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7월 2005-07-01   894

남북 민간이 놓은 평화의 다리

6·15공동선언 5주년 기념 평양 민족통일대축전에 다녀와서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평양으로 곧장 날아가지 않았다. 한참을 서쪽으로 날아간 뒤에야 북으로 기수를 돌렸다. 공해 위를 통과해 북으로 간다는 거였다. 서해직항로라는 말이 무색하게 하늘에도 휴전선은 있었다.

순탄치 않았던 북행의 여독

6월 14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 하늘은 비를 머금은 먹구름으로 흐려져 있었다. 처음 밟아보는 북녘 땅, 가슴이 설렐 법도 하건만 마음속은 구름 낀 하늘처럼 막막하고 무거웠다. 문건 초안 작성 때문에 이틀 밤을 내리 지샌 탓이었을까? 몸 상태 때문만은 아니었다. 5월 이후 북미 간에 가파르게 이어진 논쟁과 정치·군사적 갈등도 묵직하게 머릿속을 짓누르고 있었다. 축전 일주일을 앞두고 북측으로부터 “군산에 미 스텔스 전폭기 편대가 배치된 상황에서 정상적으로 축전을 치를 수 없으니 남측 민간대표단 수를 615명에서 200명 내외로 축소해 달라”는 갑작스런 전통문이 날아와, 논란 끝에 대표단 규모를 300명 선으로 줄여야 했던 ‘소동’도 있었다. 여러 모로 간단치 않은 북행이었다.

“북이 어떻게 나올까?”

나를 비롯한 방북단의 관심사였다. 최근의 긴장국면을 이유로 북이 정치적으로 강경한 입장을 고수한다면 축전은 순탄치 않을 것이고 좋은 평가도 얻기 힘들 것이다. 모처럼 마련된 남북 민간-당국 합동교류행사에서 북이 한반도 주변 정세를 타개할 모종의 보따리를 풀어놓을지도 관심사였다. 고백컨대, 당시에는 북이 이렇게 할 것으로 예측하기가 쉽지 않았다.

숙소인 고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낯익은 북측 실무자가 나를 맞았다. 간단한 수인사 뒤 호텔 커피숍으로 들어가 행사에 필요한 남북 측 문건 초안을 주고받고 문건협의일정을 정했다. 북측이 건네준 연설문안은 몇 개의 낱말을 빼곤 ‘우리민족끼리 공조’를 강조하되 논쟁의 여지를 최소화한, 비교적 평이한 내용이었다. 행사를 원만하게 진행하려는 의도가 읽혀져 우선 안심이 되었다.

빗줄기도 식히지 못한 환영 열기

이날 오후 소년문화궁전을 참관할 때 오락가락하던 빗발이 개막식이 열릴 김일성 경기장으로 향하는 시가행진이 시작된 저녁에 본격적으로 퍼붓기 시작했다. 행진 대열은 연도에 가득 늘어선 수 만 평양시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빗속에서도 평양시민들은 꽃술과 손을 흔들고, 춤 추고 북 치며 반도 남녘을 비롯하여 지구촌 곳곳에서 찾아온 동포들을 ‘열렬히’반겼다. 남과 북, 해외 대표단이 김일성 경기장에 들어서는 순간 경기장을 가득 메운 10만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모두 잠시 압도되었다.

북측 안경호 위원장의 개막사와 백낙청 남측 상임대표의 개막연설을 비롯한 축하연설이 끝나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소녀들과 여성들, 아이들의 매스게임이 이어졌다. 잘 훈련되고 세련된 원색의 향연 앞에서 북을 찾은 손님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공식행사가 끝난 뒤 모두 운동장으로 몰려나가 기차놀이와 포크댄스를 하며 어울렸다. 남측과 해외 대표들은 수줍은 호기심이 가득한 평양시민들의 시선을 온몸으로 느끼며 어색한 몸짓으로 그들의 발놀림을 따라가느라 진땀을 흘렸지만 가슴만은 이내 뜨거워졌다.

격론 끝에 타협을 본 연설문안

행사가 끝나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북측과 해외측 실무자와 문건조정 협의를 시작했다. 6·15공동선언 5주년을 기념하는 민족통일대축전의 중요 행사인 15일 민족통일대회 연설문을 점검하기 위한 것이었다.

북측 연설문의 기조는 ‘6·15선언이 제시하는 ‘우리민족끼리’ 이념에 따라 외세의 전쟁위협에 맞서 민족자주, 반전평화, 통일애국 공조를 실현하자’는 것이었다. 남측 연설문의 기조는 ‘6·15정신을 계승하여 민족화해와 단합을 실현하되, 실질적인 각계각층의 참여를 보장하고, 군사적 문제해결방식에 반대하는 국제적 평화 공조도 함께 추구하자’는 것이었다. 북은 반외세 민족공조를, 남은 민족공조와 국제평화공조의 병행을 강조한 것이었다.

차이는 명확했고 이견이 없지 않았지만 자극적인 표현이 없는 한 양해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4월 실무접촉에서 남측이 주장했던 한반도 비핵화에는 북측이 난색을 표해온 터였으므로 남측은 이미 초안에서 관련 용어를 빼고 ‘동북아 평화와 우호협력’을 강조하는 수준으로 양보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북측 연설문에 포함된 ‘우리(북)가 21세기 이후 확보한 전쟁억지력이 민족의 존엄을 지키는 힘이므로 온 겨레가 이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문장은 논쟁거리가 됐다. 북의 핵개발을 지지해야 한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는 이 문구에 대해 수정을 요구하자 북측은 핵개발의 정당성을 역설했고 1시간이 넘는 격렬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해외 측 연설 문건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했다. 연설문의 기조는 북측의 그것과 비슷하면서 남측의 대미관계를 매우 직접적이고 자극적으로 비판하는 문장을 다수 포함하고 있었다. 북측 실무자를 앞에 두고 해외 측에 북과 남에 대한 균형 잡힌 비판을 주문하거나 한반도 냉전체제의 복잡한 역사를 거론하는 것은 ‘외교적으로’쉬운 일은 아니었다. 해외와 북측 모두 매우 날카롭게 나왔다. 결국 1차 문건실무접촉은 15일 아침 다시 만날 약속만 남기고 끝났다.

다음날 아침 전달된 북의 문건에는 다행히 전쟁억지력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이 삭제되어 있었다. 수정된 해외 측 연설문은 북측에 의해 전달됐다.(해외 측 연설문은 그 뒤에도 늘 북측 실무자에 의해 전달됐다). 해외 측 연설문은 여전히 자극적이었지만 일부 용어가 완화되어 있었다. 반면 북측 역시 우리 측 연설문 중 ‘내외의 군사적 위협’이라는 표현을 빼거나 ‘외부의 위협’으로 고쳐달라고 요구해왔다. 타협은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졌다.

원만한 대회 마무리, 관심은 당국간 대화로

15일 오전 통일대회에서 남과 북, 해외는 서로 결은 다르지만 한결같이 6·15정신의 계승과 민족화해를 강조하는 연설문들을 발표하고 민족통일선언을 공동 채택하였다. ‘난산’이었고 남겨진 숙제도 적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매우 원만한’성공적인 대회였다. 사후 모니터에서 남측 대표들은 대회에서 발표된 연설들이 각자의 입장 차이를 드러내면서도, 서로를 자극하지 않고 최소한의 접점을 형성하려는 고려 속에 조율된 점을 평가했다.

민간대표단의 주요 일정이 끝나고 부문 상봉과 폐막식 준비, 남북이 준비한 공연이 이어지는 동안 모든 관심은 남북당국간 대화에 쏠렸다. 민간방북단으로서는 ‘진인사대천명’의 심정이었다. 민간이 막힌 물꼬를 트고 멍석을 깔았으니 당국자간 대화에서 진전된 결론이 나오기를 기대해보는 것이었다.

조건부 6자 회담 복귀 등 기대 이상의 성과 나온 당국간 대화

17일 오전, 정부대표단과 민간 대표단의 일부(2000년 정상회담 남측대표단 관련인사)가 김정일 위원장을 면담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공항 도착 후에야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과 제안들을 접할 수 있었다. 기대 이상의 내용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의 제안에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과 철도연결 사업 재개, 서해 공동어로구역과 서해 직항로 개설, 남북경제협력 가속화 등 남북관계를 확대 발전시키려는 뜻이 명확히 표현되어 있었다. 이 논의가 구체적으로 진행되면서 남북간에 신뢰와 협력 분위기가 두터워지는 만큼 한반도의 간장과 위협은 줄어들 것이 틀림없다.

무엇보다도 한반도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북의 6자 회담 복귀와 관련해서 전향적인 입장을 밝힌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당국자간 면담에서 김 위원장은 “미국이 북한을 인정·존중하고 그것이 확고하면 7월에라도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며,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변화한다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하고 사찰도 수용할 것이며, 장거리미사일 포기도 기능하다고 밝혔다.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변화를 전제로 한 발언이어서 미국의 대응을 비롯한 이후 과정을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터이지만 중요한 실마리를 던져준 것임에는 분명

하다.

민간 대화에서 그토록 금기시되고 날카로운 언쟁의 대상이 되었던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가 김일성 주석의 유훈으로 북측 최고지도자의 입에서 언급된 것은 내게 약간의 당혹감을 안겨주었다. 내게는 남쪽과는 매우 다른 북한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이해됐다. 최고 지도자는 유연하고 민은 경직된, ‘관민 일체 사회’의 이미지가 그것이다.

6·15여, 영원하라

6월 14일부터 17일까지 3박 4일간 이루어진 민간방북단의 활동과 민족통일대축전은 같은 기간 이루어진 정부대표단의 활동, 특히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면담 소식에 가려져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그러나 유감은 없다. 6·15 공동행사기간에 남북 당국간 대화가 재개되고 예상치 못했던 전기가 마련된 것이야말로 민간방북단이 간절히 원했던 바다. 한반도 주변 정세가 대결로 치닫고 있는 상황을 식혀주는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오히려 민간방북단은 한반도 평화의 다리를 놓았다는 것에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교류를 계속해야 한다는 남측위원회의 다짐이 소중한 옥동자를 낳은 것이다.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실장, 6·15 공동행사 남측위원회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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