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7월 2005-07-01   821

금산법 개정안, ‘삼성공화국’을 승인할 것인가

고려대 명예철학박사 학위 수여식에서 촉발된 ‘삼성공화국’논란으로 세상이 한동안 시끌벅적했다. ‘삼성공화국’논란의 핵심은 삼성의 영향력이 시장을 넘어 입법, 사법, 행정 등 모든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사회 전체의 매커니즘이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은 이재용 씨에 대한 편법 증여에서 볼 수 있듯 경제 권력을 바탕으로 탈법, 불법 행위를 서슴지 않더니 이제는 법 자체를 입맛에 맞게 바꾸려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작년부터 계속된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이하 금산법) 제24조의 개정 논란이다. 금산법 개정 논란은 법체계까지 쥐고 흔드는 삼성의 권력과 이를 감시, 견제해야 할 정부의 무기력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사례이다.

삼성카드의 버티기와 형평성 잃은 금감위

금산법 제24조는 재벌 계열 금융기관이 다른 회사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20% 이상 확보하거나, 5% 이상 보유하면서 다른 계열사 지분과 합쳐 피투자 회사를 지배할 경우 금융감독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한 규정이다. 재벌이 고객의 돈을 계열사 지배권 강화에 이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작년 초 삼성카드와 현대캐피탈이 각각 삼성에버랜드와 기아자동차 지분을 보유하면서 금감위 승인을 받지 않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금감위가 삼성카드와 현대캐피탈이 법 위반 상태에 있는 것은 맞지만, 아무런 제재 조치도 취할 수 없다고 밝힌 것이다. 현행 금산법에는 제24조 위반행위, 즉 허가 없이 다른 회사 주식을 초과 보유할 경우 이를 강제처분하도록 명령하는 규정이 없다는 이유였다. 이에 따라 금감위는 삼성카드와 현대캐피탈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통보하고,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위의 요구에 대해 현대캐피탈은 주식 초과 지분을 매각하겠다는 계획을 제출했으나 삼성카드는 초과 지분 매각을 거부한 채 의결권만 행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룹 경영권을 위해 법 위반 상태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삼성카드의 ‘버티기’에 속수무책이던 금감위가 불과 1년 전에 동부화재와 동부생명의 금산법 제24조 위반 행위에 대해 초과 지분 매각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금감위가 같은 사례에 대해 다른 조치를 취한 것이다.

위법행위에 면죄부 주는 정부 개정안

금감위의 형평성 잃은 법 집행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던 2004년 11월, 재정경제부는 금산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정부 개정안은 금산법 제24조를 위반했을 경우 금감위가 매각 명령 등 시정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했으나, 개정법 시행 전의 법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시정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부칙이 포함된 것이었다. 법 개정 논의를 촉발시킨 삼성카드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오히려 금감위가 주식의 초과 보유를 사후 승인할 경우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주식 보유는 적법한 일이 되고 만다. 이에 대해 금감위는 과거의 법 위반 행위를 제재하는 것은 소급입법이므로 헌법에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정부안의 매각명령은 과거에 법을 어겨 주식을 초과 보유한 사실 자체를 무효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개정안 시행 이후 장래에도 주식 초과 보유를 규제하는 것이다. 보험업법 규칙 등 이와 비슷한 규정이 이미 있으며, 헌법재판소 역시 비슷한 사례에 대해 위헌이 아니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정부 개정안의 국회 제출이 지연되는 사이 삼성카드 외에 삼성생명도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에 대해 승인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삼성카드의 금산법 위반 사실이 밝혀진 직후부터 매각 명령을 내릴 것과 관련 법 개정을 요구해온 참여연대는 금감위의 직무유기를 강하게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법 위반 상태에 있는 모든 금융기관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동시에 금감위가 보험사와 여신전문금융회사를 막론하고 금산법을 위반한 금융기관 전체에 대해 즉시 매각명령을 내릴 것을 촉구했다.

편법·위법에 법까지 바꾸려드는 ‘삼성공화국’

삼성카드와 삼성생명은 왜 초과 지분을 팔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일까? 만약 삼성카드에 초과 지분 매각 명령이 떨어질 경우, 삼성카드는 삼성에버랜드 지분 중 20.6%를 팔아야 한다. 물론 에버랜드는 비상장 기업으로 사실상 가족기업이므로, 이 경우 직접적인 경영권 위협은 없다. 그러나 초과지분을 외부인이 사들이게 되면 경영권 위협이나 지배력 약화의 위험이 있다.

삼성생명도 마찬가지다. 삼성생명은 그룹 최대 우량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지분 약 6.26%(보통주만 계산할 경우 7.23%)를 갖고 있다. 삼성생명은 총수 일가와 삼성전자 사이를 이어주는 고리다. 삼성그룹으로서는 삼성카드와 삼성생명이 가진 에버랜드와 삼성전자 지분 어느 것도 팔 수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위법을 합법으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삼성그룹은 금산법 외에도 삼성에버랜드의 금융지주회사화, 공정거래법상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 등 각종 금융관련법 위반 논란의 한가운데에 있다. 이는 삼성그룹이 금융계열사를 이용해 산업자본을 지배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삼성의 지배구조는 총수 일가가 삼성에버랜드와 같은 비상장 가족기업을 소유하고, 에버랜드는 비상장 금융계열사(대표적으로 삼성생명) 지분을 갖고, 금융계열사가 일반계열사를 갖는 형식이다. 따라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를 규정한 관련법과의 충돌은 필연적이다.

문제는 삼성이 어떻게 해서든 법을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법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 ‘삼성공화국’이 아니고서야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번번이 삼성의 손을 들어준다는 사실이다.

현재 정부안 외에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이 대표발의한 것과 참여연대가 입법청원한 금산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중이다.

‘삼성’이라는 재벌권력이 입법, 사법, 행정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될 것인지 오는 9월로 예정된 금산법 개정안 국회 처리에 관심이 모아진다.

이수정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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