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7월 2005-07-01   1321

일본시민사회운동이 가져온 사회 변화

한국처럼 일본에서도 1990년대 말부터 시민사회영역이 급속히 확대됐다. 일본에서 소위 ‘시민운동’, ‘NGO’, ‘NPO’, ‘자원봉사 단체’라고 불리는 시민사회운동이 사회적으로 크게 인정받게 되었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 이 흐름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시즈와 특정비영리활동촉진법의 제정

시민사회운동의 확대를 목표로, 90년대 초부터 서구 시민사회의 제도와 장치들을 조사, 분석, 검토하면서 일본 사회에 맞게 정착시키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시민활동의 인프라를 시민운동이 주도적으로 설계해서 만들어나가자는 것이다.

이들은 일본시민운동의 부족한 점을 잘 알고, 장점을 살리면서 사회적으로 빨리 인정시키기 위해 비영리민간단체의 법인제도 도입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여왔다. 여기에 참여 했던 사람들은 거의 다 일본시민사회의 지도자들이다.

그들의 사고나 행동방식은 지금까지의 시민운동가들과 크게 달랐다. 과거 시민운동은 권력에 반대만 일삼으며 시민사회 내부의 힘을 모으지 못하고 사회 변화에 주력했다. 시즈는 그러한 한계를 잘 알고, 시민운동을 획기적으로 바꿔나갔다. 법제도 설계, 유기적인 연대틀 짜기, 경제계의 조직화, 정치인들의 조직화와 입법 로비활동 등 일련의 운동과정을 처음부터 전략적으로 구상하고 철저한 토론과 협의를 통해 이뤄나감으로써 일본 최초의 시민입법이라고 할 수 있는 <특정비영리활동촉진법>을 탄생시켰다.

이 운동을 주도했던 단체가 시즈(Cs, Civil Society, 시민활동을 지탱하는 제도를 만드는 모임, www.npoweb.jp)이고,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마츠바라 아키라 사무국장이다. 94년 설립부터 시즈는 진보와 보수, 어느 쪽도 반대하는 입장이 아니었고, 일반시민들에게 공신력이 높은 단체만을 조직했다. 이 핵심단체들을 중심으로 120여 개 단체들과 전국적인 연대운동을 폈다.

시즈의 성공 비결, 연대

그동안 일본 시민운동계는 연대틀의 구성과정에서 어느 사람, 어떤 단체가 함께 하느냐에 따라 가입 여부를 결정하고, 주도세력이 되지 못하면 탈퇴하는 등 소모적이고 수준 낮은 행동을 적잖게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행동들은 시민사회운동의 정당계열화가 남긴 후유증이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는 운동가 각자가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극복하지 못했던 시민사회운동 내부의 보수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시즈는 이와 같은 구태를 과감하게 극복하지 못하면 운동의 미래는 없다고 보고 처음부터 연대틀 구성을 설계했던 것이다.

시즈는 전국 120여 개 단체의 뜻을 조화시켜나가는 과정에서도 대단한 역량을 보여주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시민사회’안에는 다양한 가치관과 의견이 뒤섞여 있다. 이 다양한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지 않으면 정치·경제계 등 사회 다른 방면에 대해 효과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시민사회의 대표성과 추진력을 가지고 다른 이해당사자들과 협력할 수 있도록, 시즈는 사전에 위험요소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그 위에서 시민사회 내부의 통일된 대응을 만들어갔던 것이다.

시즈는 명백한 세 가지 목표를 세웠고, 목표가 달성되면 바로 해산하게 될 조직이다. 그러므로 NPO 법인격을 제도화시킨 단체인데도 정작 자기들은 법인격을 얻지 않았다. “해산을 목표로 활동하는 단체에 법인격은 필요 없다”는 것이 마츠바라 사무국장의 주장이다. 법인격제도화는 이뤘고, 세법상 지원제도도 반은 성공했다. 이미 시즈의 목표의 절반은 달성했다. 이제 남은 것은 시민들이 직접 평가하는 ‘NGO 평가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점차 확산되는 시민사회운동

활발하고 창의적인 시민사회 창출을 위한 운동의 성공은 많은 사회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현재 법인격을 갖고 있는 NPO는 약 2만 1,000개. 법인격을 취득하지 않은 단체를 포함하면 약 12만 개의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2001년 일본내각부의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약 30%가 연 1회 이상 자원봉사를 포함한 시민활동에 참여했다고 답했고, 60%는 기회가 되면 시민활동에 참여하겠다고 답했다. 단순하게 인구수로 환산하면 7,500만 명, 현실적으로 따져보면 적어도 6,000만 명의 ‘시민사회운동시장’이 있다는 것이다.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왔다. 경제단체인 일본경단련이 회원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회공헌활동에 관한 조사를 보면, 사회공헌활동에 나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기업이 80%이상이었다. 사회공헌에 관한 기본방침을 명문화하거나 담당 부서를 두고 있는 기업도 60%를 넘었다. 직원들의 자원봉사활동 참여를 지원하고 있는 기업은 1990년 조사에서 9%에 머물렀던 것이 이 조사에서 60%이상으로 늘었다.

지방자치단체에도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다. 지바(千葉)현 이치카와(市川)시는 헝가리를 본떠 시민들이 납부하는 지방세의 1%를 시민사회단체 활동비로 지원하는 ‘시민=납세자가 선택하는 시민활동지원제도’를 시작했다. NGO 활동은 공익적이기 때문에 세금을 쓸 수 있다는 인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증거다.

다음 단계로 오르기 위한 시민사회운동의 과제

법인화제도 도입을 계기로 시민사회영역은 일반시민, 경제계, 행정기관에도 영향을 주며 급속히 확대됐다. 그렇다면, 다음 문제는 시민사회운동이 이 같은 흐름에 제대로 대처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시민사회운동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공익적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정책 제언, 즉 사회변혁에 충실해야 한다. 현실에 만족하기는 아직 이르다. 일본 내각부가 실시한 사회의식조사에서 일본 국민의 약 77%가 국가정책에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또 교육, 복지, 노동, 치안, 평화 등 여러 분야에 대해 시민들의 불안과 불만이 높다.

6,000만 시민의 관심 속에 12만 개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고, 기업들도 관심을 갖고 있는 ‘시장’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 나가며, 사회변혁을 어떻게 이뤄낼 것인지가 중요한 숙제로 남는다. 시민사회운동가들은 이념만이 아닌 현실에 대한 영향력을 차근차근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손명수 재일교포, 한일시민스퀘어(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 교류를 지원하는 단체)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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