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7월 2005-07-01   906

자네 몸이 자네 것이 아니여

마흔이 넘어가면서 제 몸을 돌아보는 일이 잦아졌다. 신 것을 먹고 이가 시큰거리면 이렇게 늙어가는구나 싶어 서럽다. 그러다 가만 생각하니 이날 이때껏 치과 갈 일 한 번 만들지 않고 버텨준 이가 고맙기만 하다. 젊은날에는 역시 빨치산의 딸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지리산을 쌩쌩 날아다녔는데 요즘은 해발 600미터 남짓인 뒷산만 다녀와도 다리가 뻐근하다. 두 시간 산행길에 지쳐 허덕이는 내 다리가 내 것 아닌 양 낯설고 안쓰럽다. 하기야 운동이라면 질색팔색, 걷는 것 외에 별 다른 운동을 해본 적이 없는데도 지난 사십 년간 멀쩡하게 버텨준 것이 어디랴.

한 선배는 사십 중반에 오십견이 시작됐다. 용하다는 한의원을 여러 곳 찾아다닌 듯 한데 쉽게 고쳐지지 않는 모양이다. 폐경도 낼 모레구나 싶어 아득하다는 선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벌써 이십 년 가까운 옛 기억이 떠올랐다. 그 선배, 집안 지지리 가난하고 동생 줄줄이 달려, 부모님이 돈이나 벌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일 년간 공장에서 부지런히 일한 선배는 등록금만 간신히 챙겨 덜컥 대학에 들어오고 말았다. 집안에 일전한푼 기대할 수 없었던 선배는 빈 강의실에서 숙박을 해결하며 학교에 다녔다. 그것도 여자의 몸으로. 제 아픔이 시대의 아픔이라 세상에도 눈 감지 못하고, 가족의 기대도 저버리지 못하고, 서른 넘어 결혼할 때까지 선배의 어깨에는 감당하지 못할 크나큰 짐이 얹혀져 있었다. 일찌감치 오십견이 시작된 선배의 어깨가 대견하고 안쓰러워 그만 핑그르 눈물이 돌았다.

젊은 날에는 멀리 있는 별만 보인다. 크고 반짝이는 것만 눈에 들어온다. 신념, 역사, 민중, 등등의 거창한 논리에 취해 있던 젊은 날에는 선배의 어깨에 지워진 가족이라는 짐이 떨쳐내야만 할 것으로 보였고, 삼박사일 잠도 자지 못한 채 시위를 하고 등사기를 밀어도 끄떡없는 우리의 젊음에 감사한 줄 몰랐고, 역사와 민중을 사고하게 하고 신념이라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 몸뚱아리의 소중함조차 알지 못했다.

나이 들고 보니(여든의 어머니가 들으면 혀를 차시겠지만) 가까이 있는 것에 눈이 가고, 평생을 버텨온 우리들의 몸뚱아리가 안쓰럽다. 이런 마음으로 민중과 역사를 대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래야 감히 민중과 역사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요즘 그런 생각으로 부끄럽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집안의 토지를 소작인들에게 나눠주었던 몽양의 깊은 마음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30대 초반의 언젠가,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상해 몇날며칠 제대로 먹지 않은 적이 있다. 그때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며칠쯤 굶는다고, 며칠쯤 못 잔다고 죽기야 하랴, 그런 마음었다. 오랜 만에 만난 충청도 출신의 한 시인이 내게 말했다.

“자네 몸이 자네 것이 아니여. 한 세상 빌어 입은 것인데 정성스럽게 모셔야지. 제 영혼 깃든 육신 하나 제대로 공양하지 못해서야 민중을 찾아 무엇 하겠어?”

나의 관념성에 대한 따끔한 질책이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요즘서야 생각할 때마다 낯이 화끈거린다. 그래서 요즘은 내 몸에 적어도 하루 두 끼 공양은 꼬박꼬박 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덕분일까. 아파트 입구에 파라솔 쳐놓고 하루종일 학습지 선전 하느라 뻔뻔하다싶게 목청껏 외쳐대던 한 중년 여성이 문득 내쉬는 한숨소리에 가슴이 뻐근해지고, 날마다 슈퍼 제일 바쁜 시간에 주인 옆자리 꿰차고 수다를 떨며 남의 장사 방해되는 줄 모르고 지친 다리를 쉬고 있던 야쿠르트 아줌마의 쓸쓸한 휴식에도 가슴이 찡해진다. 저들이 바로 민중이고, 뻔뻔함이나 천연덕스러움이 곧 견딜 수 없는 삶의 아픔에서 비롯된 것임을, 젊은 나는 알지 못했다. 부끄럽게도.

정지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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