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7월 2005-07-01   526

세상은 사람만 사는 데가 아니야

깊은 밤, 불 꺼진 마루에 앉아 있어보면 알게 된다. 사람만이 이 세계의 주인공은 아니라는 것을. 도시의 밤은 자동차 소리가 지배했으나 지금 이곳의 밤은 풀벌레가 주인이다. 지구 위에 사는 사람보다 결코 적지 않을 생명들의 힘찬 외침이 사위를 꽉 채운다.

집 앞이 논이어서 개구리가 지천이다. 재수 없는 놈들은 아이들의 자전거에 깔리기도 하고 뒷걸음질에 밟히기도 한다. 대담한 놈들은 도로를 횡단해 인가로 잠입한다. 현관을 통과해 중문 유리창에 착 달라붙어 있는 녀석들을 보았다. 뒷다리가 얼마나 긴지 알겠다. 개구리 한 마리가 목청껏 울어 젖히면 얼마나 시끄럽고 귀에 거슬리는 지는 아는 사람만 안다.

며칠 전 중문이 열리는 틈을 놓치지 않고 잽싸게 마루로 뛰어들어온 녀석이 있었다. 벌레 종류를 남달리 징그러워하는 나는 아이들의 비명 소리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손에 잡힌 두꺼운 종이를 휘둘러대다가 허둥지둥 비닐봉지를 찾아 들고 개구리를 살짝 덮었다. 개구리가 그 안으로 들어가자 현관 밖에 내놓고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이튿날에는 마당에 뱀이 출현했다. 이웃집 젊은 부부가 진땀을 흘리며 뱀을 잡아 놓고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 은혜 갚은 뱀 이야기 같은 전설을 떠올렸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 한 마리 죽인다고 우리가 뱀으로부터 안전해진다는 보장은 없다. 산에다 뱀을 풀어주었다.

날이 더워지면서 파리가 골칫거리다. 사람의 출입이 빈번한 날은 일 삼아 파리를 잡아야 한다. 어느 여름 밤, 손님들을 배웅하고 설거지를 마친 뒤 파리채를 들고 62마리의 파리를 잡은 적이 있다. 한밤중에 의자 위에까지 올라가 기를 쓰고 파리채를 휘둘러대는 어떤 여자의 모습이 유리창에 비쳤다. 파리채를 내려놓고 파리를 살펴보았다. 반짝이는 날개를 가진 이 작은 벌레가 온갖 병을 옮기는 불결하고 위험한 존재라서 기필코 박멸해야 한다니…….

스스로를 수행자로 여기는 남편은 곤충채집망을 사다 놓고 생충망(生蟲網)이라고 이름 붙여놓고 쓰고 있다. 집에 들어온 벌레를 잡아 살려보내는 도구다. 낯간지러워 그렇게는 못하겠고, 나는 올해 목표의 한가지로 파리 덜 죽이기를 넣었다. 이 다짐을 지키려면 여름 내내 문 닫고 다니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아야 할 것이다. 혹 파리가 들어오더라도 두 눈 부릅뜨고 팔짱 꽉 끼고 못 본 체 해야 한다.

논밭과 산이 가까운 탓인지 집에 벌레가 많다. 무당벌레, 집게벌레, 귀뚜라미, 거미, 벌, 파리, 모기, 나방, 하루살이……. 벌레를 발견한 아이들이 다급하게 엄마를 불러대면 그렇게 곤혹스러울 수가 없다. 어느 날은 호들갑을 떠는 두 딸에게 인지, 무능한 자신에게 인지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지구는, 이 세상은 말이야, 너 하나만, 우리 인간만 살라고 만들어진 게 아니야!” 아이들은 잠잠해졌다. 얼마 뒤 벌레를 보고 기겁을 한, 도시에서 놀러온 아이에게 큰아이가 말해주었다. “괜찮아. 세상은 사람만 사는 데가 아니거든. 가서 놀자.”

나는 벌레와 끝내 친구가 되지 못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애써 외면하기, 수수방관하기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피해를 준다거나 그저 귀찮다는 이유로 다른 종에 대해 살기 어린 적대감을 드러내어 독한 약을 뿌려대는 것보다는 그 쪽이 마음 편할 테니까.

고진하 (참여사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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