어설 수 있는 곳으로 바뀌었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역사도심이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아마도 청계천 일대의 낙후지역을 재개발하는 것이야말로 청계천 복원사업의 참된 목표였던 것 같다. 주변의 경관과 환경을 크게 망치고 있던 청계고가도로를 없애지 않는 한, 청계천 일대의 낙후지역을 재개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청계고가도로를 없애자 청계천 일대의 경제적 가치가 크게 올랐다. 도심하천공원을 만든다니 그 가치는 더 오르게 됐다. 마치 양재천이 있어서 타워 팰리스의 경제적 가치가 더 커진 것처럼. 경제적 가치를 최대한 실현하려는 개발업자들의 준동이 거세게 일어나기 시작했고, 결국 2005년 5월 6일 양윤재 부시장이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왜 이명박 시장은 커다란 부패 의혹을 받고 있던 양윤재 청계천복원추진본부장을 부시장 자리에 앉혔을까?

청계천복원사업이 참으로 청계천의 복원을 추진하는 사업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 때문에 2004년 5월에는 시민위원회 위원장이 사퇴하고, 9월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시민위원들이 사퇴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이런 진실을 감추기 위해 그는 홍보에 무엇보다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서울시 전역을 울긋불긋한 각종 홍보물로 도배해 놓은 것은 물론이고 멀리 외국에까지 돈을 쓰고 손을 뻗쳐서 자신의 ‘치적’을 홍보하고 있다. 영국의 유명한 다큐멘터리 전문방송국인 디스커버리 채널에도 돈을 주어 청계천복원사업에 관한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했다.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홍보에 열을 올려도,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복원사업이 600년 역사유적 청계천을 완전히 없앤 청계천 파괴사업이며, 한강 물을 억지로 퍼 올려 흘려보내는 반생태적 사업이라는 사실은 감출 수 없다. 청계천 복원사업의 진실은 감출 수 없다. 언젠가 참된 청계천 복원사업이 펼쳐지게 될 것이다. 청계천의 역사와 자연을 참으로 되살리려는.

홍성태 『참여사회』편집위원장,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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